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기쁜소식, 로메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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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기쁜소식, 로메로 대주교
  • 한상봉
  • 승인 2017.08.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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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bishop Oscar Romero (1917-1980)

"그들이 나를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당신은 내가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며 죽었다고 신자들에게 전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확신을 갖기만을 바랍니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로메로 대주교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연이어 그해 3월 12일은 지학순 주교(전 천주교 원주교구장)의 16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성직자들인데, 이들은 특별히 억압적인 정치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사제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교회직무 안에서 주교가 갖는 위상이 특별한 만큼 그들의 사목적 태도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마련입니다.

지난 2000년에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서 발간한 <그이는 나무를 심었다>하는 책은 지학순 주교의 삶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자의 집필을 맡았던 탓에 그분과 이모저모로 관련된 분들을 만나볼 수 있었지요. 원주교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5년에 한국에서 첫 번째로 설정된 교구였는데 원주시, 원성군, 영월군, 삼척군, 정선군, 울진군 등 농어촌 지역과 광산지역이 포함된 가난한 지역이었지요. 바오로 6세 교황은 지 주교를 그들의 어버이로 삼았지요. 지학순 주교는 처음부터 자신의 사명을 신자들의 신심생활과 교회활동에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 존재하며, 세상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해야 한다는 공의회 정신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맺은 인연이 결국 그로 하여금 우리 나라 전체의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도록 이끌었고, 유신 독재정권에 항거하게 만들었지요. 누구와 인연을 맺고, 어떤 사람들을 사목 대상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 주교의 복음적 지향을 결정짓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지학순 주교와 12일 사이를 두고 3월 24일에 민중을 위한 선택으로 순교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입니다.

총탄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Archbishop Oscar Romero -- assassinated for standing for the poor in El Salvador

그는 가난한 엘살바도르 민중들을 위한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라고 불립니다. 권력에 의해 살해 위협을 받을 때마다 로메로 대주교는 이렇게 예언했지요.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나는 다시 엘살바도르 민중 속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는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3월 24일 산살바도르의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가운데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수사하라고 지명된 라미에즈 아마야 판사의 말에 따르면, ORDEN이라는 준군사적 암살단의 창설자인 호세 알베르토 메드라노 장군과 전직 첩보장교인 로베르토 다우뷔손 소령이 살해를 계획했답니다. 살해당하기 바로 전날인 3월 23일 사순 첫 주일 미사에서 로메로는 군인들에게 형제자매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지요.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같은 민중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찬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들의 아픔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로메로 대주교는 살해당하기 직전에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순교는 은총입니다. 그 가치는 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랍니다. 하느님께서 내 생명의 희생을 받아주신다면, 내 피가 해방의 씨앗이 되고 곧 현실로 다가올 희망의 표징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날 복음말씀도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구절이었는데, 그는 강론에서 ”역사가 요구하는 생명을 건 모험을 회피하자 말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떤 폭력도 반대하였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부군에게 총질하지 말라고 한 호소가 사망증명서가 되었습니다.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이렇게 말했죠. “로메로가 나타나기 전에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메로가 죽은 이유는 정치적 이유나 교회를 수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Archbishop Oscar Romero of El Salvador, as a young priest, offering campesino Mass.

 

Archbishop Óscar Romero at the Vatican 1942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

로메로는 본래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1917년 8월 15일, 엘살바도르의 산미겔 지역에서 태어난 로메로는 1942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와 산미겔 교구 주교비서,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사무총장, 산살바도르의 보좌주교, 교구에서 발행하는 <오리엔타시온> 편집장, 신학대학 학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산티아고 데 마리아 교구의 교구장을 거쳐 1977년에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죠.

평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적 사목방침을 염려하는 전통주의자였으며, 1968년에 열린 메데인 주교회의의 '민중의 교회로 가자'는 슬로건에 반대하고, 해방신학을 ‘증오에 가득찬 그리스도론’이라고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로메로 대주교의 착좌식을 바라보면서 엘살바도르 민중은 이를 치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지만, 군부와 부유한 지주들은 마음을 놓았습니다. 살바도르의 보수적인 주교들도 이제 두 다리 뻗고 잠잘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지요. 그들은 자칫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구호아래 1968년에 열린 메데인 주교회의의 결정을 옹호하던 리베라 이 다마스 주교가 교구장이 될까봐 안절부절 못하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착좌식이 있은 지 3주만에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로메로와 오랜 우정을 나누던 예수회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아길라레스 성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가다가 암살단에 의해 피살된 것입니다. 그란데 신부는 공공연히 부유한 지주들을 비난했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 지주들은 소작농을 바위투성이 산골짜기로 내몰고 비옥한 토지를 차지했으며, 14가문의 사람들이 전체 경작지의 60% 를 소유했으며, 국가방위군, 국립경찰, 재무성 경찰, 엘살바도르 정규군, 부패한 법조계 인사들, 대통령과 비겁한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란데 신부의 추모미사를 집전하면서 로메로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미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아길라레스 농부들은 로메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 것 같았지요 “그란데 신부처럼 당신도 우리 편에 서 주실 건가요?” 이날 밤 친구가 목숨을 바친 농부들의 얼굴 안에서 로메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메데인 주교회의에서 선포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민중의 교회

산살바도르에서 장례미사가 열리는 날엔 교구에서 단 한 대의 미사만 봉헌되었고, 로메로는 모든 교구민을 초대하여 탄압 위기에 놓인 모든 사제들을 도와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제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가톨릭 학교는 항의의 뜻으로 3일 동안 휴교했고, 로메로는 정부의 면담 제의도 거절했으며, 어떤 공식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룻밤 사이 ‘예언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통해 매 주일마다 고문당하는 이들, 살해된 이들, 투옥된 이들, 위협당하는 이들과 서민들을 위해 강론을 했습니다. 이 강론은 '피의 바다에 떠있는 희망의 고도(孤島)'였지요.

두 달 뒤에 나바로 신부가 암살되고, 아길라레스 성당이 군용막사가 되고, 1980년부터 1981년 중반까지 게릴라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2만5천여 명이 피살됐습니다. 군부와 지주들에 반대하는 교원노조와 인권운동 단체들은 물론이고 여성과 어린이도 군인들에게 살해당했죠. 그래도 미국 레이건 정부는 엘살바도르 정부군에 3천5백만 달러 어치의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습니다. 그 동안 12명의 사제가 피살되었고,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던 YSAX라디오방송국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군사정권의 조직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신자들에게 선언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예언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기름 부어 뽑아 세우신 예언자로서 하느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선한 일들을 자랑하고 성심을 다해 악을 고발해야 합니다.” 그는 성령의 활동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면서 시민단체들을 후원하고 그들과 연대했습니다. ‘실종자 어머니 모임'를 만들고, ‘엘살바도르 시민 인권위원회'를 설립해 민중을 억압하는 폭력사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고발했다.

로메로는 항상 “복음이 누구에게 기쁜 소식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언제나 나쁜 소식밖에 들을 게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예수가 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닻을 내린다고 보았죠. 로메로는 가난한 이들은 권력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로메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분이 사랑했던 가난한 이들과 일치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로메로는 전통을 사랑하고 고요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한 뒤로 죽기까지 헌신했습니다.

On March 24, 1980, the assassination of El Salvador's Archbishop Oscar Romero rocked that nation and the world. Despite the efforts of many in El Salvador and beyond, those responsible for Romero's murder remained unpunished for their heinous crime. Assassination of a Saint is the thrilling story of an international team of lawyers, private investigators, and human-rights experts that fought to bring justice for the slain hero. Matt Eisenbrandt, a lawyer who was part of the investigative team, recounts in this gripping narrative how he and his colleagues interviewed eyewitnesses and former members of death squads while searching for evidence on those who financed them. As investigators worked toward the only court verdict ever reached for the murder of the martyred archbishop, they uncovered information with profound implications for El Salvador and the United States.


[출처]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여러분의 후원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는 가톨릭일꾼을 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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