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를 기억하라, 싸구려 신앙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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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를 기억하라, 싸구려 신앙을 버리고
  • 김경집
  • 승인 2017.11.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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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 칼럼]

전 세계 대형교회(메가 처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리고 각 교단마다 세계 최대의 교회가 거의 대한민국에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교회들마다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세습’이다. 세계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행히(?) 아들들이 목사가 아니어서 세습의 여지가 없지만 다른 문제들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이 결혼하지 않아서 세습의 문제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웃픈’ 자조가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하느님 보기에 어떨지 참 민망한 노릇이다.

빠른 성장을 거친 한국교회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고도비만에 가까운 교회들은 아예 세습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어떻게 기업의 부도덕한 경영권 세습이나 북한 정권의 치졸한 권력 세습을 비판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형교회와 구멍가게 수준의 교회 간 양극화 또한 일상사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병폐를 안타까워하며 충고도 하지만 오불관언일 뿐 아니라 그게 ‘하느님 뜻’에 따른 결정이었다며 적반하장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하느님의 뜻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근본주의, 성직자 중심주의, 서구 중심주의

한국교회는 신구교를 막론하고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근본주의란 본질적인 것의 절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종교운동으로 성서에 근거한 신앙의 근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종교가 지닌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경직성과 배타성이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반할 뿐이며 자신들의 권위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교조주의는 과학적 해명 없이 신앙 또는 신조에 입각하여 도그마(dogma)를 고집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자칫 무비판적 독단주의에 빠질 우려가 크다. 한국교회는 신앙의 열성이 근본주의나 교조주의의 산물인 것처럼 착각한다.

두 번째는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신학도 성직자들이 독점한다. 교육을 통해 체제에 순응하는 데에 익숙해진 신자들은 성직자들에게 따지거나 대들지 못한다. 성서를 읽을 때도 문맥이나 역사적 환경 따위는 무시하고 성직자들이 편의적으로 골라낸 구절을 그저 ‘아멘’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 순종을 신에 대한 순종으로 착각한다. 그런 태도가 근본주의와 교조주의, 권위와 복종, 순응과 무비판의 악순환을 키운다.

세 번째는 여전한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제국주의적 사고고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 성향이다. 그리스도교가 서구인들을 통해 전교된 까닭에 어느 정도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심각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며 한국의 개신교회는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보다 더 미국적이라고 할까. 그러니 이들의 신학과 교회 운영은 한쪽은 로마 중심이고 다른 한쪽은 미국 의존적이다. 이런 악순환의 원천적 고리가 깨뜨려지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문제는 철옹성처럼 견고하겠지만 그게 끝내 교회를 망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예언자는 없고 제사장만 난무하는 교회

성직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제사장과 예언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 가운데 예언자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물론 소수나마 그 역할을 의연히 그리고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이 있어서 교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는 하지만. 권력과 재력을 탐하며 신자 수 늘이기에만 혈안인 교회는 과연 사회정의와 진실에 대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권력과 재력의 편에 서서 반 복음적인 작태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면 절망감을 감출 수 없다.

한국의 교회와 성직자, 그리고 신자 가운데 디트리히 본회퍼를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는 ‘목사, 신학자, 순교자, 예언자’이며 동시에 나치의 입장에서 보면 ‘반역자’였던 사람이다. 20세기가 남긴 그리스도교 최고의 유산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요한 23세와 본회퍼를 꼽는다. 신앙과 행위가 일치된 삶을 살았던 본회퍼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그대로 실천했다.

복음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기복에만 매달리는 신앙은 싸구려 은혜를 추구하는 천박한 종교일 뿐이라고 통박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독일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산층의 부잣집이며 루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전통적인 개신교 가문이었는데 할아버지는 프로이센 왕실의 궁정 목사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앙에 무관심했고 그가 목사가 되려 하자 형제들과 부모는 종교가 부르주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그렇다면 내가 그 종교를 바꾸겠습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했다.

튀빙겐 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한 본회퍼는 역사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스페인과 뉴욕에서 목회와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그는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반대하고 반유대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작 독일교회는 갈수록 민족주의로 변해갔다. 독일교회는 예언자의 역할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했다.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을 정도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본회퍼는 라디오방송에서 히틀러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그 방송은 곧 중단 당했다. 그러나 그는 나치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았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갈수록 민족주의로 변해가는 독일에 항거하는 독일교회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미국, 영국 등지에서 에큐메니칼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8년 히틀러 정권 음모에 가담했고 미국 망명마저 거부했다.

그는 독일에 남아 저항운동을 계속하다 1943년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를 전전했는데 이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들이 <옥중서간>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다 1944년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문서가 발견되어 나치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처형되었다. 그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묘비에는 ‘디트리이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새겨졌다. 그는 진정한 예언자였고 행동가였다.

그의 신학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삶의 실천으로 압축된다. 그가 체포될 위험에 처하자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라인홀트 니부어가 신학교수 자리를 마련하고 초대장을 보냈지만 그는 독일 국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전쟁이 끝났을 때 어떻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며 거부했다.

복음의 실천이 없는, 즉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지 않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는 본회퍼의 비판과 지적은 지금 한국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라는 그의 말을 두고두고 곱씹어야 한다. 제사장의 권위나 존경을 탐하기보다 거친 들판에 나가 불의와 불공정에 대해 비판하고 들판에 내던져진 약자들을 감싸고 도닥이며 복음의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세상의 불의와 거짓에 맞서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흔히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언급하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운운하고 교회의 중립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자와 성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가 타락했을 때,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타락에 일조했거나 자신의 낮은 도덕성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본회퍼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국가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는 국가를 향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국가의 행위는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책임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국가의 행위는 법과 질서를 낳았는가?’ 바꿔 말하면,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국가가 성경이 규정하는 대로 법과 질서의 환경을 조성하지 않을 때에는 교회가 국가의 결함을 지적하고, 국가가 법과 질서의 환경을 과도하게 조성할 때에는 교회가 국가의 과도함을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국가가 법과 질서를 과도하게 집행한다면 그 국가는 국가의 권력을 신장시켜 기독교의 선포와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권리를 박탈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지적을 지금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시대에 맞춰 해석해보라. 과연 지금 한국의 교회들은 거기에 뭐라 대답할 것인가.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한 것은 교회가 국가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 즉 “바퀴에 짓밟힌 희생자들을 싸매어줄 뿐 아니라 바퀴 자체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저지른 악행에 희생당한 이들을 돕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직접 국가를 고소하여 그러한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지금도 존경을 받는 건 군사정권과 유신의 암흑시대에 그 역할을 의연하게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런 추기경과 주교가 있는가? 세습에만 골몰한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그런 행동의 의향을 갖고 있는가? 오히려 싸구려 은혜를 팔면서 세력의 확장에만 힘쓰면서 뻔뻔하게 복음을 운운하고 신의 뜻을 팔면서 오히려 ‘예수가 하지 말라는 짓을 예수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본회퍼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고뇌와 결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 기독교는 보시는 바와 같이 너무나 서구화되었고 문명화된 사고의 영향을 너무나 깊이 받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본래의 정신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교회 저항 세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일 처리 방식에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저는 그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할 때가 두렵습니다. 기독교의 끔찍한 타협을 또 다시 목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요.”

뜨끔하지 않은가. 그는 종교만으로는 사악한 히틀러를 물리칠 수 없음을 인식했다. 그래서 칼 바르트가 히틀러를 만나 설득하려고 시도할 때 가망 없다 여기고 더 이상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독재자들에게 불의를 비판하고 설득하기는커녕 그들을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하며 앞 다퉈 ‘조찬기도회’를 개최하고 그것을 주관하는 일에만 열심이었던 교계 지도자들이 여전히 교회를 지배하는 모습을 그가 본다면 과연 뭐라 말할까 두렵다.

그가 처형당하는 날 마지막 인도한 예배(수용소에서 예배를 요청한 퓐더 박사와 상당수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였기에 예배를 강요할 마음이 없었던 본회퍼는 사양했지만 코코린이 직접 나서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고집한 까닭에 세상을 떠나기 전 스물네 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목사의 직무를 수행했다)에서 그가 인용한 성경 구절은 예언서인 이사야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인 1베드로서였다.

그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끝까지 예언자였으며 사도였다. 그의 유언을 부탁 받은 베스트는 본회퍼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자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제껏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성직자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삶, 그리고 그의 신학에 대해 알고 있을까.

교회와 성직자 그리고 신자들 모두 싸구려 은혜와 천박한 신앙의 틀을 과감히 벗어야 한다. 싸구려 은혜로는 절대로 삶을 바꿀 수 없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디트리히 본회퍼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읽는 내내 긴장과 감동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발걸음을 살피게 할 것이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이다. 
 

김경집 바오로
인문학자,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생각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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