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살아있는 제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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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살아있는 제물인가?"
  • 유수선
  • 승인 2017.10.18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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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6

[유수선의 복음의 힘 6] 

그토록 그분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이길 원했고 또 좋아했지만, 요즘은 일곱 식구와 재단, 부모님과 늘품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 요구되는 일을 처리하다보면 아침 6시부터 밤늦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지낸다. 그러다 보니 일상을 벗어난 모임이나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가장 길게 앉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이 미사시간, 그중에도 주일미사 시간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듣는 성경말씀은 하나하나가 내게 생명의 양식이며 빛이 되었다.

회갑을 맞는 달이어서 그런지 9월 순교자성월 말씀들이 유난히 내 골수를 파고들었다. 선물처럼 베풀어주신 지난 모든 삶의 궤적과 만남들에 대한 감사가 나를 과거의 집착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총을 받은 결과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성찰 떄문이었을까? 9월 3일 제2 독서 말씀에 사로잡혔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1-2)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나와 믿음 안에서 동행하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온전히 하느님의 선한 뜻에 맞갖은 산 제물로 봉헌된 존재임이 또렷이 각인되었다. 종종 내 생각 안에 가두려 애썼던 모든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용서를 청하며 그들을 한 사람씩 주님께 다시 봉헌하며 그 분의 뜻이 그들 안에 이뤄지길 기도드렸다.

30여 년 전 주님을 만난 시간을 기억하며 세상 풍파로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말씀을 들으며 함께 기도하려고 시작한 모임들이었는데 어느새 교육자로, 동역자로 변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모든 기도모임, 성경 모임을 접고 늘품미사만 드리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미사와 음식나눔을 통해 진실 된 봉헌과 기도, 풍요로운 나눔과 찬미가 봉헌되도록 형제자매들과 함께 정성껏 준비하리라. 가끔은 경제적 사정이 허락되면 성지순례를 하며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나눔을 하는 자연피정도 하겠지만.

 

사진출처=pixabay.com

9월 10일 그 다음 주 미사에 갔는데 이번엔 화답송 말씀이 맘을 붙들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시편 95(94),7-8)”

‘요즘 내가 못들은 척한 주님 목소리가 뭐였지? 내게 주님의 목소리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도와달라는 외침인데.’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5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70세가 된 완전 맹인인 한 형제가 늘품에 도움을 청해 왔는데 거절한 적이 있었다. 설마 그 형제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인가?

9년 전 쉼터에서 싸우고 나와 혼자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활동보조인과 주변사람들도 감염인인 걸 알게 되어 더 이상은 거기서 외롭고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도움을 청해 왔다. 여기는 쉼터가 아니니 다른 쉼터들을 알아보라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 어느 곳도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해 형제가 몹시 상심하며 다시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증금을 빌려 줄테니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니던 장애인 복지관 가까운 집으로 이사하도록 방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맹인이고 70세 노인 남자 혼자서 산다고 하니까 아무도 집을 세주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은 터였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가족도 버렸고, 쉼터를 운영하는 수사님, 수녀님들도 못 하신다고 하잖아요.‘ 그 때 마음 안에서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물고기 2마리와 보리빵 5개만 주면 5000명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은 나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고 오늘 복음이 기억났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밤새 뒤척이며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할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고 그 형제와 과거에 잘 알았던 봉사자가 생각났다. 아침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마음의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나와 함께 물고기 2마리와 보리빵 5개 봉헌하는 아이가 되어 줄 수 있는지. 서울에 방 하나 얻으면 그 형제를 돌보겠냐고 물었다. 언니가 한다면 하겠다고 하였다. 자기도 어제 밤 내내 마음이 쓰여 내일 그 형제에게 가 보려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우연의 일치인가? 그래서 우선 함께 가서 보자며 차를 몰았다.

그는 낡은 농가주택 무보증 15만원 월세에 살고 있었다. 마당 한 구석에 세워진 푸세식 간이화장실은 더럽고 냄새가 심해 맹인이니 사용가능했겠다 싶었다. 한 편으로 눈비가 오는 6년을 맹인이 문 밖으로 나와 변기통에 빠지지 않고 사용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부엌과 몸을 씻는 곳은 방 옆으로 슬레이트만 덮어 확장한 곳으로 난방이 안 되었다. 게다가 몸을 씻는 곳은 바닥에 돌이 깔려있고 수도꼭지와 물동이가 있을 뿐 문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6년을 살았을까?

한 순간도 있기 힘들어 울컥하여 말을 못하고 집을 나와 장애인 복지관 근처 복덕방에 들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침 복지관 앞 1분 거리에 깨끗한 원룸이 하나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복지사들도 2명이나 그곳에 산단다. 가격이 예상보다 비쌌지만 주인을 만나 가격조정도 하고 형제에게 돌아와 의견을 물었다. 보증금만 빌려주신다면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고 싶단다. 그래서 그 길로 가계약을 하고 사회 복지사에게 이사를 부탁하고 돌아왔다.

‘피할 수 없다면 형제들을 위한 노인 요양원이라도 해야지’ 생각하며 미래의 시간을 온전히 그 분께 산 제물로 봉헌하는 맘으로 길을 떠났는데 ‘야훼이레’ 이신 그 분은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셨고 물고기 2마리와 보리빵 5개만 받으셨다.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오롯한 마음만 받으신 것이다.

자매와 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이끄심과 활동에 환성을 올렸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멋진 우리 아버지!’ 손가락질하던 주위사람들과 도와주는데 지쳐있던 복지사도 놀라워하였다. 하느님이 누구시기에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멀리서 달려와 버림받은 저 맹인을 도와주는가? 그 형제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쉼터 수사 수녀님들도 고마워하셨다.

가장 놀란 것은 형제다. ‘주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끈질기게 도움을 구한 끝에 응답을 받았으니 얼마나 고맙고 기쁘겠는가? 그는 10월 늘품 추석 모임에 참석하여 감사미사를 함께 드리고 싶다고 처음으로 음성에서 혼자 길을 떠나 서울에 왔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는 찬송가를 하모니카로 봉헌하고 돌아갔다. 미사에 참석한 형제들과 교우들이 큰 감동과 영적 자극을 받았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그 작은 봉헌을 받으시어 보잘 것 없는 이에게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미와 영광을 받으셨다. 절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찬미가 흘러나왔다.

오- 하느님 받으소서 당신께 드리는 제사를 소리높여 주님을 찬미해
홀로 하나이신 하느님 자녀 된 우리 경배하고 나의 몸과 찬미를 드리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유수선 수산나 
초원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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