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 그 한마디에 평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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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그 한마디에 평생을
  • 김원
  • 승인 2017.10.30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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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2017

[김원의 문화칼럼]

왜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것일까? 써놓고 보니 슬퍼지려 한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 정말 그 말을 죽기 전에 듣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됐다. 그 말을 듣고자 평생을 기다리며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요원한 과제다. 일본군에 강제 동원돼 성노예로 수난을 겪었던 할머니들 이야기다.

우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난 뒤, 그 ‘요원함’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는 시장통 민원왕 “도깨비 할매” 나옥분(나문희 분)이 구청 직원인 원칙주의자 박민재(이제훈 분)와 티격태격하다, 영어 과외를 받게 되는 과정으로 전반부를 채운다. 소시민들의 일상사가 소소한 웃음으로 이어지는 코믹한 전개다. 김현석 감독의 재주와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장에서 옷 수선을 생업으로 삼는 옥분은, 악착같은 동네 순찰과 질서위반을 금하는 잔소리로 시장 상인들에게도 평판이 좋지 않다. 특히 재개발을 둘러싼 건물주의 불법 행위를 숱한 민원으로 올려 수년째 구청 ‘블랙리스트 1호’가 된 옥분의 초반 인상은 험상궂기까지 하다. 그런데 옥분이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려던 진짜 이유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자연스레 우리 역사의 가혹한 상처와 맞닿는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채택이 있던 지난 2007년 6월 26일의 실화를 휴먼 코미디 장르로 풀어냈다. 결의안 제출로부터 만장일치로 통과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이때 미국 하원의원들이 결정을 굳히게 된 계기가 2007년 2월 15일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장에 선 이용수 할머니와 故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이었다. 재미있고 유쾌한 상업 영화로 빚어졌지만 묵직한 감동과 함께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깨운다. 그간 우리의 태도는 (의외로) 경직되고 편협하지는 않았는지를.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욕하는 차원으로는 이 과제를 풀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들을 증오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더 이상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절한 대오각성인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이런 고민이 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것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마음을 열고 동참하는 자세야말로 서로의 상처를 낫게 하는 치료제임을 웃음과 눈물을 통해 느끼게 한다. 영화의 힘이다.

무엇이 그토록 입을 다물게 했을까

감히 말한다. 만약 이런 서사의 주인공이 남성일 경우, 이것은 아마도 영웅담의 전형적인 시련과 역경, 고난 극복의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순진무구한 주인공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파괴될 위기에 처하지만 굴하지 않고 더 큰 성장을 이뤄내며 공동체를 위해 힘쓰는 이야기 구조 말이다. 이토록 꿋꿋한 의지와 숭고한 희생,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는 영웅이 갖게 되는 고귀한 덕목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성별이 남성인 ‘히스토리’의 경우다.

주인공의 성별이 여성인 경우, 고난이 험난할수록 귀향 혹은 환향 후에 공공의 돌팔매질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실제로 겪었든 겪을 뻔 했으나 용케 피했든 간에, 여성이기에 겪을 법 했을 ‘몹쓸 일’들에 대한 상상력은 꼬리표처럼 달라붙어 낙인이 되었다. 어쩌면 당사자들에게는 제대로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듯하다. 어차피 ‘버린 자식’ 취급이었다. 그 많은 상처 입은 딸들을, 숨기고 분리해내고자 했다. 죄 지은 자들의 전형적인 방어였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지켜주지 못한 죄가 하도 커서였을 것이다.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피해자를 죄인처럼 옥죄는 이중의 억압을 휘두르는 쪽을 택했다. 모두가 암암리에 공범자가 되는 동시에 모두의 상처는 속으로 곪아만 갔다.

아마도 ‘성(性)’에 대한 이중 잣대로 이 죄악을 포장했을 것이다. 온갖 물리적 폭력이 역경으로 가해져도, 남성의 경우에는 ‘성’이 훼손의 곡절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특히 동아시아의 아니 우리나라의 경우는, 완전한 억압과 강제연행과 폭력을 당했을 뿐인 전쟁 피해자들에게 ‘성’의 딱지를 붙였다.

그래왔다. 적어도 지난 백여 년의 서사는 일제강점기에 이 땅의 딸들이 겪은 일을 그렇게 치부했고, 반성도 없었다. 고려 시대의 공녀(貢女)라는 말과 환향녀(還鄕女) 그리고 화냥년. 이 낱말들이 품은 회한의 역사를 오랫동안 우리는 무력하게 방치했다.

 

못 이룬 고운 꿈과 눈물

옥분으로 출연한 배우 나문희의 모습은 감동 자체였다. 그 이상의 연기는 있을 수 없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 60여년을 가슴에 눌러두고 산 한마디. 그 신음소리가 외마디 비명으로 터져 나오던 순간에는, 전율마저 일게 했다. 극중 나옥분은 오랜 세월 벙어리 냉가슴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란을 피우며 온갖 민원을 올리는 우악스러움은 되레 그 말 못함의 반작용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차마 피어보지도 못한 채 송이 째 짓밟힌 꽃 같은 소녀들. 우리는 어린 옥분과 어린 정심을, 할머니가 된 그 소녀들의 깨진 꿈을 기억이라도 해드려야 마땅하다. 옥분이 그 아픈 ‘증명사진’을 간직한 곳은, 장롱 깊이 묻어둔 오래된 상자 속의 어떤 책갈피였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고 믿는다. 카메라는 책 표지를 흐릿하게 잡으며, 정심과 옥분을 포함한 소녀들이 나란히 선 흑백사진만 비추며 딴청을 피운다. 하지만 그 어슴푸레한 윤곽이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임을, 아마 눈여겨 본 관객들은 짐작하고도 남았으리라. 이 해묵은 상자가 말해주는 것은, 꽃 자수 손수건만큼이나 고이 간직해온 순정한 마음이었다. 윤동주 시 속에 나올 법한 갈래머리의 소녀들, 윤동주의 누이와도 비슷한 또래인 그 소녀들. 가슴 밑바닥을 흔드는 뭉클함이 이 말없는 책갈피에 배어 있다.

그렇게 말 못하는 슬픔을 안고 묵묵히 살았다.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상처에서는 내내 진물이 흘렀지만, 스스로는 닦을 힘조차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아픈 심정을 대변해 줄 ‘한 사람’이 꼭 있어줘야 했다. 그 한 사람이, 결국은 나의 무거운 우주를 바꾼다. 옥분이 애타게 기다린 존재도 그러했으리라. 옥분에게는 그 한 사람이 친구 정심(손숙 분)에서 민재로 극적으로 바뀌면서, 영어를 공부한 목적도 남동생과의 만남에서 우리 모두의 증언자가 되는 쪽으로 바뀌면서 대 전환이 온다. 어렵사리 벽을 깨고 나와 그토록 겁내던 세상의 눈초리 한가운데 우뚝 서게 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아득하지만, 그 사람만 바라보고 있으면 준비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힘을 낼 수 있었다. 평생 말문을 막던 살을 에는 슬픔을 겨우 잠시 내려놓게 된 것이다. 그 한 사람이 세상과의 믿음을 이어준 끈이었다.

사실 이 끈은 알고 보면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 명진 구청에서 날이면 날마다 마주쳤음에도, 막상 민재가 옥분을 이해하게 된 것은 고3 동생 영재(성유빈 분) 덕분이었다. 옥분의 ‘추운 방’에는 오랫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들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문턱을 쉽게 넘어온 사람이 영재였다. 마음이 추운 아이였지만, 닫히지는 않았다. 따뜻한 불빛을 찾아갈 줄 알았다.

 

민재는 옥분을 만나기 전까지 매사 떳떳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당당한 원칙주의자라는 겉모습으로 약하고 여린 자신의 내면을 단속해 온 사람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기울고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자, 어린 동생의 보호자로 사느라 꿈을 접고 9급 공무원이 된 민재. 굶주린 것이 집 밥인지 정(情)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꾹꾹 누르고만 살았던 날들이 길었다.

따뜻한 밥 먹으러 오라는 시장 할머니네 문턱을 쉽게 넘나드는 고3 동생만도 못한 옹졸함이었다. 낯가림일 수도, 딱딱하게 굳은 관성일 수도 있었다. 옥분 할머니의 둥근 밥상에서, 동생만큼 넙죽넙죽 맛나게 그릇을 비울 줄도 모르는 어정쩡함도 그래서다. 그랬던 민재에게도 변화가 온다. 지렛대가 반대편으로 기울 듯 역전이 왔다. 자기도 모르는 새 얼결에 찾아온 결단의 순간, 민재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번은 그 ‘사랑’을 표현해야 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극단적으로 외로웠지만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옥분 할매. 단짝이던 진주댁(염혜란 분)과 눈물의 화해를 나눌 때, 울지 않은 관객도 있을까.

초조와 불안 속을 더듬더듬 등불 하나 켜지 못한 채로 살아왔을 수많은 나옥분 할머니들.그렇게 감내한 60여 년 간 소망한 위로는 고작 “불쌍한 내 새끼, 고생 많았다. 욕봤다.”는 한마디뿐이었는데, 그 말을 못 들었다. 너무 서러워, 차마 죽을 수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옥분은 일본을 향해 오래 준비한 말을 외친다.

“제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달라. 그 말이 그토록 어려운가?”

할머니들의 증언이 있었던 2007년으로부터 또 10년이 지났다. 생존자는 이용수 할머니 포함 36분이 전부다. 그 분들이 살아생전에 꼭 듣고 싶던 그 말을 들으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제 후손들의 과제다. 일본의 사죄를 받는 일은 (우리)생각만큼 당연한 일이 아니며,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길고 험난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현재 그리고 미래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외세의 침략에 의해 할머니의 할머니 대로부터 태(胎)가 유린당했다는 깊은 자괴감에서도, 이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경 속에서 피붙이들을 지키고 스스로를 다져온 강인한 할머니들의 역사가 있었음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이보다 더 고귀한 인간정신의 승리가 또 있겠는가. 사람을 마치 일회용 소모품처럼 한 번 어긋나면 버리려 드는, 세상의 그 모든 인습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내신 그 용기야말로 할머니들의 위대함이다.

우리가 할머니들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스스로가 할머니들의 투쟁을 단지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측면을 넘어 그 이후의 열정과 용기로 되새길 때가 됐다. 그 고단했던 역사를, 이제는 바로 세울 때이다. 정치적 담합이나 거래보다 더 힘이 센 것은, 대중 정서의 변함없는 지지와 젊은 세대의 동참이라고 믿는다. 할머니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의 후손임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극예술을 통한 세상 읽기가 세상 잇기로 이어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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