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경청, 일상의 평화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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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경청, 일상의 평화로 가는 길
  • 이진권 목사
  • 승인 2017.10.30 0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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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권 목사 칼럼]

지난 추석 명절에 처가에 온 식구가 모였다. 오랜 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버님은 손자손녀들에게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지혜를 말씀해 주신다. 형제자매들은 서로의 삶을 오랜만에 다양하고 깊게 나눈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니 자연스레 평화와 기쁨의 에너지가 흐르게 됨을 경험한다.

학교나 교회에서 평화교육을 진행하면서, 단골메뉴로 넣는 것이 ‘경청 훈련’이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주제를 정해주고 이야기를 하게 한다. 단 대화의 방식이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잘 들어 주는 것이다. 침묵으로 듣고, 이야기 너머의 느낌과 진심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경청하도록 한다.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이렇게 깊은 대화의 경험을 일찍이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대화로 인해 서로를 새롭게, 깊이있게 알게 되었고, 내면이 치유되고 회복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연수를 가서 이 ‘경청 수련’을 해 보았다.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학교 공동체에 들어와서 이렇게 진지하고 풍성한 대화의 경험을 처음 해 본다고, 그래서 동료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고, 보다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피드백을 해 주었다.

안산지역에서 세월호추모공원을 둘러싼 워크숍이 있었다. 유가족들과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일반 주민들은 납골당이 포함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유가족들은 이것이 결코 단순한 추모공원이 아닌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문화를 교육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원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허심탄회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된 적은 없었다.

그 날 워크숍에서는 10여명씩 소그룹을 형성하고, 그룹별로 둥글게 앉아서,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돌아가면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나누었다. 자신의 차례에 충분히 말하고 공감하는 경청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대화를 나눈 후에는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는 소감들이 나누어졌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렇게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진실을 평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참된 대화를 경험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별로 없다. 듣게 되더라도, 너무 쉽게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판단하고, 충고하고, 끼어들고, 간섭한다. 이렇게 되면, 대화의 풍요로움이나, 경청의 깊은 평화를 경험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린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리스도교 신앙은 전적으로 경청으로부터 형성된다.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고, 그대로 따름으로서 신앙의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게 되었다. (창세기 12장)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여인이 되었다.(루카 1장 26-38)

그리스도인들의 경청은 ‘거룩한 경청’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경청한다. 성서를 읽고 묵상함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고요하게 듣는다. 공동체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눔으로써, 우리 가운데서 현존하시고 말씀하시는 그 분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잘 아는 이웃들과의 평범한 대화속에서도,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말씀하고 계실 수도 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주의 깊게 경청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임한다면, 일상적인 사건과 대화속에 담겨 있는 풍성한 보화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신앙생활의 다양한 국면 모두가 ‘거룩한 경청’으로 연결될 수 있다. 교회 안의 이렇게 풍성한 영성생활의 실천을 통해서, ‘거룩한 경청’이 경험되고 수련이 이뤄져, 삶의 태도와 습관으로 정착될 수 있다면, 교회가 경청의 공동체로 더욱 성숙해져 간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분명하고 풍요롭게 지금, 여기에서 평화를 맛보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교회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이진권 목사
평화교육센터 ‘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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