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세상 속에서 세상에 저항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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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세상 속에서 세상에 저항하는 교회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9.1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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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새로운 창조-8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하느님, 이웃,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할 것을 요구하신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종류의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그리스도인이나 가톨릭 신자나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과 다른 점을 스스로에게서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 그들과 같이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길거리나 가게에서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는 사람들과 눈에 띄게 다른 생활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사실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주말에 기분전환을 위해서 음악회나 연극을 보러 가는 것처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방식은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의미와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다. 성서적인 개념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살면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사진=한상봉

사회학적인 용어로 교회는 대항문화(對抗文化)이다. 즉 구성원의 생활방식이 지배적인 문화에 역행해 가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협조하는, 받기보다는 주는, 축적하기보다는 나누는, 안락 보다는 희생하는, 지식보다는 믿는, 증오보다는 사랑하는, 익명으로 사는 것보다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방식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을 통하여 이런 생활방식은 그리스도 삶 안에서 나누는 삶이 된다. 이러한 “예수님의 생활방식”은 성령에게서 힘을 받고 예수님을 주님이요 머리로 하는 몸을 통해 전달된다.

성서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게 하려고’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있게 하려고’ 불리움 받은 것이다(요한 15,18-19; 17,14-18). 또한 성서는 이것을 “세상으로부터 구원되도록”(요한 16,33) 이라고도 말한다. 즉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 슬픔과 질투, 소유욕과 권력욕 등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는 많은 파괴적인 많은 습관으로부터 구원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삶으로써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생각 없이 노예처럼 따라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수도회들은 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전(vision)위에 세워졌다. 공동체로 불리움 받는다는 것은 전적인 생활방식에의 소명이며, 이웃을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관계 맺는 생활방식에의 소명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들과 하느님 나라에서 살면서 그것을 세상에 가져와야 하는 사명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개인의 온전한 결단을 요구한다.

위대한 수도회들이 세워졌던 시대에는 이러한 비전을 갖는 것은 곧 가족관계를 끝내고 독신으로 사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동정성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반드시 독신자 뿐 아니라 기도하고 믿는 사람 모두에게 그 소명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명을 넓게 해석해서,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한 특별한 몇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로 초대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비전처럼 생각되지 않으려면 성서적 의미의 그리스도의 몸들인 이와 같은 공동체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공동체들은 가톨릭교회 안에 있고; 다른 교파 안에도 있다. 어떤 공동체들은 성령운동에 속해 있고; 어떤 것들은 행동중심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어떤 공동체들은 창시자들의 본래의 비전을 다시 발견한 수도회 회원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 중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결혼한 사람들이다. 제3세계에는 수만 개의 기초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발전하고 있으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그들 모두를 결합시키는 것, 그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그들이 같은 성령을 나누며 같은 주님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가 새로운 창조라고 말했던 하느님과 또 이웃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세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발산하는 새로운 실체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그들은 모험적이고 예외적인 삶을 산다. 그들은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끌리게 한 은총과 영광을 지니고 있다. 여러분이 그러한 그리스도의 몸을 본다면, 사도 바오로와 같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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