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은 군복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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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은 군복을 벗어라”
  • 한상봉
  • 승인 2017.10.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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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아니라 ‘종군’사제를 기대한다

[한상봉 칼럼] 

“1953년 휴전 협정으로 6·25 전쟁이 중단되자, 안달원 신부를 마지막으로 신부들이 소속 교구로 돌아가고 군사목이 공백 상태에 빠져 있다가, 5·16 군사혁명 이후 다시 신부들이 활동하며 군사목을 실시하였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지원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형편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제50회 군인주일 담화문, 2017)

군종교구장인 유수일 주교가 10월 1일자로 발표한 군인주일 담화문에서 ‘516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표현해 논란이 빚어졌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가 ‘역사교과서’ 파문으로 이어졌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한국사회의 인식변화를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군사혁명’이란 표현은 아마도 유수일 주교, 또는 대필한 분이 무심코 생각 없이 담화문을 적어내려 가면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실수라 해도, 집필자의 뇌리에 박힌 ‘역사의식 부재’를 해명할 길은 없다.

한국전쟁 이후 존폐위기에 선 군종사제단이 다시 활성화된 것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한국사회를 ‘병영국가’로 만들고,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순신 장군을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고, 대구대교구의 평신도 대표격인 이효상이 민주공화당에 뼈를 묻으면서 “군부의 지지를 받지 않는 대통령이 나오면 정국이 혼란해 진다”는 논리로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부채질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교회 한편에선 ‘군인사목’ 확장의 호기라고 좋아하고, 다른 한편에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나서는 바람에 정권과 갈등을 빚었다. 이런 점에서 군종사제단 입장에서 5·16은 ‘혁명’이고, 사제단 입장에선 ‘쿠데타’일 수밖에 없었다.

유신정권 당시 <횃불>이란 유인물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나서는 사제들을 비난해 온 세력은 퇴역장성들이 포진한 군종후원회였다. 정권은 군종사제들을 인질로 삼아 가톨릭교회 안에 친정부적 근거지를 마련했고, 이러한 양상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극심해졌다. 사실상 군종사제단은 군사정권과 가톨릭교회의 교두보였다. 교회는 신자 배가의 ‘안정적 황금어장’인 군대가 요긴했고, 군사정권은 ‘골치거리’였던 가톨릭교회를 다독거릴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통해 많은 영역에서 ‘민주화’가 진행되었으나, 군대는 특성상 ‘민주주의’가 충분히 와서 닿지 못했다. 그리고 군종교구 역시 의식변화에 가장 느리게 반응하고 있다. 군종사제 자신이 ‘군인’이면서 동시에 ‘사제’라는 점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by Ade Bethune

군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군종교구에서는 군인을 “정의와 평화의 수호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교회교리서> 2311항과 <사목헌장> 79항에서 “군생활로 조국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 임무를 올바로 수행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국가의 공동선과 평화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종사목에 복무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자 군인들이 자신의 삶과 구체적인 증언을 통해 ‘군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음은 물론 ‘군인’이면서 ‘성인’일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복음서에서도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마태 8,5-13)과 골고타 십자가 밑에 서있던 백인대장(마르 15,39)의 경우처럼,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본 군인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교회에서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던 로마제국의 군인이면서 동시에 제국에 의해 박해받던 그리스도인이 될 방법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군인은 때로 ‘정의와 평화의 수호자’가 될 수도 있지만, 1980년 광주에서 보았듯이 독재정권의 잔인한 손발이 될 수도 있다.

사실상 초기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순명료한 평화주의자’였다. 물론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각자를 부르셨을 때의 상태대로”(1코린 7,17) 로마군대 안에도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제국의 군대가 일종의 경찰로서 팍스 로마나를 지키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병사의 신분을 이상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공식적인 우상(황제)숭배에 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아누스 성인처럼 황제숭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군인들도 있었고, 투르의 마르티누스 성인처럼 전투에 나가 살인을 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병사도 있었다. 전승에 따르면, 마르티누스는 “나는 그리스도의 병사이므로 타인을 죽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기꺼이 생명을 바치겠다고 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테르툴리아누스 성인은 예수가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고 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모든 병사의 무장해제를 명하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로마제국 안에서 ‘반사회적 집단’으로 박해받았다. 이런 비판에 맞서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하느님이 계약을 알지 못하던 시절의 전통적 관습을 따르지 않고 이제는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칼을 겨누지 않으며 더 이상 전쟁 기술을 익히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평화의 자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교회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신국>을 통해 ‘정당한 전쟁론’을 주장하며 “그리스도인은 성직자나 수도자로서 완전히 영적 삶에 자신을 바치지 않는 이상, 자기가 사는 지상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도 참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적어도 사제들은 무기를 손에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군종사제가 군복 안에 로만칼라를 끼어 넣는 행위는 ‘평화주의적’ 교회전통에 위배된다.

 

국방TV 캡처화면

군종사제의 소속은 군대인가 교회인가?

<한국군종교구 정관>에 따르면, “군종신부란 우선 소속 교구장 또는 수도장상의 동의를 얻은 다음 이차적으로 군사훈련을 마치고 국방장관으로부터 장교로서 보임된 천주교 사제”로 되어 있다. 따라서 “군종사목에 종사하는 천주교 사제들은 교회 당국과 군 당국의 양쪽 요망사항을 충족시켜야 한다. 군종사제는 교회에 속하지만 동시에 군의 계급, 군의 제복, 봉급 수령 및 군의 근무규정 때문에 군에 속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군대에 가야하므로, 우리들의 자녀이며 동료이며 형이며 오빠인 그들의 영적 생활을 돌봐야 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군종사목’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인사목’을 수행하는 사제들이 꼭 ‘군인 신분’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교회의 경우에, 1951년 한국전쟁 당시에 11명의 사제가 군종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무보수 촉탁 문관 신분이었다. 그 후 1961년에야 한국 군종사제단이 주교회의의 정식 인준을 받으면서 사제들이 군인 신분을 취했고, 1989년에 교황청의 인준을 얻어 한국 천주교 군종교구가 설립되었다.

군종사제들이 군인 신분을 취하면서, 이들은 줄곧 교회와 국가조직 사이에서 “한쪽 발은 하느님 나라에 있고 다른 한 발은 군화 속에 있다”는 점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어 왔다. 그리고 군종사제들이 군사문화에 길들여져 ‘군사화’되는 것을 우려해 왔다. “군종사제는 비록 장교로서 계급을 받지만 사제 특성상 계급을 초월한다.”고 가르치지만, 상명하달의 계급문화는 군종사제들의 의식구조를 계급화시켜 보편적 형제애를 살아야 할 교회 안에서 권위주의를 고착시킬 위험이 언제나 있다. 통상 군종사제들은 근무 경력에 따라 중위나 대위로 임관되며, 대령까지 진급이 가능하다. 장교로 임관되는 사제들은 마치 기업의 노무담당이 노동자의 입장에 서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병들의 입장에 서기 힘들다.

정훈장교처럼 군종사제는 사병을 교화대상이나, 돌봄의 대상으로만 접근할 위험이 있다. 더욱이 1997년에 발표된 <군인신자의 신앙생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에 따르면, 군종사제를 매주 만난다는 사병 응답자는 52.2%였고, 위관은 71.4%, 영관은 86.0%, 그리고 장관, 즉 장군들은 100%로 나타났다. 이럴 때, 군종사제들의 의식은 자칫 군 수뇌부의 이념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선교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면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상급자들을 자주 만나 친밀감을 나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필승을 다짐하는 장교들 앞에서 사제들이 교회의 가르침대로 ‘승리 없는 평화’를 이야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종군기자처럼 종군사제가 정답이다

국방부에서 군종사제단을 허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필승의 신념과 정신전력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종교적 신념으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전쟁에 나가라는 것이다. 이른바 일제식민지 시대에 교회가 “순교의 정신으로 보국하라.”고 강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국가주의 때문에 나라에서는 국민에게 세금을 걷어 천주교 사제들에게 제복도 주고 봉급도 준다. 교회에 성당 부지도 내어준다. 그러나 이런 필승의 신념은 “원수마저 사랑하라”던 예수의 뜻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군종사목은 ‘선교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군 선교전략’을 짜느라 복음적 요청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2017년 군종교구장 사목표어는 “군(軍) 복음화, 새 열정으로!”이다. 총력을 기울여 오직 새 신자 영입에 골몰하고 있다. 그게 전부다. 군종교구장이 프란치스코 영성에 기반한 ‘작은형제회’ 출신이지만 사목교서에서 ‘평화의 기운’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군대란 그런 곳이다.

농민사목이나 노동사목을 위해 사제가 반드시 농민이나 노동자가 될 필요가 없듯이, 교정사목을 하기 위해 사제들이 교도관이 될 필요가 없듯이, 군인사목을 위해 사제가 반드시 군인이 될 필요는 없다. 분쟁지역이나 전쟁터에서 취재하는 언론사 기자를 ‘종군기자’라고 부른다. 군대를 따라다니며 취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 소속이 아니라서 소속 언론사 지침에 따라 행동한다.

군인사목을 하는 사제들을 ‘종군사제’라고 부르면 어떨까. 군대의 밥을 먹는 ‘군종’이 되지 않고, 다만 그곳에도 하느님 백성이 있으므로 군대를 따라다니며 사목하는 사제들이 필요하다. 이런 사제들에게 군의 명령은 참고사항일 뿐이며, 여전히 교회 밥을 먹으며 교회의 사목지침을 따르는 ‘종군사제’가 더 복음적이다.

군종교구가 군 인권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등 민주주의와 관련한 예민한 사안에 전혀 나서지 못하는 것도 군종사제들이 국방부 소속이라는 애매한 신분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교회는 군의 존재이유보다 인간의 존재이유와 그들의 존엄성에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7년 10-11월호(통권 9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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