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 이야기 "‘나쁜 역사 세력’에 맞선 정당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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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 이야기 "‘나쁜 역사 세력’에 맞선 정당한 분노"
  • 오인영
  • 승인 2017.08.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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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 이야기-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돌베개 (2014)

이 책의 제목은 평범했고, 저자의 이름은 생소했다. 저자의 본명이 라이문트 프레첼(Raimund pretzel)이고 1907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책을 접하고서야 알았다. 그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법원과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극으로 치닫던 1938년에 영국으로 이주했고, 독일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피해를 우려해 제바스티안 하프너라는 필명으로 1939년에 이 책의 초고를 썼다는 정보도 책을 읽고서 알았다.  

그러나 저자의 신원과 활동 전반에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평을 써보겠노라고 만용을 부린 것은, 어쩌면 이 책이 (나에게는) 다소 밋밋한 제목의 낯선 저자의 회고록이라는 점이 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말도 그다지 특별하달 게 없는 ‘어느’와 ‘1933’이라는 단어였다. 저자는 회상의 주인공이 유명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독일 사람임을 특별히 강조할 요량으로 ‘어느’라는 관형사를 쓴 듯 했고, 히틀러가 노골적으로 폭정을 펴기 시작한 시기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1933’이란 연도를 쓴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하프너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을 이런저런 약점을 지닌 평범한 독일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딱 평균적인 독일인”의 눈에 비친 1914~1933년의 독일의 위태로운 시대상을 되짚어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 시기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즉,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패배, 1918년의 독일혁명, 1920년대 초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혼란,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히틀러의 부상 등-을 두루 회상하기는 하지만, 회상의 초점은 히틀러의 출현 배경에 맞춰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중점적으로 회상하는 바는 자신을 포함하여 평범한 독일인들의 나치즘에 대한 개별적 반응이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권력을 쥔. 무자비한 국가”의 도발적 공격에 대한 “작고 이름 없는, 알려지지 않은 개인”(들)의 대응이라는 얼개로 짜여 있다. 하프너는 국가와 개인의 이런 싸움이 단지 정치영역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 일상적 생활 전반에서 벌어진 일종의 “결투”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야당 정치인도 아니고 ‘국가의 적’은 더더욱 아닌 그저 평범한 개인이, 매우 강력하고 적대적인 국가(정확히는 정권)에 대항해 스스로 자신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매번 사생결단의 결투를 벌어야만 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래서 오늘의 독일인들은 이 책을 자아와 인간성이 위험에 ‘처했던’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로 읽었을 것이고, 저 야만적 시절에 대한 기록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저 멀리 독일의 지나간 옛날을 다룬 회고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 관한 생생한 현장보고서처럼 느껴졌다. 달리 말하면, 나에게 이 책읽기는 단지 텍스트(활자) 읽기가 아니라 이 책이 출간(번역)된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 읽기이기도 했다. 오늘의 독일에서는 무자비한 국가폭력과 그에 따른 개인의 희생과 인간성 상실의 문제가 이미 극복되었다면, 한국에서는 그것이 ‘지금 이 시간(Jetztzeit)’에도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의 차이 때문에, 오늘의 독일인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지나간 나치시절에 대한 어느 독일인의 회고담이 아니라 한 사회가 파시즘/파국으로 질주할 때의 특징과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지 않으려면 그런 질주를 어떻게든 정지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역사-채근담(菜根譚)’처럼 읽었다.  

 

나치의 국가폭력, 지금 우리와 너무 똑같아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들은 구체적 인명이나 사건명만 바꿔 넣으면 1930년 독일에 대한 묘사인지,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한 묘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현재적으로 ‘리얼’하게 읽힌다.

“작고 불쾌한 선동가는 거친 뻔뻔스러움을 통해 악령으로 자라났다. 히틀러를 제어할 사람들은 우둔해서……그가 더 정신 나간 말이나 더 무시무시한 행동으로 다시금 이를 넘어선 다음에야 이해했다. 게다가 청중은 최면에 걸려 역겨움의 마법과 악함의 환각에 점점 더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히틀러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다.”(115쪽)

“국가가 냉혹하고 치밀하게 계산해서 지시를 내리고 조정한 다음 경찰과 군부는 이를 완벽하게 감싸주었다. ……이 모든 일은 반대편에서 예전에 자행한 만행에 대한 보복으로 생긴 것도 아니었다. ……강도와 살인자가 국가권력의 옷을 빌려 입고 경찰로 등장했고 그 희생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고, 추방당하는가 하면, 미리 사형을 선고받았다.”(156쪽)

하프너는 괴테와 베토벤의 나라에서 나치정권이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4가지 요인으로 설명한다. 나치정권의 억압적인 폭력(테러), 장황한 이데올로기적 공세(선전 선동), 저항세력의 배반, 그리고 독일인들의 집단적 허탈상태가, 그의 표현을 빌자면 “위험한 정신병자” 혹은 “집단주의적 국가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특히 집중해서 서술하고, 또 이목을 끄는 대목은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이다. 그는 자기를 포함해서 독일인들은 나치가 등장한 초기에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131쪽)를 바로 보지 못해서 상식적인 선에서 반-문화적 악행을 멈출 거라는 “병적인 낙관주의”, 혹은 “부질없는 환상”(288쪽)에 빠져 있었다고 회고한다. 또한 나치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사생활은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만적 위안에 빠져 있었다고 반성한다.

그리고 이런 반성의 결과로, 거창하게 역사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결국 “사생활의 외진 구석”을 내주지 않으려면(248쪽),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결정에 독재자가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건은 모두 수천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드러난다.”고 역설한다.  

물론, 개인적 체험만이 역사의 질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마다의 개인의 체험이 깊어지고 넓어져야 역사도 두텁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지금 <어느 독일인의 회상>과 같은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가 무수히 양산될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나 사회진화론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1930년대 독일인보다 못하거나 못난 사람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광장>과 <화두>의 작가 최인훈은 어느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쁜 사람은 역사를 읽을 틈이 없다. 역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다만 그가 나쁜 역사를 만들고 있을 때가 문제다. 그런 경우에는, 그가 죽든지 그를 죽이든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 쪽에 있지 않을 지라도, 평범한 개인들도 역사를 체험하고, 체험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체험과 기억을 토대로 삼아서 지금 여기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다시 볼 수 있다.

하프너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타고난 영웅이나 순교자가 아니라 자아와 인간성을 지닌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뉘라도 능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록이다. 또한 야속하고 한스러운 것은 세월이 아니라 나쁜 역사 속의 세월이며, 그 세월 속의 무기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탄과 무기력을 물심양면으로 집요하게 조장하는 ‘나쁜 역사 세력’에 맞서 정당하게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일러주는 실존의 참고서이다.


오인영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교수

[출처] 인권연대 http://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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