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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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기억하시나요?
  • 유형선
  • 승인 2017.10.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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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대개의 갈매기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행이 아니라 먹이다. 하지만 조나단에게 중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비행이었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무엇보다도 하늘을 나는 게 좋았다."(<갈매기의 꿈>, 14쪽)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기억하시는지요? 한 번이라도 새벽까지 책을 읽어본 십대 시절의 추억을 가진 분이라면 조나단 리빙스턴을 멋진 친구로 기억하실 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중학생 때 처음 조나단을 만났습니다. 서점 진열대에서 갈매기 사진이 멋지기에 펼쳐 보다가 가슴을 파고드는 글귀에 반해 책을 사고는 한숨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읽었던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고향집 떠나 하숙생활을 하던 외로운 시절, 학교 앞 중고책방에서 만난 옛 친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조나단의 꿈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1970년에 출간되어 명실공히 고전의 반열에 오른 <갈매기의 꿈> 이지만, 최근에 4장이 덧붙여진 완결판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말에서야 듣고는 즉시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시 돌아온 옛 친구를 빨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춘기 소년시절 만났던 친구였습니다. 혼란의 이십 대를 막 시작하던 시기에 다시 만났던 고향 친구였습니다. 이제 마흔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친구는 또 한번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이전에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은 끝이 아니었어!’ 라면서 말입니다.

새롭게 출간된 책에서는 기존의 <갈매기의 꿈>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완결판을 펴낸 이유를 원작자 리처드 바크가 에필로그 형태로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1970년 처음 출간했을 때, 작가는 1, 2, 3장 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고 여겨서 4장은 빼버렸습니다. 그렇게 잊혀졌던 4장의 원고를 반세기가 지난 몇 해 전 우연히 작가 자신의 집안에서 발견하였고, 고민 끝에 묵혀두었던 4장의 원고를 추가하여 ‘완결판’을 2013년 출간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현문미디어 출판사가 정식 계약을 맺고 번역하여 2015년 출간하였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등을 번역하신 공경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셨습니다. 

어쨌거나 고향친구 만나는 마음으로 완결판 <갈매기의 꿈>을 읽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혼의 자유를 아름답게 그려낸 이야기인데, 덧붙여진 4장으로 더욱 종교적이면서도 종교비판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3장 결말에서 조나단은 스승이 되어 제자 플래처를 가르치다가 떠납니다. 조나단의 마지막 가르침은 자신을 신(神)으로 섬기지 말고 그저 비행을 좋아하는 갈매기로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야기인 4장에서 조나단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갈매기들은 점차 비행연습을 하지 않고 그저 ‘위대한 갈매기의 유일한 아들’이라며 조나단을 숭배하며 거룩한 이에 대한 복잡한 말들만 읊어댑니다. 세월이 흘러 플래처가 떠나자 "플래처 님은 다른 최초의일곱 제자에 둘러싸였고, 구름이 갈라지면서 왕관을 쓴 위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께서 나타나셨고, 플래처 님은 성스러운 광선에 휩싸여 마법처럼 떠올랐으며, 갈매기들의 합창에 맞추어 하늘에는 구름이 다시 덮였다"는 공식 발표를 합니다.

"화요일이면 모든 비행이 중단되고, 활기 없는 새들이 모여들어 서서 ‘고위 부족 제자’의 암송을 들었다. 몇 년 사이에 암송이 정착되어 단단한 교리로 굳어졌다. (중략) 화요일이 되면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고위 제자가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낭송하는 것은 우월감의 표시였다. 그래야 새들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갈매기의 꿈> 126-127쪽)

"사암을 쪼아 슬픈 보라색 조개 눈을 박은 조나단의 동상이 해안을 따라서 세워졌고, 모든 돌무덤과 모조 돌무덤에서 이것은 돌이 상징할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200년이 지나지 않아 성스럽다는 간단한 말로 일상의 수행에서 조나단의 가르침은 거의 다 빠졌고, 모래벼룩보다 미천한 평범한 갈매기들의 열망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127쪽)

 

 ‘안녕? 난 너희 아빠와도 친구였단다!’

후대 갈매기들의 어이없는 모양새를 읽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갈매기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 멋지게 하늘을 날고 싶었고, 온 몸을 던져 스스로 실험해 보았다는 이유로 갈매기 무리에서 버림 받지만, 누구보다 멋지게 하늘을 나는 기술과 정신적 깨달음을 얻었던 자유로운 영혼 조나단 리빙스턴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갈매기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동상과 제도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물론 4장의 결말이 허무하게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갈매기는 또다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이해되지 않는것을 질문하고 답을 얻지 못하면 답을 찾아 스스로 실험하는 또 다른 자유로운 영혼 앞에 조나단은 다시 나타납니다. 이 멋진 대목은 책을읽으실 분들을 위해 이 정도까지만 설명 드리고 이만 함구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이 십여 년 만에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만, 언제 만나도 편안히 대할 수 있는 옛 친구 조나단 리빙스턴. 중학생 때, 대학생 새내기일 때, 불쑥 제 앞에 나타나 자유와 도전과 사랑을 이야기해주던 고향친구 조나단을 다시 만났습니다.  옛 친구는 여전히 조용한 떨림을 저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소중한 떨림을 <가톨릭일꾼> 지면을 빌어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조나단은 늘 옆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딸들이 저에게 또 하나의 조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두 딸과 함께 살면서 때때로 '딸들이 제 스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어린 딸들이 ‘이건 왜 이런 건가요?’라고 질문을 할 때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어 곰곰이 궁리하고 연구하다 보면 제 머리와 가슴 속에서 균열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지평이 보이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딸들의 질문을 마주대할 때, 제 몸에 배인 제도나 관습은 결코 답을 주지 못하지만,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영혼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음을 한발 늦게 알아채는 순간입니다.

마치 눈 앞의 먹이만 보는 대부분의 갈매기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린 딸들의 질문 덕에 그제서야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아이들 같은 마음이 제 마음 속에도 있었구나!’하며 그제서야 깨닫는 거지요. 

먼 훗날, 제 딸들도 저처럼 기성세대가 될 겁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제 딸들의 아이들이 제 딸들의 스승이 되어 줄 겁니다. 그렇게 되어가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중간 중간에 한번씩 자유로운 영혼 갈매기 조나단은 제 딸들에게 찾아 올 겁니다. ‘안녕? 난 너희 아빠와도 친구였단다!’ 라고 인사하면서 말입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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