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단진복] 성경에서 의로운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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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단진복] 성경에서 의로운 자는?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08.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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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14-2] 옳은 것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되도다...

성서에서 처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된 사람은 방주를 만든 노아였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노아만큼 흠 없는 사람도 없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창세기 6,9).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저자는 노아와 그의 가족 이외에, 나머지 인류는 하느님이 인류를 존재케 한 것을 후회하도록 만들었다고 전한다.

노아는 그의 이웃에게 웃음꺼리가 되어왔다. 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를 만들고 동물과 새들을 짝을 지어 배에 태우는 것보다 더 어리석게 보이는 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노아는 첫 번째 동물원지기였다. 분명히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아는 실성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창조주에 대해 복종하는 그의 행위가, 이웃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인류와 동물왕국에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이다. 이처럼 그는 첫 번째 의로운 사람이다. 

정말로 노아가 있었을까? 그는 정말로 방주를 지었을까? 아마도 노아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왜 바다조개가 바다가 없는 곳에서 발견되었는지 묻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영감을 받아 발명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손자가 자신에게 준 아름다운 물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조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바다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전 세계가 가라앉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그건 하느님의 일이었다. 우리가 이 조개소리를 더 충분히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에 관하여 그리고 단 하나의 충실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 말해줄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아가 있었는지 의심할 이유가 있으나, 성서에 나오는 두 번째의 의로운 사람은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늘을 향하여 그의 귀를 열어놓는다. 거룩한 명령에 응답하면서, 그는 자신의 가족, 하인들과 가축들을 우르 지방에서 이끌고 떠나간다. 그는 하느님이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들이 이렇게 뿌리가 뽑히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시편은 올바름에 관한 말들로 가득하다. 시편 37장에서 비록 가난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진실한 부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된다:

"악한 사람들의 많은 재산보다
의인의 가난이 더 낫다. "(시편 37,16)

시편 92장은 의로운 사람들을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들에 비교한다:

"의로운 사람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송백처럼 치솟는다." (시편 92,12)

시편 119장에서 의로움은 하느님이 거룩한 법 안에서 드러내는 자질로 보여진다:

"당신의 바른 결정을 제가 배워서
진심으로 감사하오리다." (시편 119,7)

"당신의 말씀은 한 마디로 진실, 그것이오며
당신의 공정한 판결은 영원하십니다." (시편 119,160)

잠언에는 시편보다 의로움과 그 자질들에 관한 구절들이 한층 더 많다. 의로운 사람은 위축되지 않는 진실한 사람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옳은 말 뿐;
내 말엔 잘못이나 거짓이 없다." (잠언 8,8)

의로운 사람들은 절대로 그의 이웃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느님을 저버린 사람들은 혀로 이웃을 죽이지만
착한 사람은 기도로 이웃을 살린다." (잠언 11,9)

의로운 사람들은 소유물에 의지하거나 탐내지 않는다:

"돈이 많다고 우쭐대다가는 쓰러지지만
착하게 살면 나뭇잎처럼 피어난다." (잠언 11,28)

의로운 사람들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정의롭다:

"마음이 바른 사람들은 가축의 생명도 돌보지만
악한 사람들의 자선은 잔인하다." (잠언 12,10)

의로운 사람들은 나누는데 열심이다:

"악한 사람들은 날마다 욕심만 내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남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 (잠언 21,26)

의로운 사람들은 위험 앞에서 용감하다:

"나쁜 사람은 쫓는자가 없어도 달아나고
의로운 사람들은 사자처럼 당당하다." (잠언 28,1)

의로운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보호한다:

"의로운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알고 있으나;
사악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잠언 29,7)

예언자 이사야는 의로운 사람을 다가올 메시아와 동일시한다: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그 고통의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그의 지식으로 나의 종인 의로운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리라;
그리고 그는 그들의 죄악을 짊어질 것이다." (이사야 53,11)

예레미야도 비슷한 비젼을 갖고 있다:

'내가 다윗의 의로운 왕손을 일으킬 그날은 오고야 만다.
그는 왕으로 다스릴 것이고 현명하게 처신할 것이며,
세상에 정의와 의로움을 펼 것이다." (예레미야 23,5)

그리스도는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되는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면 의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린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그리고 그들은(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자비롭지 않았던 사람들)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의로운 이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오 25,37. 46)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에게서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사람이다.

많은 서점에서 이 책은 “영성”의 구역에 놓일 것이다. 영성이라는 좋은 말은 성령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 말은 자주 기도와 묵상의 올바른 방법을 적용하여 세상 위로, 세상의 혼란스러운 문제들과 절망적인 고통 위로 들어올려져 하느님의 지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혹은 부처나 힌두신의 지복)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전혀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두려움, 고통, 핏자국과 함께 실제 세계를 바라보고 응답해야 하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들을 구하고 보호하며, 지금 이곳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응답해야 한다. 기도하는 방식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지옥에 이르는 문이 된다.

윌리암 블레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걸인의 누더기, 공중에 퍼덕거리는 누더기는
천국의 눈물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사막의 교부들은 되풀이해서 우리에게 의로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페르므의 압바 테오도르는 압바 마카리우스의 충고를 따라 그가 지닌 유일하고 귀중한 소유물인 책을 팔고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압바 마카리우스는 도둑이 자신의 처소에서 훔쳐가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다. 이 모든 행동들은 자기 비움적인 사랑, 그리스말로 케노시스(kenosis)를 전해준다. 소유물에 죽고, 심판하기를 거부하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불을 붙인다.

압바 롯트가 압바 요셉에게 말했다, “원한다면, 당신이 불꽃 자체가 될 것입니다.”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은 불꽃의 진복이며 삶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지극한 갈망이다.


[원출처] <진복의 사다리>, 짐 포레스트, 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
[출처] <참사람되어> 200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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