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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복음에 따르는 삶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나그네였고 탁발로 살았다"가난과 즐거움-1

[<참사람되어>에서 2008년 10월에 번역한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초기 프란치스코회 운동의 참여자들 글을 보면 ‘새로운’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프란치스코 자신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비친 것 같다. 그는 당시의 범주에 쉽사리 끼어 맞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1200년대 초기에 보여지는 기존의 안정된 그리스도교적 삶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더 어려운 길을 택했고, 그가 말하듯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당시 유행했고 선호 대상이 되었던 수도생활과 교회법에 의한 생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갈망을 움직인 것은 그를 이끌고 있는 분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깊은 확신이었다.

추종자들이 곧 도착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들은 형제가 되었고, 복음에 근거한 삶을 살았다. 한편으론 관상가들이요, 다른 한편으론 대중 설교가로서 그들은 손으로 일하며 살았고, 자주 아픈 이들과 함께 지내며 필요할 때는 탁발을 했다. 이 초기의 형제적 삶은 곧 수도회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프란치스코가 죽기 수년전에 회칙을 공식으로 승인받았고 이어 학식 있는 구성원들과 사제들이 합류 하였다.

 

앗씨시의 글라라는 집안 남자들의 폭력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의 설교와 모범에 감명을 받고 이 새로운 형태의 복음적 삶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글라라는 자매들 간의 친교, 기도와 손노동, 아무런 고정수입이 없는 여성공동체의 삶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발전시켰다. 수도생활의 요소와 평신도 여성 참회자들의 삶을 접합시켜 그는 ‘거룩한 복음에 따르는 삶’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표현을 창조해 냈다. 40년 동안 고유한 ‘복음적 실험’을 한 후 글라라가 만든 회칙이 승인되었다. 여성이 여성들을 위하여 쓴 회칙들 중의 첫 번째 회칙이었다.

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삶을 회상할 때에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탁월하고도 단순하게 표현하여 우리에게 남긴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참회하기 시작하라고 영감을 넣어주셨다….’ 그리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회심의 단계들을 설명해 나간다: 나환자들 앞에서 그들에 대한 혐오감으로부터 돌아서고; 교회에 대한 믿음(그는 교회를 재건했다); 첫 번째 추종자들의 합류;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단순하고도 말을 적게’하여 쓰라고 영감을 불어넣은 ‘삶의 방식.’

예수님의 삶에 더 가까이 닮은 삶의 방식

프란치스코와 당대인들에게 새로운 것처럼 다가온 삶의 양식은 사실 복음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살았던 삶을 살고 싶은 갈망을 프란치스코에게 불어 넣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주 평범한 말같이 들린다. 우리는 자주 ‘복음의 삶’, 혹은 ‘복음적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대의 수도공동체들은 사도행전에 표현되는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교공동체(사도 2,44-47; 4,32- 35)를 그대로 모방하고자 했다. ‘빵을 쪼개고 기도를 함께 하고’,사도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구성원들은 가진 재화를 공동으로 나누는 모형이 고대의 수도사들의 공동체와 근래의 성직자 공동체 모두에게 건강하고 절도 있는 제자됨의 표준으로 여겨졌다.

프란치스코는 거의 정착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예수님의 삶에 더 가까이 닮은 삶의 방식을, 갈릴리와 근방에서 보낸 짧은 사명의 기간 동안 예수님이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한 삶의 방식을 따르라는 영감을 받았다. 그가 예수님, 마리아와 제자들을 인용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의 삶의 방식을 본 것이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나그네였으며 탁발로 살았다. 그분과 복된 동정녀와 그분의 제자들이.’

 

다른 이들의 관대함에 의존하는 삶

나그네들의 삶, 여행할 때 다른 이들의 관대함에 의존하는 삶이 프란치스코의 심금을 건드렸다. 가난 안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고 그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추종자이며 첫 번째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썼던 첼라노의 토마스는 제자들을 파견하는 복음구절이 프란치스코에게 깊은 떨림을 주었다고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다스림을 가르치기 위하여 제자들을 보내면서 금이나 은, 여벌의 신발과 바지나 지팡이를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사제에게서 들은 후 프란치스코는 외쳤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바라던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다하여 갈망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프란치스코가 죽은 지 2년 후 그의 삶을 요약하면서 그를 이끌었던 열정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가난과 평화의 일치

글라라는 가난한 자매들(여성 공동체의 첫 번째 이름)의 ‘생활방식’이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그 삶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회칙을 시작한다. 글라라는 자매들과 함께 하는 삶을 복음의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세상에, 특히 앗씨시의 폭력적이고 문제투성이의 세계에 비추는 것이라고 여겼다.

글라라와 그의 공동체는 가난과 평화의 일치를 살아감으로써 복음을 가르쳤다. 신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글라라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찾았고; 용병들은 그를 만난 후 앗씨시 공격을 그만두었으며,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자매들의 발을 씻기고, 다른 여성들이 그의 공동체를 모범으로 삼아 공동체를 창립하도록 격려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 글라라는 한결같이 제자들처럼,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주제로 돌아갔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복음 따르기를 그들의 회칙으로 삼았다. 이런 자세는 실제로 새로운 것이었는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들에 앞선 세기의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복음을 그들 삶의 규칙으로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프란치스코와 그의 삶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으로 충격을 주었는가? 아마도 그것은 그가 엄격한 삶을 전염되기 쉬운 즐거움과 결합시켰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섬김을 창조물에 대한 열렬한 기쁨과, 대중에 대한 가르침을 침묵의 관상과, 그리고 사명의 여정을 산속의 암자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과 결합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글라라의 진수는 여성들이 전통적인 수도생활의 울타리를 넘어 복음을 지킬 수 있는 생활형태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공동체는 함께 손으로 하는 일에, 특히 옷감 짜는 일에 의존하여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노동에 의한 대가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프란치스코의 형제들이 했던 것처럼, 탁발에 의존했다.

산 다미아노의 작은 교회에 위치한 글라라의 앗씨시 공동체는 여성들에게 입회 지참금을 받지 않았다. 글라라 생전에 산 다미아노 자매들의 삶을 모방한 수많은 여성 공동체들은 13세기에 여성 수도공동체들 안에서 부활의 싹이 돋았을 때 이 산 다미아노 자매들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많은 매력을 발산했는지 증언하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오상

글라라와 프란치스코의 참으로 ‘새로운’ 복음적 운동을 특징짓는 마지막 요소는 프란치스코의 몸 그 자체였다. 그의 죽음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수난의 표징인 오상이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있었다는 소식이 빨리 퍼져 나갔다. 이 ‘새로운 기적’이 프란치스코를 초기 성인들과 분리시켰고, 미래 세대에게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표상으로서, 그가 따르려고 했던 주님에게 살과 피로써 완전히 일치된 초상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프란치스코를 성인으로 섬기는 대중의 신심에 이 오상의 흔적보다 더 기여한 다른 요소는 없을 것이며, 후세기에 그에 관한 많은 논쟁을 일으킨 또 다른 요소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삶과 프란치스코의 삶 사이의 ‘일치’에 관한 과장된 강조는 종교개혁시기에 마르틴 루터가 성인들에 대한 ‘우상적’ 숭배를 비난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걸음 뒤로 가서, 프란치스코, 글라라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후에 프란치스코, 혹은 프란치스코-글라라 전통이 될 것을 첫 번째로 발전시킨 그 역사적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삶과 그 시대에 관한 기본적인 배경을 알아볼 것이다.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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