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내주신 방을 무상임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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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내주신 방을 무상임대하라
  • 유수선
  • 승인 2017.11.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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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7

[유수선의 복음의 힘]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 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과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 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프란치스코의 기도인 ‘태양의 찬가’ 성가는 봄이나 가을에 불러도 가슴 벅차오르지만 죽음을 기억하는 11월에 불러도 좋다. 기도문 안에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한 줌의 흙이 되어 어머니이신 땅으로 돌아가 몇 십억 년을 이어온 우주의 생명의 품에 안기어 자연과 합일되리라는 비전을 가능하게 하기에 죽음을 생각해도 외롭거나 슬프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들인지 반문하시며 혈육의 담을 허무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을 모두 자신의 가족으로 초대하셨다. 최후의 심판 때를 이야기하실 때에는 굶주리고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자기에게 해 준 것이라시며 미소한 자들을 아예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고 성체성사를 통해 믿는 이 모두를 당신 몸에 결합시키셨다. 결국 그리스도인이란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만물을 지탱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두 한 몸을 이룬 거대한 유기체이리라.

 

과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도 만물이 모두 하느님 한 분의 창조의지와 정보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축적되면서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진화해 가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가진 우주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내가 단순한 하나의 생명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생명체의 출현을 향해가는 순례의 길 위에 있는 우주의 한 생명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이 성가를 불러보라. 언제 어디서고 충만한 생명이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믿음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점점 더 개체화 되고 집단 이기주의화 되어가며 건강, 부, 사회적 힘과 명예가 없는 이들이나 자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교회조차 경제논리와 효율성, 힘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누구를 그들의 어머니요, 형제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다. 또한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들이 같은 성체를 나누어 먹고 같은 말씀의 영으로 이끌려 살고 있는 형제자매라고 믿기가 어려울 때가 많고, 거저 받은 복음말씀을 다루는 대부분의 강좌는 유료이고 성전건물은 유상 대여를 하며 사회복지는 사업처럼 한다.

그래서 '가톨릭'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단체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선의로 복음을 전하거나 실천하는 일을 하려고해도 공간이나 비용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나 역시 가난한 이들과 동행하는 신앙공동체를 교회건물에서 하지 못하고 무상임대해주는 장학재단 건물을 이용해 운영하고 있다. 교회기관에서 특별한 미사를 봉헌하려고 해도, 성당을 빌리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자기집안 일로도 돈을 요구하는 교회의 사무행정을 쉽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난방비, 전기세 등 건물유지비, 혹은 관리적인 문제가 복잡할지 모른다. 하지만 만물의 생명을 무상으로 주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을 내걸은 집을 교회가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께서 방이 필요하시 답니다.”라는 글을 통해 도로시데이가 권고한 ‘환대의 방’만 마련해도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무시고 계신 공간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종교단체도 나라에 세금을 내야한다고 하는데 이참에 교회도 하느님 아버지께 십일조를 내는 맘으로 열흘에 하루, 한 달에 세 번은 무상임대 하면 어떨까? 건물의 일부 공간을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무상임대하면 어떨까?

11월과 12월, 예수를 낳을 마굿간을 찾아 헤매신 마리아와 요셉을 기억하며, 엄중한 최후의 심판의 말씀을 기억하며 교회가 그 넓은 공간을 예수님이 내 어머니요 형제로 여긴 분들, 그 분 자신으로 여기신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날을 꿈꿔본다. 세상이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는 방식을 ‘와서 보고’ 하느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길 빈다.

그리하여 살아 생전엔 양식도 못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며 고생만 하다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도 최소한 죽음의 순간엔 십자가에 달린 우도처럼 주님을 알아 뵙고 아버지의 낙원에 들어가 배불리 먹고 마시는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그들도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을 함께 살아온 우주생명체의 한 지체이기에.
 

유수선 수산나 
초원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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