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실, 세 평 안에서 꿈꾸다, “빵 한 쪽을 나눠 세상 저 편에 내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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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실, 세 평 안에서 꿈꾸다, “빵 한 쪽을 나눠 세상 저 편에 내밀면서”
  • 심명희
  • 승인 2017.09.04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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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희 칼럼]

아파트 경비실 앞을 지나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 나온다.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인사하면서 “저, 이달 말로 그만둡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길래 깜짝 놀라서 “왜요? 다른 데로 가세요?” ”아닙니다. ... 당분간 쉬게 되었습니다.“

경비원이 자주 바뀌는 탓에 누가 새로 들어왔는지 누가 나갔는지 무덤덤했는데 이분이 떠난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아파트에 산 지 18년, 세대수가 작아서 주민들과 경비원들은 가족처럼 지냈다. 최근 10년 이상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동년배 사이에는 형님아우로, 아이들에게는 보호자요 할아버지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비원이 자주 바뀌었다. 직접고용이 아닌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바뀌고 매년 계약을 갱신하다보니 용역업체가 달라지고 자연히 경비원도 바뀌게 된 것이다. 갑자기 낯선 경비원들이 보이더니 얼마 뒤엔 또 다른 경비원이 눈에 띄니까 자연히 주민들과 경비원들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졌고 마주치면 서로 소가 닭 보듯 맨숭맨숭한 관계가 되었다.

 

by Dennis Winston


‘참 예의가 바른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웬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잔뜩 주눅이 든 굳은 얼굴, 겁먹은 듯한 표정, 예민하고 긴장된 꼿꼿한 자세, 존댓말 이상의 경어 앞에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주민들이 까다롭게 굴었으면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굽신거리실까?’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그런데 경비원 최씨는 달랐다. 어느 날 택배 물건을 찾으려고 경비실에 들어가니까 보름달처럼 둥글고 하얀 얼굴의 점잖은 인상의 경비원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렷 경례 자세로 맞이했다.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다른 경비원들과 달리 하도 깍듯이 대접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는 6년 전에 30년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당했다고 한다. 평생 한 직장 밖에 몰랐고 성실하게 일했는데 갑작스럽게 당한 실직은 충격이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선택한 일자리가 빌딩 경비원이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견뎠다.

언젠가 그가 재활용 수거함을 뒤적거리고 있기에 물었다. “웬일이세요?” “아~~네! 외손녀 딸이 있는데 그 녀석이 입을 만한 것이 있나 해서요. 하하.” 외손녀 이야기를 하자 평소의 긴장된 굳은 표정은 싹 사라지고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활짝 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얼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 아파트 마당을 쓸거나 경비실에서 혼자 밤을 새는 아저씨를 먼발치에서 볼 때면 마음에 걸렸다. 주민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경비원에 어울리지 않게 순하고 여린 품성의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걱정도 되고 염려가 되었다.

이달 말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저씨를 응원하려고 인삼막걸리와 사과를 들고 경비실에 갔다. “죄송합니다. 그 날은 제가 근무라서 시상식에 갈 수가 없습니다...” 통화를 하다가 내가 들어가자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통화에 호기심이 생겨서 “무슨 상 받으시나봐요?” 했더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상’이라고 하니까 더 궁금했다. “이거 보이시죠? 보통 막걸리가 아니고 토종 인삼 막걸리, 보약이에요!” 쭈욱 잘 뻗은 인삼뿌리가 그려진 막걸리병을 흔들어 보이자 유혹(?)이 성공했다. “고맙습니다. 퇴근하고 집사람하고 반주로 먹어야 겠습니다.” 하면서 묻어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좁디 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많은 것을 느꼈지요. 긴 밤을 혼자 깨서 지키면 외로움이 확 밀려왔지요. 빌딩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경비라고 반말하고 욕하고 주먹질까지 하는 수모를 겪을 때마다 나는 사람이 아니구나 상처가 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멸시를 당할수록 그 상처가 나를 확 깨웠지요.”

아마 그는 좁은 경비실에서 날개를 달고 저쪽에 펼쳐진 세상 속으로 날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좁은 한 귀퉁이에서 저 넓은 세상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즉 지금 살고 있는 현실 보다 더 높은 현실, 비록 지금 여기서 구차한 일상에 매여 있지만 그것마저 구차하면 안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세상의 작은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살지만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인간성, 비록 경비원이지만 인간성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 끝에 평생 해보지 않은 ‘기부’라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거였다. 그후 그는 용기를 내어 집 가까운 대학을 찾아갔다.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자퇴하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기부가 어느덧 5년, 학교 측에서 감사의 뜻을 전해온 것이다.

“아,글쎄 304호 사는 젊은 놈이 지 새 차 긁혔다고 최씨 멱살을 잡고 직무태만이니 직무유기니 하면서 협박하고 소장에게 민원을 넣더니만 분을 못 삭이고 최씨를 몇 개월이나 괴롭히는 통에 결국 그만뒀지 뭐야!” 보일러실의 김기사로부터 그가 아파트를 그만 둔 이유를 알았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매일 경비실을 힐끗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좁고 무더운 3평의 경비실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택배 물건을 내어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가 없는 경비실을 둘러본다.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양심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 흔적, 빵 한 쪽을 나눠 세상 저 편에 내밀면서 비참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지키는 많은 가난하지만 고귀한 이웃들,소문으로만 듣던 그런 이웃들이 바로 이 분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이 우리 아파트를 떠났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7년 8-9월호(통권 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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