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일꾼강습회: 김진호의 “예수, 낯설고 매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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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일꾼강습회: 김진호의 “예수, 낯설고 매력적인”
  • 가톨릭일꾼
  • 승인 2017.08.3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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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토) 오후 2시-6시, 인문카페 엣꿈

제2회 가톨릭일꾼 월례강습회를 개최합니다.
모든 참가자는 미리 교재를 읽어오셔야 합니다.
예수에 관해 평소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 적어 오세요.

[교재] <예수의 독설>, 김진호, 삼인, 2008

 

 

“예수, 낯설고 매력적인”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 주요 저서로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리부팅 바울』 『예수의 독설』 『반신학의 미소』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공저)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사회적 영성』(공저) 등이 있다.

[일시] 2017년 9월 16일(토) 오후 2시-6시
[장소] 인문카페 엣꿈
[참가비] 2만원
[강사]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주관]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문의] 070-7798-3351 (한상봉 코디네이터)

[일정]

14:00-14:20 시작전례와 참가자 소개
14:30-16:00 강의 “예수, 낯설고 매력적인”
16:20-17:40 원탁토론회: 자유질의응답 및 토론 “예수의 모든 것”
17:40-18:00 마무리 전례

[참가신청] 신청 배너 클릭!


유랑자 예수, 권력에 맞서 독설을 퍼붓다

노태우 정권이 탄생한 그해 크리스마스 어간에 지은이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는 <예수와 민중>이라는 안병무 선생의 짧은 글을 다시 읽는다. 이 글에서 안병무 선생은 ‘교회 밖의 예수’, ‘민중 현장의 예수’에서 ‘역사의 예수’를 읽어낸다. 그 자신의 시대에 예수는 유대교 회당이나 성전 언저리에서 금관을 쓴 이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민중의 고통 현장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간 이라는 얘기였다.

해방자 예수는 동시에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신이 구원의 대상이자 주체이고 민중 또한 그러하다는, 익히 알고 있던 민중신학적 어법임에도 지은이는 생경함을 느꼈다.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통쾌함이 무력해진 영혼에 침투했고, 예수연구자로서 한 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안병무 선생을 통해 역사의 예수와 오늘날 민중 현장 사이의 연계성을 발견했고, 역사의 예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최소한 예수연구의 3부작을 내놓는 것이었다. 하나는 역사의 예수 연구사, 특히 20세기 후반의 연구경향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예수 르네상스》(1996)라는 엮음집이다. …… 두 번째는 나의 시각으로 연구사를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책을 내는 것이다. 《예수역사학》(2000)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예수 시대 민중사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 한데 그러한 기획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에서 《예수의 독설》을 내놓게 되었다. 그것은 두 번째 책에서 시도한 복음서를 통한 예수 읽기가 나의 생각을 담는 형식으로 단지 한 면만의 타당성을 지닌다는 생각 때문이다.”
-<머리글 : 2008년 서울, ‘갈릴래아 예수’의 독설을 상상한다>에서 (10-11쪽)

유랑자 예수, 독설가 예수

예수는 권력에 맞선 독설가이며, 스스로 정주를 포기한 유랑자다.
예수 당대도 무수한 사람들이 유랑자로 내몰리던 시대였다. 식민지 상황에서 수많은 대중은 가뭄, 지진, 전염병 등에다 통치자의 무자비한 착취로 인해 삶의 밑바닥까지 흔들렸다. 예수 주변엔 많은 떠돌이들이 있었다. 예수의 말씀 속에는 떠돌이들의 삶이, 그 애환이 깊이 배어 있다. 예수의 기적은 떠돌이들에게 특별히 베풀어진다. 예수운동은 떠돌이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띠었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복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선포가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삶의 뿌리로부터 근절시키려는 사회적 위협 아래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람들, 유민으로 내몰린, 혹은 그러한 위협 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의 해방운동이 바로 예수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 자신도 유랑자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대부분도 그러한 사람들이다. 요컨대 예수운동은 유민들에 ‘의한’, 유민‘의’ 신학/신앙 운동인 것이다.
-<‘유랑의 신학’을 위하여>에서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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