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도시, 세월호 추모공원을 현장에
상태바
망각의 도시, 세월호 추모공원을 현장에
  • 진수미
  • 승인 2017.11.07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수미의 문화칼럼]

도시 공간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양피지라고 생각한다. 양피지는 말 그대로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종이다. 동물 가죽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털을 제거하고 말리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등의 공정이 필요하다. 파피루스나 종이에 비해 경제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반면 내구성이 탁월하다.

견고해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점이 양피지와 도시 공간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도시에는 어떤 형태로든 일단 건축물이 들어서면, 쉽게 허물 수 없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재건축 연한은 2014년에, 40년에서 30년으로 10년이나 단축되었다. 이 규제 완화를 놓고 여전히 말이 많지만, 적어도 30년 이상 천재지변이 나지 않는 한 그 자리에 상주해 있는 것이 건축물의 운명인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건물로 도시 공간을 채울 것인지의 문제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야 할 사안이다.

프라하 부브니 역, 홀로코스트의 증인

서울역사박물관의 아주개 홀에서는 10월 21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유니크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의 테마는 어바니즘(urbanism)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라는 부제를 달고 세계 여러 도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지난 4일 이 영화제에서 <프라하 도시계획(The Plan)>(2014, 벤야민 투첵)을 보았다.

영화는 2009년부터 2014년 사이 프라하의 도시 계획이 격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자본을 앞세운 개발업자들의 준동, 공무원의 부패와 무능력 탓으로 교육과 문화의 도시를 만들고 싶었던 프라하 시민의 꿈이 붕괴되는 과정은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유사한 한국 상황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라하 11지구 등 여러 지역이 비춰졌지만, 나는 특히 부브니 역에 주목했다. 이곳은 프라하 거주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보낸 기차역이다. 홀로코스트의 증거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개발업자의 눈에 이것은, 돈으로 환원되지 않기에 무가치하다. 그들은 공무원과 결탁하여 쇼핑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한다.

 

 

망각의 자유로움과 기억의 의무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과 이후의 전개를 보자.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32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추모비는 인도로 접근하기 어려운 다리 북단에 세워졌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5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골을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도 있었다. 하여, 사건 현장에 추모공원을 만들어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의견이 유가족에게서 나왔지만, 현재 그 자리는 고층주상복합 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위령탑은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양재시민공원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192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추모시설은 여러 반대에 부딪혀 팔공산으로 올라갔다.

이 예들은 개별적 특성이 모두 강해서 일반화가 어렵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망각의 자유로움에 비해 기억의 의무가 왜소해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 도심을 돌아다니면 표지석을 자주 만나게 된다. 유적이 있는 터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 그 자리에 역사적 설명을 곁들인 표지석을 세워서 해당 장소를 의미화 하는 것이다. 물론 표지석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세종대왕 탄생지인 세종마을에 유적지가 부재하다면 표지석이라도 만들어서 장소를 기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단성사처럼 백년 가까이 실물이 유지되면서 역사성을 간직했던 장소에 아무 특색이 없는 빌딩이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참담하기만 한 것이다.

표지석 문화, 문자중심주의와 자본의 협업

표지석 문화는 문자 중심주의와 자본이 협업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자언어는 추상화 과정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만난다. 이 방식은 이들을 위계적 관계로 묶는다. 이는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로 고착된다. 역사의 의미화에는 엘리트에 의한 문자 기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장소 속에서 공간 감각적으로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 스며들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역사성을 간직한 구조물이 자본의 헤게모니로부터 보호․보존될 수 있는 정책을 시 당국이 펼쳐야 한다고 본다.

도시 공간이 양피지에 비유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일반 종이와 다르게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도시 공간은 우리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종이가 아니다. 여러 세대가 거듭 고쳐 쓰면서 의미를 축적해가는 공간이다. 한국의 표지석 문화는 기억이 담긴 장소를 찢어버리고, 자본주의 논리가 잘 먹히는 새로운 용지를 펼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사진출처=경기일보

세월호 추모공원, 어떻게 만들까?

시민들이 역사를 망각하지 않으려면 자발적으로 도시 공간에 스며있는 기억을 발굴하고 다양한 감각으로 읽어내는 행위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볼 때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을 없애고 쇼핑센터를 짓는 계획은 기억의 의무를 망각하고 현재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잊힐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프라하 도시계획(The Plan)>에서는 부브니 역의 근황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체코가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교육․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에 기억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안산시의 세월호 추모공원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 거주자들의 바람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역사와 미래를 고려하는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