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귀신 이야기 "죽어서도 서성거리는 독재자들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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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귀신 이야기 "죽어서도 서성거리는 독재자들의 망령"
  • 유대칠
  • 승인 2017.10.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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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16]

‘무서운’ 귀신이야기를 하려 한다. 유럽의 중세 사람에게도 귀신은 무서운 존재였다. 죽었지만 천국도 지옥도 심지어 연옥도 아닌 현실 속에 나타나 산 사람을 괴롭히는 무서운 존재였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야코부스 데 클루사(Jacobus de Clusa 1381-1465)라는 시토회 수사는 <육체로부터 벗어난 영혼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animabus exutis a corporibus)라는 귀신을 다루는 책을 쓸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하인리히 폰 랑엔슈타인 (Heinrich von Langenstein, 1325-1397)도 이와 관련하여 <영의 식별에 대하여>(De discretione spiritum)라는 책을 썼다. 또 파리대학 총장이던 장 제르송(Jean Gerson, 1363-1429)은 귀신이란 환시에 대한 다루는 <거짓 환시로부터 참된 환시의 구분에 대하여>(De distinctione verarum visionum a falsis)라는 책을 썼다. 파리대학의 총장을 한 이로부터 대학 교수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한 것을 보면, 이 문제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고민이었나 보다.

 

권력자가 귀신보다 무섭다

‘헬레퀴누스’(Hellequinus)와 ‘헬레퀴누스의 군대’는 중세 대표적인 귀신이다. 12세기 헤르베르트(Herbert von Clairvaux)의 <기적에 대한 책>(Liber miraculorum)과 13세기 초 시토회 수사인 플로레스 헤리난디(Flores Helinandi)의 <자기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De cognitione sua)에서도 헬레퀴누스는 나온다. 그냥 잠시 유행한 귀신이 아니다. 오랜 시간 중세 사람들의 밤을 두렵게 한 그런 귀신이었다.

13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 명인 기욤 도베르뉴(Guillaume d'Auvergne 1180-1249)도 바로 이 귀신에 대하여 자신의 주저 <우주에 대하여>(De universo)에서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헬레퀴누스’라는 이 이름은 원래 ‘카를레퀴누스’(Karlequinus)에서 나온 말이다. 또 이 말은 ‘카를로스 퀸투스’, 즉 ‘카를로스 황제’란 말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기틀을 잡은 왕조가 바로 카를로스 왕조다. 사상사에서도 그 왕조의 중요성은 특별하게 다루어진다. 그런데 그 왕조의 황제들은 죽어서도 민중을 괴롭히는 귀신이 되어버렸다. 왜일까? 생전에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저지른 민중을 향한 죄악은 민중에게 고통이었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우리는 카를로스 왕조의 성공을 기억하지만 그 성공의 거름은 수많은 민중의 죽음과 고통이었다. 발전을 위한 전쟁에서 죽은 이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의 그 깊은 아픔은 어찌 헤아리겠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헬레퀴누스 귀신의 모습은 그 지워지지 않은 고통, 그 고통의 환시일지 모른다.

귀신을 이용해 득을 보는 교회

중세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귀신은 죽은 권력자의 귀신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죽어 썩은 육체만 남겼지만, 민중의 기억 속에선 여전히 공포이고 아픔이었다. 헬레퀴누스가 죽지 않은 귀신이 된 것은 그에게 당한 민중의 기억 때문이다. 아직도 ‘박정희’라는 이름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의 그 슬픈 모습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 아픈 기억은 가해자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종교는 이러한 아픔을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귀신이란 상황을 이용했다. 사회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귀신이나 사후의 구원과 같은 것을 수단으로 필요 이상으로 겁을 주었다. 몇몇은 헬레퀴누스 귀신을 겁을 주기 위해 이용하기도 했다. 교회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그 아픔을 이용한 셈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빠진 어느 중세의 수도회는 알폰소 7세를 찾는다. 그리고 그의 죽은 할아버지 귀신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저승에서 고통 받고 있으니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해결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수도원의 부채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귀신을 두고 이렇게 교회는 이득을 챙겼다. 이런 일은 흔하게 있었다. 장 제르송과 그의 스승 피에르 다이이 추기경(Pierre d'Ailly, 1350-1420)은 신비를 이용하는 교회의 악행을 지적했다. 이미 아플대로 아픈 힘든 민중에게 귀신 따위를 이용해 겁을 주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다이이 추기경은 이런 내용을 담은 <교회의 개혁에 관하여>(De Reformatione Ecclesiae)를 남기기도 했다.

죽어 사라진 잔인한 권력자의 폭력은 가해자가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남는다. 여전히 아파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아픈 이를 위로하기보다 이득을 계산했다. 어쩌면 중세의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현실이 아닐까 싶다.

 

불국사에서 열린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제에 박정희 초상화가 걸렸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아직도 귀신이 되어 남아있는 독재자

지금도 또 다른 이름의 ‘헬레퀴누스’를 만난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그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있다. 온전한 처벌과 위로 없이 그 아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절대 수 년 전 있었던 과거의 것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삶, 그 고통의 시간도 그저 사라진 과거가 아니다. 물리적 시간과 아픔의 시간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절대 과거가 지나가지 않는다.

1980년 5월의 광주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있었던 제주의 아픔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피해자는 아파한다. 돌아보자. 교회는 그 아픔 앞에서 얼마나 무엇을 했는가? 혹시 누군가는 그 가운데 독재의 편에 서서 무엇인가를 챙기지는 않았는가? 돌아보고 지금 이 순간의 삶도 경계해야 한다. 유럽의 발전을 이룬 카롤로스 왕가는 헬레퀴누스라는 귀신으로 민중에게 남았다. 죽어도 여전히 민중에게 아픔을 주는 귀신으로 남았다.

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즉흥극인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서 헬레퀴누스는 민중 앞에 할리퀸(Harlequin)라는 광대로 나타난다. 그 공포가 지워지는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정말 너무나 오랜 시간 민중은 그 귀신이 두려웠다.

우리의 과거 독재자들은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은 기억과 그 시대의 잔재들은 귀신이 되어 우리에게 남겨져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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