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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광주를 떠올리다

[최충언 칼럼]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마오쩌뚱의 말이다. 매력 있게 들리나 틀린 말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나 전두환 군부독재의 말로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군부독재의 찌꺼기가 남아서 그 오물을 치우는 작업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감춘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월 광주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는 중이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진실규명의 방아쇠가 된 걸까?

무더운 여름철에 극장은 피서지 역할도 한다. 영화음악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개봉작들은 거의 섭렵하는 편이다. 1980년 오월 광주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도 개봉 초기에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봤다. 아내와 어머니는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였으나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핏빛 광주와 얽힌 생각이 오버랩이 되었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영화를 통해서 그날의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을 때, 아내와 나는 목포로 가는 길에 망월동 묘역과 광주 전일빌딩을 찾았다. 기총사격 흔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발포 명령자를 찾아서 역사의 심판이 아니라 다시 법정에서 심판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적폐청산의 첫걸음일 것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

미쓰 리의 전쟁, 더 베틀 오브 광주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지상 감독의 ‘미쓰 리의 전쟁, 더 베틀 오브 광주’다. 두 해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았다. 시민군들이 광주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다. 5월 27일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일빌딩에 집결한 사람들은 구두닦이, 여공, 다방 종업원 등이었다. 독특하고 실험적이었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카메라가 박정희 초상을 계속 응시하는 것과 상스럽고 폭력적인 일본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시민을 죽이라고 명령한 자들 중 일부는 친일파였고, 또 그 족속들이 계속 혈통을 유지해 현재에도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임을 상징하려 했다고 감독은 말했다. 어찌 착검을 한 총과 군홧발로 선량한 시민들을 짓밟는 게 ‘화려한 휴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광주학살이 자행되던 그 때, 나는 고3이었다. 대입 본고사를 없앤다는 발표로 교내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 해 전인 고2 때는 부마항쟁을 겪었다. 당시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고3인 내가 이렇게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일본과 가까운 부산이라 NHK방송의 전파가 잡혀서 진실을 볼 수 있었다. 생생한 현장의 화면과 국내언론의 방송과 보도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나의 망막을 통해 머리에 뚜렷이 각인이 되었다. 언제나 현장에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나는 도저히 화면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코믹하기도 한 송강호의 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변곡점이었던 5월 광주를 그린 영상을 눈은 따라가면서도 마치 다 둔 바둑을 바둑판 위에 혼자서 복기하듯 내 머리는 어느새 5일간의 처절했던 광주민중항쟁을 복기하고 있었다.

 

계엄군의 총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고

박정희가 총에 맞고 죽은 뒤에 찾아온 ‘서울의 봄’을 짓밟은 12.12 군사쿠데타에 이어 휘몰아친 광풍은 정국을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잦아들고 정적만이 전국을 휘감고 있었다. 그 때 광주에서는 민주를 향한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비상계엄의 해제와 구속된 민주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외침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 정의로운 몸짓은 이내 무자비한 폭력의 표적이 되었고, 지켜보던 이들은 치를 떨어야만 했다.

시민들이 합세한 항쟁의 대열을 향해 계엄군의 총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광주는 무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항쟁은 목포를 비롯한 인근의 전남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무자비한 계엄군과 대치하여 격렬하게 항거했던 ‘해방광주’는 5월 27일 신새벽에 수류탄과 M16 연발, 헬기에서 뿜어대는 기관총을 동원한 계엄군의 공격을 받아 불과 5일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주검과 산 자들의 탄식을 뒤로 한 채 말이다.

5월 광주의 살육은 광주시민의 항쟁에 대응한 우발적, 비계획적 살육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계획된 희생양 만들기였음이 일선 육군에 하달된 ‘충정작전’으로 드러났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이제는 빛고을 광주의 피울음소리도 희미해져간다. 광주의 진실은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광주의 진실은 갓 대학에 입학한 나에게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었다. 광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광주시민들이 무장을 하는 장면에서 나는 1981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소설이었다. 나치에 저항한 뮌헨 의과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청년조직 '백장미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백장미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한스 숄과 죠피 숄의 동생인 잉게 숄이 저자이다. 나치 치하에서 자유를 위해 그들이 벌였던 수세적 저항과 죽음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낙서: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광주를 피로 짓밟은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언제나 내 호주머니에는 오려놓았던 군복 입은 전두환의 사진과 사인펜과 풀이 들어 있었다. 누구를 만나러 다방에 갈 일이 있으면 늘 수세식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앉았다. 품에 넣었던 전두환의 사진을 쪼그리고 앉아 화장실 문에다 붙이고는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고 낙서를 했다. 어떨 때는 사인펜으로 산토끼 노래를 개사한 글을 적어 놓고 나오기도 했다. ‘두환아 두환아 어디를 가느냐 박정희 따라서 동작동 간단다.’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전두환 군부독재에 대한 나의 수세적 저항이었다.

영화 속의 택시기사가 광주로 되돌아가는 장면에서 나는 메리야스 상자를 떠올렸다. 그 속에는 누렇게 빛바랜 공소장과 판결문, 검열 도장이 퍼렇게 찍힌 교도소로 온 가족들의 편지와 내가 보냈던 관인엽서들과 소책자가 들어있다. 공소장과 판결문은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해, 한 선배가 우리 집에 왔다가 당시 법부무장관이 필요하다며 가져가서 지금은 없다. 1984년에 발간된 62쪽 짜리 소책자의 제목은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이다. 3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색도 바라고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다. 해마다 오월이면 다시 들여다보곤 했다.

 

영화 <택시 운전사>

광주민중항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망월동 묘역에 누워 게신 오월영령들 뿐만 아니라 아직도 행방불명된 분들도 많다. 지금도 내 주위에도 5.18과 관련하여 모진 고문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앓으며 피울음을 우는 분들도 계시다. 부모와 자식을 잃고 지내온 유족들의 그 고통의 세월은 말해 무엇하랴.광주항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화가 났다. 37년 동안 우리는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떤 답을 할까? 군부독재시절에는 독재자가 자본과 언론, 사법 등 모든 사회시스템을 장악하기 마련이다. 광주 학살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투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끝없이 분노하고 저항하며 계속해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침묵했다. 침묵은 언제나 악의 편일 수밖에 없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오월광주는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요, 정의의 하느님이시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 해 오월, 고립된 광주의 아름다웠던 해방된 대동세상이 하늘나라가 아니겠는가? 이제는 정의를 바로 세울 때다.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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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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