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동정심과 다른 것이다. 동정심은 거리감이 있고 심지어 어떤 생색내는 자세도 들어있다. 나는 자주 동정심으로 행동한다. 나는 토론토나 뉴욕의 거리에 있는 걸인들에게 돈을 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쳐다보거나 함께 앉거나 말을 걸지 않는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이기엔 나는 너무 바쁘다. 내가 가진 돈이 나의 인격적인 관심을 대체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실을 준다.
연민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기꺼이 부서질 수 있는 약한 사람이 되고자 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연민이 가득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나는 부서지고 죽을 수 있는, 당신처럼 똑같은 인간입니다. 나는 당신의 눈물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으며, 당신의 고통 때문에 두렵지도 않습니다. 나도 웁니다. 나 또한 고통을 느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지 않고 우리처럼 될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연민보다 동정심을 보이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통받는 사람은 우리자신의 고통을 깨달으라고 요청한다. 나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장애지닌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나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면서 어떻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서
[원출처] <Henri Nouwen>(Robert A. Jonas, Orbis, 1998)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