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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가톨릭일꾼으로 부르심가난한 이들에 대한 환대, 도로시 데이-1

그리스도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당신의 손밖에는.
그분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밖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통하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발로 뛰어다니시며 선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

세상 속에 깊이 투신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늘 내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생전에 헨리 나웬과 토마스 머튼처럼 행동과 관상을 통합시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신앙이 실효성 있는 믿음이 되길 갈망하는 까닭입니다.

도로시 데이는 기자 출신으로 이 세상의 어둠과 빛을 두루 보고자 하였으며, 세상의 불의를 고발할뿐더러 신비롭고 놀라운 사랑의 깊이를 돌이켜 보도록 합니다. 그녀는 여섯권의 책과 1천 5백편에 이르는 기사, 수필, 비평 등을 썼는데, “글과 행동, 둘 다 실천입니다. 둘 다 세상에 대한 윤리적 반응에서 나온 인간의 응답입니다.”하고 말했죠.

도로시 데이

도로시 데이는 1897년 미국 부르클린에서 한 자유기고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집에선 하느님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부터 그는 성인의 삶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병자들, 절름거리는 사람들,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성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움트고 있었답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 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고민 끝에 그는 종교에 문을 닫고,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에 희망을 두게 됩니다. 그의 친구들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좌익간행물이나, 반제국주의 연맹 같은 조직에서 일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편에선 슬픔과 외로움과 도덕적 영적 혼란으로 어지러웠답니다. 흥분된 정치참여가 초월성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완전히 덮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교회로 귀의합니다.

그녀가 회심한 것은 다만 슬픔 때문이 아니었지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행복의 경험으로 찾아왔던 거지요. 딸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가운데 그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고, 이러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그녀를 하느님께로 인도했던 거지요.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친구들과 남편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불가지론자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은 가톨릭주의를 경멸했고, 그가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연거푸 경고하였던 차였습니다. 여기서 도로시는 ‘하느님인가 사랑인가’를 택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가톨릭교회를 향한 그의 걸음은 곧 노동계층을 배신하는 것으로 비추어졌습니다.

 

도로시데이와 타말

그런데 응답은 피터 모린이라는 덥수룩한 사내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1932년 어느 날 주머니에 팜플렛과 자료 따위를 불룩하게 안고서 그는 도로시를 찾아왔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경제공황으로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도로시는 워싱턴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실업자행진을 취재하러 갔다가 워싱턴의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들러 “내가 가진 모든 재능을 동료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기를” 간청했는데, 그 다음에 이루어진 방문이었지요.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

피터 모린은 55세의 농부 출신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행동으로 옮길 고유한 비전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 적임자라고 이미 결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서의 철저한 사회적 메시지를 수행하는 운동을 생각해 냈습니다. 단순히 불의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질서, 노동의 철학과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에 바탕을 둔 새 질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부와 교회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의 비전에 따라 지금-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할 것이며,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를 창조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가톨릭일꾼(catholic Workers)'운동입니다.

1933년 5월 1일 성요셉 축일에 ‘가톨릭일꾼’ 신문이 유니온 광장에서 배포된 이래, 이 신문은 미국 전역에 있는 노속인들과 실업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행하던 ‘환대의 집’에 중심을 두고 있는 운동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톨릭일꾼공동체는 전통적인 애덕활동뿐 아니라 사회 정의와 평화운동에도 참여하였지요.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과 만난 뒤 50년 동안 이 운동에 몸담게 됩니다.

부르심이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도록 그분에게서 초대받는 것입니다. 이는 토마스 머튼이 말하듯이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에 응답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문제라서 정해진 길을 걷지 않고 자기 고유한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베네딕토는 수도원에서,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철저한 가난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길을 찾았습니다.

도로시 데이 역시 피터 모린의 첫 방문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으며, 그녀가 바라던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습니다. 그 답변은 도로시 데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러한 성인을 실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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