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우 관계…맑음, 때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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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우 관계…맑음, 때론 비
  • 진수미
  • 승인 2017.10.02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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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미 문화칼럼] 

여성인권영화제(압구정CGV, 2017년 9월21일~24일)에 다녀왔다. 학대받는 여성을 돕기 위해 1983년 발족한 ‘(사)여성의 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이 영화제는 올해로 11회를 맞이했다. 1997년 첫 선을 보인 여성국제영화제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일상적으로 침해당하는 여성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제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뼈아픈 진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뼈아픈 진실>(Home Truth, 2017, 카티아 매과이어, 에이프릴 헤이스)은 가정폭력 혹은 데이트폭력처럼 친밀한 이에게 여성이 피해를 입는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이다. 제시카 곤잘레스는 미국의 콜로라도에서 1989년 사이먼과 결혼, 세 딸을 낳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사이먼에게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별거를 선택하는 동시에 접근금지명령을 받아낸다.

1999년 어느 날, 어린 세 딸이 제 때 귀가하지 않자 불안감에 휩싸인 제시카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이먼이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가 아버지임을 강조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은 사이먼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모습으로 제시카에게 돌아온다.

이 영화는 여성의 목소리가 법의 울타리에서 쉽게 배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권력에 합법적인 이유와 방법으로 도움을 구했던 이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여성의 목소리는 비극이 현실화된 이후에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이후 제시카는 접근금지명령 대상자였던 남편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경찰의 대처에 항의하며 명령이 실효성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로 변신한다.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제시카는 처음에는 변화된 삶을 긍정하는 운동가의 모습을 보이지만, 정부를 상대로 한 답답하고 지루한 싸움에 지쳐간다. 가정폭력의 트라우마가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파괴하는지 그 극복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이 영화는, 제시카의 현실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려낸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평범한 커플들>

이처럼 여성인권영화제가 극단적으로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사건만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의 다큐멘터리 <평범한 커플들>(Every Other Couple, 2016, 미아 할메)은 이혼을 경험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다룬다. 이혼의 낙인은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화된 성평등 지수를 자랑하는 북유럽에서도 이혼은 친지의 죽음을 겪어내는 것처럼 힘든 일로 인식된다. 영화는 이혼 후에도 이혼 당사자들의 삶이 지속되며,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그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성숙해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상영 후 활동가와 평론가와 함께 하는 ‘피움톡톡(Talk Talk)’이 열렸다. 간담회의 끝 무렵 흥미로운 주제가 한 관객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변하지 않은 안정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였다. <평범한 커플들>이 고정적 관계에 이별을 고하고, 그로 인해 성숙해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내면화된, 안정된 관계를 추구하려는 욕망에 반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내가 <품위 있는 그녀>에 대한 칼럼에서 제기한 문제와 상통한다. 그때 제시한 결론, 외로움을 긍정하며 자신의 시간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은 단독자로서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할 때 가능한 말이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없다. 우리는 공동체에 소속된 존재로서도 자아를 정립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관계가 고통스럽고 또 자꾸 피해의식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던 때, 한 선배는 너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충고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착하다는 뜻으로 통상 해석되는데, 경험상 착해 보이는 사람은 오늘날의 생태계에서 하이에나들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약탈 경제적 환경은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하이에나로 만든다. 성당에서 나는 사람의 표정이 절반만 자기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절반은 얼굴을 바라보는 타인의 것이므로 항상 밝고 온유한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라 이르셨다. 이러한 가르침을 배우며 만났던 한 성당 친구는 보험업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형편이 어렵다던 그녀를 돕고 싶었고 또 그렇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적 손실을 크게 보았다. 이 실망감은 결국 관계마저 망쳤다. 친구까지 잃게 된 것이다. 나는 세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야무지게 자신을 관리하는 중심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따르는 한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나쁜 물에서 놀지 말라”고 충고하신다.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충돌하는 이해와 가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삶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또 성장하며 살기에도 짧다. 따라서 설령 가족이더라도 지향점이 다르면 멀리 하라고 당부하신다. 이 작업은 통상 ‘물갈이’라고 표현된다.

여기에 더해서 나는 당신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면, 그들과 느슨하면서도 다원적인 관계를 맺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고정되지 않은 관계를 즐길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망을 안겨도 너무 깊이 좌절하지 않게 된다. 그들을 절친이 아니라 ‘그냥 친구’ 정도로 수위 조절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관계는 날씨처럼 가변적이다. 날씨처럼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맑았지만 내일은 흐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가 혹한기라 해도 다가올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고정된 관계를 찾으려는 마음의 근원은 이해하지만 나는 그것이 바람직하기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느슨하면서도 다원적으로 관계를 맺는, 공동체의 수를 늘려 보자. 그 얼키설키하면서도 유연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당신의 고독과 결코 배치되지 않을 것이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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