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도하고 영성 리차드 로어-신약성서 이야기
[바오로] 예수는 우리의 삶 "친절함을 넘어서는 사랑"바오로: 새로운 창조-6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9.04 14:00
  • 댓글 0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가 아니고 공동체로서 우리의 삶이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삶이 반드시 수도회에서의 삶일 필요는 없다. 반드시 어떤 명분 있는 일이나 자선행위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그런 삶일 필요도 없다. 가정에서, 교회와 학교 모임들에서, 직장이나 혹은 그저 친구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다만 사랑의 삶이어야 한다. 우리를 통해서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것은 신약에서 말하는 아가페(agape): 자신을 내어주고, 제한이 없고 포용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구분 없는, 적이 없는 포괄적인 삶이다.

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자기본위로 흐르기 쉽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따라 어떤 사람을 혹은 어떤 것을 사랑한다. 그런 사랑은 제한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동안에만 사랑한다. 그러한 사랑은 배타적이기 쉽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 다른 이들이 그것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지키는 집착을 가지고, 경계심을 가지고 사랑한다.

그러나 아가페(agape)는 예수님이 다른 이를 사랑하셨던 바로 그런 사랑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다. 이는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바로 그 사랑이다. 곧 하느님의 생명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명인 하느님의 사랑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아가페(agape)는 또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다. 공동체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과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은 정확하게 똑같은 사랑이다. 이러한 모든 사랑은 하나이며 같은 것인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선물이며, 기도 중에 우리를 통해 흘러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 성 요한은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의식을 갖고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은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 1서 4,7-8), 20)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가페(agape)이다. 즉 하느님의 생명인 사랑,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흐르는 사랑, 그리고 성령으로 내려주시는 사랑이다. 공동체의 형제, 자매사이에 그러한 사랑이 흐를 때 그것은 하느님의 생명이다. 그것은 종종 “우리자아”와 동일시하는 보호장치, 정의로움, 권력, 돈, 체면, 지배 등에 대한 관심이 없는 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셨으며, 사랑으로 부어주셨으며, 전에도, 아직도 새로운 생명의 성령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생명이다.

언젠가 뉴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우리들, 40명이 함께 성탄준비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적이 있다: 음식을 준비하고 과자를 굽고, 장식을 달고, 나무들을 장식했다. 우리는 그날 밤 11시 정도까지 일하고 성찬례를 위해 모였다. 미사는 한시간 반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때 우리들이 서로 공통의 삶을 나누고 있음이 모두에게 아주 분명했다. 영적 성장이나 주님에 대한 이해 수준은 분명히 서로 달랐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 하나의 영과 하나의 에너지, 하나의 사랑, 하나의 생명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일치가 있었다. 우리에게 한 삶, 한 사람,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했다.

삶을 공유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찬미를 드리게 되고 그 안으로 빠져든다. 그러한 삶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례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삶을 기념하기 위해서 종교적 의식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들이 이웃과 있을 때면 미소짓고 얼싸안을 때 그러한 기념이 터져 나와야한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보았고 내 마음으로 느꼈기 때문에 아가페(agape)가 무엇인지 안다. 그저 친절한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에너지이다.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