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촛불의 노래, 나는 너무 깊이 들어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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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촛불의 노래, 나는 너무 깊이 들어선 것일까?
  • 유수선
  • 승인 2017.09.17 2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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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6

[유수선 칼럼] 

"우리 모든 정성을 찬미되게 바치니 사랑으로 보소서 오주여"

지난 목요일미사 때 오기로 한 형제가 안 온 것을 식사가 다 끝나서야 알아차렸다. 걱정이 되어 전화 해 보니 인천에서 10시쯤 출발해 합정역에 내리긴 했는데 늘품집을 못 찾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도 배가 고파 지나던 식당에 들어가 있단다. 못해도 20번은 왔던 길이었다. ‘전화를 하지’라고 말했지만 사실 의미 없는 말이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뿐 다른 기능은 알지 못한다.

더욱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설명도 잘 못하니까 오는 길을 알려줄 수도 없다. 종업원에게 식당 이름을 물어 본 후 다른 형제를 그 곳으로 보냈다. 미사 시간이 다 되어 들어왔는데 집을 나선지 4시간이 지나서였다. 오자마자 물을 찾는 그의 모습은 기운이 없어 허리는 반쯤 꼬부라져 있었고 볼이 깊이 파인 것이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도 봉헌시간에 꺼져가는 목소리로 혼신을 다해 가요 ‘안동역’을 불렀다. 두 손을 모으고 애절하게 부르는 그의 모습이 마치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 앞에 봉헌된 한 줄기 촛불 같았다. 그 누구도 몸이 그 지경인데 집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미사는 왜 왔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 정신과 몸을 이끌고 여기에 올 수 밖에 없는 간절함을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미사 후 4시경 인천으로 가는 차편에 형제를 태워 보내고 집에 도착했다 싶어 7시에 전화를 해보았다. 아직 부개역이라고 했다. 찻길이 많이 막혀 부개역에 내려주며 전철타고 가라고 하셨는데 부개역은 와 본적이 없다보니 아직도 열차를 못 탔다는 것이다. 9시가 넘어서야 다시 연락이 되었는데 열차를 반대방향으로 타 구로역에서 한참을 헤매다 조금 전에 집에 왔다는 것이다. 4시간 걸려 미사 왔다가 5시간 걸려 집으로 돌아간 셈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형제들이 감염 후 장기간 불면증과 우울증 약 복용으로 희미한 정신 속에 산다. 그래서 이 형제들이 함께 기도하기에 미사전례가 좀 힘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성체성사의 힘과 미사 가운데 활동하시는 성령의 도우심과 모든 성인성녀들의 전구를 믿기에 다른 기도보다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의 시간은 우리 삶을 적시는 샘이니 주여 우리 이끌어 당신 앞에 나갈 때 아름답게 변하게 하소서. 주님의 시간은 우리 삶을 적시는 샘이니 우리 모든 정성을 찬미되게 바치니 사랑으로 보소서, 오주여” (시작성가 1,2절)

사실 길을 못 찾던 형제는 다른 형제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최근에 인지 능력과 신체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독립해 살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 달 전에 급히 이사를 가야한다고 도움을 청해 이들이 사는 집에 갔었다.

집안은 쓰레기더미 같았고 담배냄새와 화장실, 개수대 쓰레기 냄새가 범벅이 되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한 순간도 머물기 힘든 공간이라 여겨져 적당한 집을 찾고 건강이 좋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늘품에 들어와 살기를 여러 차례 강권했지만 자신들의 익숙한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이사만 도와주면 잘살 수 있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이사하던 날, 형제는 집 앞 슈퍼에 세제 사러 나갔다 집을 잃어버려 4시간 만에 겨우 찾아왔다.

이사 다음 날엔 둘이 밖에 나갔다 현관 번호 키를 기억하지 못해 여관방에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열쇠수리공을 불렀다고 한다. 또한 함께 사는 형제가 4일 이상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는데도 아직 숨 쉬고 있으니 자고 있다고 생각해 119에 전화하지 않고 얼굴만 닦아 주며 보살피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완전히 의식이 없었고 응급실에 데리고 갔지만 뇌경색이 많이 진행되어 2주 이상 아직 혼수상태에 있다.

물론 난 법적 보호자도 아니고 그들이 성인이니 삶에 대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말은 안 듣고 제 뜻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청하는 어린애 같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끝없이 애간장만 태우고 도와준 노력들을 수포로 만드는 이 사람들과 언제까지 동반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각자의 삶을 선택하도록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결과를 모두 받아 안으시며 죽음 끝까지 돌보고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나의 행로를 맡기지 않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너무 깊은 오솔길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는 이 일들을 지켜보며 우리의 영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다른 사람들에게는 쓰레기더미와 악취로 숨쉬기조차 힘든 공간인데 내게는 익숙해져 냄새도 안 나고, 쓰레기를 이리저리 밀며 누울 공간만 마련되면 지낼 만 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냄새나는 마굿간에 평화를 주러 아기예수가 찾아오셨다니, 강생의 신비여!

둘째로, 도와달라고 외치면 쓰레기더미에서는 구출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옛 생활방식과 경험을 고집하면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서지 못하고 또다시 자기 경험의 세계에 갇혀 살다 죽으리라는 것이다.

셋째, 달리는 응급차의 요란한 싸이렌소리, 의사와 간호사들의 신속한 검사와 처치, 몸 여기저기에 부착한 기구와 약물주머니들, 이 모든 것들이 사회에서 그토록 오래 방치되어 있던 형제에게 낯설게 보였다. 누구나 저토록 모두가 살리고자 애쓰는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을까?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그 영을 깨우기 위해 누가 어디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보살핌이라야 고작 죽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악취 나는 방구석에 방치해두고 얼굴만 씻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수선 수산나 
초원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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