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매만지고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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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매만지고 산다는 것
  • 한상봉
  • 승인 2017.09.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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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8

권정생의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에서 어느 동학교도 여인네의 신앙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참봉댁 며느리 은애의 자취를 더듬어 보자.

밤낮으로 틈만 나면 주문을 외웠다

은애네 방은 들기름을 먹인 닥종이 장판방이다. 노랗게 윤기가 나는 방 안은 아랫목이 가뭇하게 지들어 알맞게 묵은 장판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문간방 실겅이네 멍석방은 여기저기 바닥이 닳아 멍석날이 굶주린 노인네 갈비뼈처럼 비죽비죽 드러나 있었다. 멍석자리는 그냥 수수비로 대강대강 쓸고는 앉고 누워 비비 대면 절로 때가 닦인다.

실겅이는 일평생 그런데다 뒹굴다 보니 온몸이 멍석자리처럼 살가죽이 굳어 버렸다. 자고 나면 일하고 일하고는 자고, 실겅이는 그렇게 평생 넋이 나가도록 물레 꼭지 머리에서 돌아가는 실꾸리같이 뱅뱅 돌면서 살았다.

그런 실겅이네 문간방 살림에 대면 은애는 대궐 살림처럼 호사스럽다. 맨질맨질한 장판방에 폭신한 요때기를 깔고 누워 잔다. 은애는 물 한 동이 길어 보지 못했다. 바깥 대문까지 나가 보는 것도 한 해 두세 번뿐이다. 실겅이네 딸 춘분이와 정지에서 밥을 짓지만 밥솥에 물을 맞추고 반찬이나 국솥에 간을 맞추는 일밖에 안한다. 허드렛일, 힘든 일은 모두 문간방 춘분이가 한다.

은애는 스물 아홉 살, 춘분이는 열 아홉 살이다. 그런데도 은애는 얼굴도 손도 하얗고 보드랍지만, 춘분이는 거칠고 검다. 둘이 십 년 나이 차이가 난다는 걸 아무도 못 믿을 거다.

춘분이는 정지에서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산에도 가고 들에도 간다. 그해 가뭄에도 춘분이는 어매 실겅이와 동생 춘식이 말분이와 머슴 구만이하고 논물을 푸고 조밭에서 김을 맸다.

논일을 하노라면, 실겅이네는 맨발로 자갈길을 걷느라고 발바닥이 온통 구덕살이 박히고, 손은 물에 젖어 퉁퉁 불었으며, 얼굴은 뙤약볕에 그을러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해질녘이면 시커멓게 주름이 졌다.

이런 상황에서 참봉댁 며느리 은애가 실겅이네 식구들을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시집 올 때 친정 오라비가 챙겨 준 『용담유사』라는 동학 책을 새삼 꺼내 읽으면서부터였다. 은애는 밤낮으로 틈만 나면 주문을 외웠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주문을 외우는 동안에 은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춘분이 몫의 일을 줄여 주고 힘든 일 궂은 일을 스스로 해 나갔다. 은애가 뒤안으로 물을 길러 가자 춘분이가 황급히 붙잡는다.

“작은 마님, 안 되니더.”
“괜찮다. 춘분이는 하루종일 물을 퍼 나르잖애.”
“하제만 작은 마님은 힘든 일 못하시잖니껴.”
“왜 못하네. 나도 힘든 일 배워야제.”

은애는 억지로 물동이를 이고 갔다. 그 뒤로 ‘마님’이라 부르지 말고 ‘형님’이라 부르라 했다. 놀라는 춘분에게 “이 세상은 상전도 머슴도 없고 모두 형제간이네” 하였다. 여덟 폭 스란치마를 다섯 폭으로 줄여 통치마로 만들어 입고, 실겅이네처럼 검정물을 들여 치마를 입었다. 곳간에서 쌀을 퍼내어 실겅이네 잡곡과 바꿔다 보리밥 조밥을 먹었다. 은애는 망설이지 않았다. 좁은 집안 울타리 안이지만 은애는 그렇게 스스로 하늘이 되어 갔다.

시어머니도 설득시켰는데, 참봉댁은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늙어서 날래 못 깨치는 게 한이다. 묵은 때가 접접으로 쌓옜는데 그걸 어째 한꺼번에 털어 낼 수 있겠노? 에미 니라도 가는 데꺼정 앞서 가야제. 나는 할 수 없이 천천히 갈꾸마.” 은애는 춘분이 시집 갈 때 빨간 목단꽃과 두루미 한 쌍을 수놓은 베개, 그리고 열 석 명주에다 쪽물 들인 치마와 치자물을 들인 저고리를 주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람의 마음속이란 얼마나 우물 속같이 비좁은 것이냐

신앙이란 그렇게 엄숙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 하늘이 되게끔 거룩하게 성변화(聖變化)시키고, 가난한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거기까지 인생을 밀어붙이는 힘이 없다면 종교는 무상하고, 신앙은 허깨비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되어라.” 예수가 하늘을 보았듯이 그렇게 하늘을 매만지며 사는 것, 그게 바로 신앙의 본질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이란 얼마나 우물 속같이 비좁은 것이냐. 무주 땅 광대정, 볕이 많이 쏟아져 내리는 곳에 살 때였다. 이라서 광대정이라는데, 물자가 귀한 산골 살림에 그렇게 흔하다는 감나무가 부실하게 열려 저마다 제 몫을 챙기는 데 바빴다. 물론 나도 한몫 끼여들었다. 한 이틀 그러고 나니, 내 인격이 온통 벌거벗은 것 같아 이내 몸을 사리고 말았다.

아침까지 형님, 형님 하다가 타작한 곡식단 말릴 신작로 구석을 먼저 찜해 놓았다며 얼굴을 붉히는 게 세상 인심이라더니, 내가 꼭 그 짝이 아니던가. 하늘을 보고 푸르다고 탄성을 토할 수는 있어도 하늘의 청정무구한 마음을 일상에서 살아 내기란 좀더 수행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니 장차 교회를 탓할 게 없다. 교회가 하늘이라면 나도 하늘이고, 내 한 몸 바로 세우지 못할 바에야 교회를 탓하는 것도 민망할 따름이다. 이른바 “너나 잘 해!” 한 소리 들어도 싸다. 예전에 시골로 내려간다 하니, 어느 수녀님은 이렇게 권면하셨다. “좀 손해보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야 잘살 수 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불쑥불쑥 이기심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스스로 하늘이 되어 갔다’는 참봉댁 며느리 은애를 기억해 내야 할 노릇이다.

김수영 님에게 “너무나 바보스럽고 어처구니없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는 무허가 이발소의 이발사처럼 걸인에게도 황제의 밥상을 대접할 수 있는 환대의 기풍, 낮은 자에게서 더 높은 하늘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교회는 그렇게 신실한 자의 마음밭에서부터 ‘발생’할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연민>, 삼인, 2000. 이 글은 제가 삽십대 중반 <공동선> 편집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과 생각의 갈피는 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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