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예수의 형제,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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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예수의 형제, 야고보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9.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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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고고학 - 16

이제 우리는 “야보고의 유골함”의 아람어 명각에 언급된 세 인물, 즉 요셉, 예수와 야고보에 관한 역사적이고 문헌적인 분석을 하고자 한다. 즉 신약성경,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 에우세비오의 <교회사>를 살펴보려 한다. 이 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유골함의 진정성과 그 역사적 가치를 밝히려 한다.

르메르는 자신이 발표한 유골함 명각의 '야고보'를 신약성경에 언급되는 “주님의 형제”와 동일시하고, 예수를 “나자렛 예수”와 동일시하였으며, 그것이 매우 개연적인 것으로 주장했다. 신약 성경에서 야고보는 마태 13,54-56; 마르 6,2-3; 사도 15,13-21; 21,18 ; 1코린 15,7; 갈라 1,18-19; 2,9 등에 나타난다.

의인 야고보(Saint James the Just) 그리스어:Iάκωβος), ( AD 62년 사망)는,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 예루살렘의 야고보(James of Jerusalem), 하느님의 형제 야고보(James Adelphotheos)[1], 또는 야고보, 주의 형제(James, the Brother of the Lord)라고도 불린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그는 첫 번째 예루살렘의 주교이고, 신약성서 야고보서의 저자이다.후에 서기 62년 네로의 박해로 총독 안나스의 손에 순교당했다고 전해진다.

⍤ 마태 13,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 마르 6,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 갈라 1,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 갈라 2,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성경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 중 한 사람으로 열거되며, “주님의 형제”로 불리며 베드로,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묘사된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한편, 야고보에 대한 또 다른 역사적 문헌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와 에우세비오의 저작이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야고보의 죽음을 묘사한다. 즉 야고보는 로마 행정관 포르치우스 페스투스(Porcius Festus)의 죽음 이후 대사제 아나누스의 명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

<유다 고대사> XX 197-203:
"황제는 페스투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알비누스를 유다 행정관으로 파견하였다. 한편 (아그립바) 왕은 요셉을 대사제직에서 해임시키고 아나누스의 아들인 같은 이름의 아나누스를 대사제로 임명하였다. 사실 그의 부친인 늙은 아나누스는 많은 행운을 가졌다고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대사제직에 올랐다. 그 자신도 오랫동안 대사제직의 명예를 누렸다. 이런 일은 다른 대사제들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아들 아나누스의 성격은 오만하였으며 몹시 무례하였다. 그는,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모든 유다인들 중에서 가장 엄격한 심판을 내리는 사두가이파를 추종하였다. 아나누스의 인간됨이 이러하였듯이, 페스투스가 죽고 알비누스 신임 행정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좋은 기회로 생각하였다.

그는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다른 몇 명을 소환하였다. 그는 율법을 범한 이유로 그들을 고발하고 투석형에 처하도록 넘겨주었다. 그러나 율법에 관하여 매우 절제되고 정확했던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 일을 좋지 않게 받아들였고, 아나누스가 그런 행동을 못하게 명령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왕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었다. 왜냐하면 아나누스가 부당하게 행동한 것이 처음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는 알비누스를 만나러 갔고, 그에게 아나누스가 허락 없이 산헤드린을 소집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알비누스는 몹시 화가 나서 아나누스에게 문책할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아나누스를 대사제직에서 삼 개월 만에 해임시키고 담네우스의 아들 예수를 후임 대사제로 임명하였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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