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머튼 "비폭력은 억압자의 환상을 벗겨낸다"
상태바
토머스 머튼 "비폭력은 억압자의 환상을 벗겨낸다"
  • 한상봉
  • 승인 2017.10.18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homas Merton, 1915-1968 신비주의와 저항의 미학, 토마스 머튼-3

트라피스트 수도원 창문턱에는 ‘오직 하느님께만’이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의 침묵과 자연의 안식, 그리고 정기적인 기도생활에 녹아들어가 오직 하느님께 집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독을 깊이 있게 응시하게 되면서 '사회적 고독'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타자의 발견

머튼은 1951년 10년째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머물면서 "이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께만' 쏟아부었던 열정이 정화와 고독을 통해 ‘모든 사람과 더불어'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서 미국사회 안에서 인종갈등이 극심해지고, 베트남 전쟁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는 상황을 보면서, 머튼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응답할 준비를 했지요. 세상과 교회, 실천과 영성 사이에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를테면 1968년 12월 10일 그가 죽던 날, 방콕에서 머튼이 강연한 주제는 ‘마르크스주의와 수도원주의’였습니다. 이날 어느 프랑스 학생혁명 지도자가 “우리도 역시 수도자”라고 말하자, 토마스 머튼은 “수도자는 본질적으로 현실세계와 그 구성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토머스 머튼

관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며, 침묵과 고독과 기도는 개인적 자산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과 돌보아야 하는 이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머튼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베트남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사실은 자신의 깊은 곳에도 도사리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먼저 내 안의 파시즘을 척결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편 머튼은 수도자들이 세상에 대한 경멸의 외투아래 복음이 명령하는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수도자로서 가진 소명은 세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도 세상을 경멸하여 등을 돌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도자의 임무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현실을 포장한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었지요. 이는 관상의 본질에 속합니다.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관상의 본질이다

머튼이 사회적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제임스 볼드윈과 마하트마 간디였습니니다. 볼드윈은 흑인문제가 사실은 백인의 문제라고 알려주었지요. 백인들이 자기들 마음 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파괴와 폭력의 뿌리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선한 백인들의 노력조차 일시적 감정에 그치고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미국에서 비폭력운동이 좌절되고 블랙파워 등의 과격한 운동이 기승을 부리면서, 머튼은 자기 마음 속 폭력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 모든 게 다만 전략과 전술에 머물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때에 머튼은 좀 더 깊숙한 곳에서 배어나오는 비폭력 저항의 원천을 탐색하면서, 아시아 종교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간디의 비폭력>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면서,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 지금 우리의 상황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그 속에 선을 향한 회심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불가역적이고 가시적이며 윤곽이 뚜렷한 종양이라면, 남아 있는 방법은 그것을 잘라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악이 되돌릴 수 있고 용서를 통해 선으로 바뀔 수 있다면 비폭력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머튼은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폭력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필요조건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영적 자유의 최고형태는 피억압자와 억압자를 동시에 해방하는 마음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피억압자는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간디의 비폭력, 14-15)

머튼에게 새로운 사막으로 등장한 하느님의 자비는 연대의 체험에서 나왔으며, 이런 체험을 통해 우리가 세상과 다른 이들 속에서 발견하는 악과 죄와 폭력이 실은 자신의 가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