렘브란트 "깨워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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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깨워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 한상봉
  • 승인 2017.11.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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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볼품없는’ 그리스도-3
논쟁중인 두 노인. 렘브란트
렘브란트가 그린 바울은 패기와 열정에 충만한 모습이라기 보다 상념이 깊은 고단한 노인처럼 보인다.  후기 렘브란트의 모습을 닮아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바울. 렘브란트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 교회 안에서도 논쟁이 필요하다

렘브란트는 베드로보다 바울을 자주 화폭에 담았다. <논쟁중인 두 노인>(1628), <감옥에 갇힌 바울>, <깊은 생각에 잠긴 바울>, <사도 바울> 등이다. 게다가 <바울로 분한 자화상>까지 있으니, 렘브란트가 특별히 바울에 대해 깊이 묵상했음을 알 수 있다. 가톨릭에선 율법을 대변하는 베드로를, 개신교에선 믿음과 은총을 대변하던 바울을 강조하던 것과 관련이 있을 법하다. 렘브란트 자신은 고뇌하는 바울과 자신을 등치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통상 베드로는 열쇠를, 바울은 칼을 갖고 있는데, 렘브란트의 작품에선 이런 상징이 쓰이지 않았다.

바울은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조차 지기 어려웠던 율법의 엄한 요구를 짐 지우지 말자는 입장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바울은 대부분 ‘당당한’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 수심이 많고 명상적이며 지친 노인일 뿐이다. <논쟁 중인 두 노인>을 그리면서 렘브란트는 진리를 위한 논쟁에 주목한다.

“교회의 신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논쟁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로마 가톨릭이 전통으로 교회와 신자를 틀어쥔 것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것이었다.”

렘브란트는 “교의란 매 세대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적용한 믿음의 고백”이라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교리 논쟁의 지속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결과, 교황에게 넘어 갔던 교회문제를 결정하는 열쇠가 세속군주에게 넘어간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천국 열쇠를 쥐어 주신 적이 없다. 천국 열쇠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계속해 가는 교회에게 주어졌다.”

 

갈릴래아 호수 폭풍 속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폭풍 속의 그리스도: 깨어야 할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우리들이다

렘브란트가 1631년 정든 레이든을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뒤에 그린 그림이 <갈릴래아 호수 폭풍 속의 그리스도>(1633)이다. 마르코복음 4장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쳐 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 물이 넘쳐난다. 배가 곧 가라앉을 것 같다. 제자들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에, 네덜란드 공화국과 스페인의 항전이 극에 달해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배를 어거하려 애쓰는 선원들의 모습에서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투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 안재경은 폭풍 속에 휩싸인 ‘한국교회의 위기’를 직감한다. 세상을 말세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교회 안에도 이미 그런 세상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이 말세라면 교회도 말세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먼저 건너자고 해서 나선 길인데도 배가 폭풍우에 휘말렸다. 사실 폭풍을 불러온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교회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든가, 주일날 미사시간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한 곳이 없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복음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지만, 우리를 늘 위기에 노출시킨다. 지금처럼 살지 말라고 흔들어 깨운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는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있다. 입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상 자기감정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문제가 생기면 제자들처럼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서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따진다. 왜 예수님을 믿는데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냐고. 그러나 믿음이란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불확실함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절,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은 바알신을 불러내기 위해 하루종일 뛰고 구르고 심지어 칼로 몸을 상하게까지 했다. 아무 응답이 없자 예언자 엘리야가 아세라의 예언자들을 조롱한다. “더 크게 불러 봐라, 혹시 너희 신이 출장을 갔는지,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라며 조롱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자기들이 깨어 있어야 함은 생각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흔들어 깨우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잠드신 적이 있는가? 십자가의 깃발 아래 모인 교회들이 이전투구 하듯이 자신이야말로 교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깨어 있어야 할 존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렘브란트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수난. 렘브란트

 

그리스도의 수난, 루벤스

볼품없는 그리스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렘브란트가 성경을 주제로 그린 최초의 걸작이 <그리스도의 수난>(1633~1646) 연작이다. 네덜란드 공화국 통령 프레데릭 헨드릭이 주문한 이 연작은 루벤스의 제단화를 본뜬 것이지만, 여기서 그려지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렘브란트의 십자가 그림은 유대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경건을 위한 묵상용 자료도 아니었다. 그의 십자가는 자신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 선 자라는 깨달음에서 나왔다. 그림에 렘브란트 자신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자신과 당대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생각에서였다.

렘브란트는 수난 받는 그리스도를 너무나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렸다. 그분을 동물의 처참한 시체처럼 그렸다. 이것은 루벤스의 묘사와 달랐다. 루벤스를 포함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를 본받아, 고상한 주제는 근엄한 스타일로, 일상적인 주제는 평범한 스타일로 그렸다. 선은 아름다움과 어울리고, 악은 추함과 어울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도들과 예수님은 순교하고, 죽는 순간에도 강인함과 지혜를 갖춘 영웅다움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이상화된 인물 묘사가 성경의 인물과 역사를 그리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렘브란트가 보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한 영웅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연약한 인간의 죽음이었다. 신앙인은 이 예수님을 통해 나 자신을 죽음을 보아야 한다.

렘브란트는 강생의 신비를 깊이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낮은 곳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종의 신분으로 낮아지셨는데 어떻게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을 영웅으로 그리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인간적으로 그려서, 통령 프레데릭 헨드릭을 포함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생들이 그리스도께서 대신해 주신 죄 많고 연약한 인생들임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은 통령의 집무실 장식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성당에서 성화와 성물을 제거하고, 이 상화들은 이제 관공서나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장소나 건물이 거룩하다는 생각을 몰아냈다. 성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교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나 성전이 되었다. 또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었는데 특정 장소나 건물을 성전이라 부를 이유가 없어졌다. 이렇게 종교개혁은 눈으로 보는 설교가 아니라 귀로 듣는 설교가 되었다. 렘브란트는 더 나아가 제사에 대한 관념도 바꾸어 놓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수난을 제물과 제사로만 본다면, 그리스도는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지 모른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단번에 드려 희생제물의 마침이 되셨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 제사는 끝났다. 이제 남아 있는 제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일상의 삶이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사가 되어야 할 과업이 남아있다.”

에케 호모 Ecce Homo. 렘브란트

에케 호모: 권력을 버리고 정의로운 나라를 꿈꾼 사나이

렘브란트의 에칭 작품 가운데 대표작은 <에케 호모 Ecce Homo>(1655)이다. 빌라도가 재판정에서 예수를 유대인들 앞에 세우며 한 말이다.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제작한 해는 공교롭게도 암스테르담 새 시청사가 완공된 해다. 이 청사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역사적 건축물로,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행정복합건물이었다. 이 청사의 최고법정을 연상시키는 빌라도의 법정은 중앙계단 위로 정의의 여신과 권력의 여신 조각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으며,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오른 편에 있는 권력의 여신은 한 손을 선반에 놓고, 다른 손으로 몽둥이를 쥐고 있다. 이 법정에서 빌라도는 정의롭게 법을 집행한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 밀어붙여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지상에서 정의와 권력은 대척점에 있다. 정의는 종교의 일만도 아니고, 권력은 정치의 일만도 아니다. 정치든 종교든 권력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의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권력과 정의가 손잡고 갈 수 있는가? 권력 없는 정의는 실행할 방도가 없다. 반면 정의 없는 권력은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상업국가로서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한껏 부풀어 있는 공화국을 향해 정의와 권력이 제대로 손을 맞잡고 가지 않으면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일이 자행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의 여신이 평온한 얼굴이 아니라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권력은 정의를 우습게 보고 있다. 권력은 늘 정의를 자기 손안에 가두어 두려고 한다. 안재경은 이참에 빌라도 총독이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고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분의 나라는 ‘권력’이 아닌 ‘정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에케 호모>를 제작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재판받으신 재판정에 암스테르담의 시청사를 끌어다 댄 것은 의도적이었다. 과연 우리는 거대한 위용이 드러난 암스테르담 시청사를 통해 제대로 된 정의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시청사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신들의 투쟁, 정의와 권력의 여신들의 투쟁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재현되지 않겠는가? 거대한 로마제국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국의 수도를 화려하고 풍요롭게 유지하기 위해 제국의 변방에서 착취한 재화가 얼마나 컸던가? 로마가 무너진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착취구조가 스스로를 무너지게 하지 않았던가? 이 시청사가 나중에는 왕궁으로 변하고, 그래서 우리 공화국이 또 하나의 작은 제국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참조]
<렘브란트의 하느님>, 안재경 지음, 홍성사, 2014
<렘브란트, 영원의 화가>, 발터 니그, 분도출판사, 2008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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