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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천수답 농사꾼인가?

[유형선 칼럼] 

작년 일로 기억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 전, 여러 해 전에 살았던 옛 동네를 주말에 시간을 내여 찾았습니다. 수 년 만에 들린 옛 삶의 터전이 반가웠습니다. 거리 곳곳마마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떡볶이 가게와 빵집, 저렴하지만 맛난 카페, 가족과 함께 삼겹살을 굽던 식당까지 추억의 장소는 거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동네 한 켠에 자리잡은 성당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수 년 전, 가족 한 명 한 명이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바로 이 성당에서 기도를 참 많이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이번엔 주일 미사를 바로 이 추억의 성당에서 드리기로 했습니다.

 

사진=한상봉

성당에선 귓속말도 하지 마!

미사를 드리기 십 여분 전, 성당에 들어가 가족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미사 드릴 준비를 하다가 초등학생 두 딸들이 봉헌금을 준비했는지 걱정되었습니다. 두 딸들에게 귓속말로 봉헌금을 챙겼는지 어떤지를 묻고 답을 듣는데, 어디선가 저를 향해 강력한 수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의를 살폈습니다. 

미사 준비로 제대에 오르던 신부님이 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시는 게 보였습니다. 신부님은 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시다가 제가 알아챈 것을 보시고는 본인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아뿔싸! 저는 자동적으로 끄덕끄덕 고개짓을 하여 신부님께 조용히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몇 분 뒤에 아내가 저에게 몸을 기대며 귓속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 아내가 한참 걱정하는 일이 있는데 저에게 그 일이 잘 풀리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 주제로 기도하겠다고 귓속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미사 준비로 제대를 왕래하시던 신부님이 강력한 손가락질을 저를 향해 하시더군요. 역시나 인상을 강하게 쓰면서 성당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내셨습니다. 또 한번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여 그러겠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얼떨떨했습니다. 그리 큰 잘못을 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미사를 집전하실 신부님의 요청사항이니 좀 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서 성당을 나서는데 성당 입구에서 신부님이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미사 시작 전에 두 번이나 주의를 받은 게 있기에 일부러 가족을 끌고 신부님께 다가갔습니다.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처음 뵙는다는 인사도 함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부님은 저희 가족을 보자 마자 미간에 찌푸리며 아주 강한 어투로 훈계를 하시더군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셔야 합니다. 부모님들께서 성당에서 침묵을 지키셔야지요!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미사 시작 전에 가족끼리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게 부모로서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신부님의 논리는 한마디로 황당했습니다. 성당을 나서며 황당하고 얼떨떨한 기분에 한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가끔씩 옛 동네가 그리워 찾아가곤 하지만 이 동네 성당에 발길을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씁쓸했습니다.

성직자의 꼰대 짓

한 일 년쯤 지난 요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성당에서 절대침묵을 강조하는 주임신부님의 미사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미사 중에 어느 어르신 교우님의 핸드폰 벨이 크게 울렸습니다. 성급하게 핸드폰 벨을 끄는 어르신에게 신부님은 당장 성당 밖으로 나가라고 호통을 쳤답니다. 그리고는 성당 밖으로 나가는 어르신의 뒤에 대고 갖은 노인비하 발언을 쏟아내셨다고 합니다. 요즈음 이 성당 여러 교우 분들이 주임신부님의 권위적인 태도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봉사하던 여러 교우 분들이 성당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소식이었습니다.

‘가톨릭 평신도로 살다 보면 이런 신부 저런 신부 다 만나고 사는 거야!’라며 넘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성직자의 꼰대 짓이 신자를 대하는 태도에 그치지 않고 성전 건립처럼 수십억의 돈 거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가톨릭 생리이기도 합니다. 어느 성당 주임신부님이 성전건립 목적으로 건축회사와 계약을 했는데, 교구청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규모가 수십 억 원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결국 교구청 감사에 적발되어 해당 신부님은 해외선교 임무를 받았습니다. 

 

사진=한상봉

사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사전 징후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주임신부님의 대책 없는 사업방식에 브레이크를 걸던 재정분과 위원장님이 신부님과 싸우다 싸우다 포기하고 결국 성당을 떠나 냉담자가 된 일화도 있었다고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문제의 신부님은 성당을 떠났지만 수 십 억의 빚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본당 신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어떤 성직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가톨릭 평신도의 신앙생활이 판이하게 바뀌는 일은 신앙학습 분야에서도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평신도는 교리도 성경도 잘 모릅니다. 더군다나 신학은 아예 모릅니다. 교리와 성경을 지속적으로 배운 기억은 어쩌면 초등학교 주일학교가 전부입니다.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이 한 해 10권을 채 넘지 못한다던데, 신학과 성경과 교리라는 하느님 이야기는 성직자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결코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평신도들이여, 알아서 물길을 내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신도가 하느님에 대해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길은 주일미사 강론이 유일합니다. 평신도의 신앙학습은 거의 전적으로 어떤 성직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성당에서 마이크를 잡은 성직자의 말씀과 행동이 평신도가 접할 수 있는 하느님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과 각종 매스미디어가 발달되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옳고 바른 성직자를 만나 신앙을 키우다가도 꼰대 성직자를 만나 마음 다치는 일이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성당을 책임지는 성직자가 어처구니 없는 꼰대 짓을 상습적으로 저지를 때, 대책 없이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게 ‘가톨릭 평신도가 영원히 짊어져야만 하는 십자가’라는 서글픈 생각도 듭니다. 세례성사로 태어나 견진성사로 어른이 되는 게 가톨릭 전통이겠지만, 꼰대 성직자 몇 번 겪는 게 마치 평신도로 살아가는데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같기도 합니다. 생업에 바빠 성당을 멀리하기도 하지만 권위주의에 찌든 성직자 보기 싫어 성당 멀리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습니다.

천수답이 생각납니다. 하늘이 빗물을 허락할 때만 벼를 기를 수 있는 천수답 말입니다. 천수답 농사꾼은 비가 적절히 내려주면 농사를 잘 짓다가도 조금만 가물어 버리면 농사를 포기해야 합니다. 좋은 성직자를 만나야지만 자신과 가족의 신앙을 기를 수 있는 평신도는 천수답 농사꾼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명한 농사꾼은 결코 천수답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시적인 물길을 찾아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합니다. 저 역시 천수답 평신도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더더욱 ‘가톨릭일꾼’ 같은 평신도 영성 공동체 언저리에 한 발 열심히 걸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여러분의 후원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는 가톨릭일꾼을 양성합니다.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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