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경운기, 오토바이, 엔진톱...기계 없이 살 재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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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경운기, 오토바이, 엔진톱...기계 없이 살 재간이 없어
  • 한상봉
  • 승인 2017.08.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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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4

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4

며칠 전에 서울 나들이를 하였다. 비가 오리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태풍일 줄은 몰랐다. 일기 예보에 이다지도 무딘 걸 보면 아직 제대로 농부가 되기엔 이른 모양이다. 서울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채 부리나케 무주 땅 광대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태풍에 하우스 비닐이 날아가 버렸다는 급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말리던 고추는 비에 젖고, 아내는 그 고추에 서린 물기를 닦아 내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일이 서툰 만큼 농사일은 언제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나마 수확할 거리조차 없어 허망한 심경으로 가을맞이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일까? 농부에게 이보다 더한 낭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신문에서 가십거리를 읽더라도 ‘농’(農)자와 사촌지간에 있는 기사들이 먼저 눈에 밟힌다. 그날 황급히 무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심심풀이로 읽으려고 주간지를 하나 샀는데, 우스개삼아 담아 놓은 기사 가운데 유난히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범죄자가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편지를 항상 검열하였던 모양이다. 어느 봄날 이 죄수 앞으로 아내에게서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내용인즉 개복숭아 나무가 서 있는 근처 밭에 감자를 심으려고 하는데, 언제가 적당한지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집에 남아 있는 처자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죄수는 당장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 밭에 총이랑 무기란 무기는 죄다 파묻어 놓았으니, 절대로 땅을 헤집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뜻이었다. 며칠 후 아내에게 다시 편지가 다시 날아왔다. 얼마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밭을 온통 헤집어 놓고 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죄수는 답장을 썼다. 지금이 바로 감자를 심을 때라고.

고맙게도 경찰들이 감자밭을 잘 일구어 놓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우스갯소리이지만, 내겐 그 이상이었다. 올해 첫 농사를 지었는데, 봄에 제일 먼저 파종한 것이 감자였기 때문이다. 감자는 그만큼 일찍 파종하고 일찍 수확하는 작물인 셈인데, 처음이라 일도 서툴고 땅을 갈고 이랑 만드는 게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으레 자신이 가장 절박한 것에 온통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가? 경찰에겐 ‘총’이라는 글귀가 퍼뜩 눈에 들어왔듯이. 농사 짓는 자의 지혜와 아내에 대한 배려, 그리고 범죄자의 간교함이 절묘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소한 일상, 거룩한 성찰

자못 사소할 수 있는 일상에 주목하지 못하면, 역사적 대의도 때로 빛을 잃게 마련이다. 내 마음의 흐름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감지하지 못하는 감수성은 위험하다. 난데없는 곳에서 공연한 수고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잘한 일상에 대한 무게 있는 성찰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런 사람들만이 역사의 목표와 과정에 두루 주목하는 믿음직한 일꾼이 될 것이다.

우리 집 운송 수단은 중고 경운기다. 지금은 회사 이름도 없어졌지만 금성(金星)에서 만든 것인데, 이 경운기를 50만 원에 사서 십여 만 원을 주고 고쳐 쓰고 있다. 그 덕분에 이번 가을엔 땔감을 많이 부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난 겨울엔 산에서 땔감을 해도 나를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추운 산촌의 겨울을 더욱 춥게 지내고 나니, 우리 운송 수단의 가장 큰 용도는 땔감 나르기인 셈이다.

몇 달 전에는 오토바이도 한 대 장만하였다. 장날마다 자동차를 가진 이웃들의 신세를 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한여름에 짐을 들고 산길을 거슬러 오르는 고역도 덜어 볼 생각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걸어서 다닐 때는 산길이 험한 줄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하였지만, 막상 오토바이로 비포장된 돌밭길을 오르려다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인삼밭 옆을 지나는 길은 비만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 사방에 박힌 돌, 구르는 돌이 뒤섞여 숫제 ‘길’이 아니라 ‘계곡’이라 해도 좋을 험로(險路)였다.

초보 오토바이맨으로서는 엎어지고 깨지고 난리가 났었다. 지금도 팔뚝엔 그때 엎어져 돌부리에 긁힌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 이젠 제법 이력이 붙어 그런 대로 잘 달리고 있지만, 그 당시 내겐 ‘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각났다. 길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다름 아닌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는 길과 달릴 수 없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는 길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행동 반경도 넓어지고, 급기야 진안 지역은 물론이고, 안성에서 장계, 장계에서 육십령고개를 넘어 최근엔 함양의 영각사(靈覺寺)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요즘엔 백여 미터 떨어진 창호 씨네 집에 갈 때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곤 한다. 이른 바 타고 갈 수 있는데 왜 걸어가냐는 것이겠다. 문명의 이기란 그만큼 놀라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전에 다짐했던 ‘가급적 기계 없이’라는 사고 방식을 어느 새 ‘초월’해 버린 것이다. 이념은 습관 앞에서 맥을 못춘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셈이다.

그러므로 일상에 얽혀들지 않고 술좌석이나 강연장에서 늘어 놓는 장광설은 그다지 믿을 바가 못 된다는 진실도 따라서 깨달은 셈이다. 이렇게 영악한 머리로 제대로 알긴 알았는데, 습관을 바꾸고 일상을 이념에 다시 적응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얻었지만 걱정이다. 한번 맛본 재미와 한번 박힌 습관이 그리 쉽게 바뀔 리 없는 까닭이다. 한번 편해진 몸이 다시 고행(苦行)을 되짚어 간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일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써야 하는 법인데, 그 필요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워낙 주관적이라서 그렇게 믿을 게 못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마음이라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기계 없이, 너도 살아 봐

처음에 입농(入農)하였을 때,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산중에서 경운기는 위험하니 안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써 보고 나서 확인된 것이지만, 경운기는 오르막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내리막에선 핸들 조작이 정반대라서 잠깐이라도 방향을 헛갈리면 길을 벗어나기 쉽고, 무거운 짐이라도 잔뜩 실었을 경우에는 하중이 아래로 실려 바퀴가 쉽게 미끄러져 조절하기 힘이 들었다. 물론 한 번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게 뻔했다.

자동차는 워낙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입한다손 치더라도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서, 보통 내핍 생활에 익숙한 산중 사람들에게는 일 년 생계비와 맞먹는다고 했다. 물론 교통 사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리고 귀농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생태주의의 관점에서도 자동차는 ‘마물(魔物) 중의 마물’인 셈이다. 혐오 물건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그리고 엔진톱 역시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그 모터 소리가 산중에 진동할라 치면, 근처의 산천초목이 다들 불안에 떤다는 ‘생명주의’의 세뇌도 당한 바 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그런 말을 하는 이들 가운데 경운기며 자동차, 엔진톱이 없는 사람이 없고 예초기, 관리기, 정미기, 전기톱 없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물론 이 분들은 장차 이런 도구들 없이 살려고 한다는 말을 항상 덧붙이지만, 현실이 현실이다 보니 이상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엔진톱 없이, 경운기 없이 한겨울을 나야 했던 우리는 사실 너무 고달팠다. 춥고 고단했다. 결국 ‘수정주의’ 노선을 택하기로 하였다. 기계를 쓰긴 쓰되 적절히 쓴다, 뭐 그런 것들이었다. 아랫마을 어른신 가운데선 아직도 소를 부리는 분들이 계시다. 비탈진 건너편 경사밭에서 소로 쟁기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평화로운’ 낙원 같다. 그림 같고 부럽다. 그 이면에 서린 고달픔을 예감하지 못할 만큼 어수룩하진 않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강요된 것이 아니라면, 자발적인 선택이라면 소를 부리는 것이 산중 농법(山中農法)의 으뜸임을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한 가지가 풀리면 나머지도 잇따라 해결될지 모른다. 소를 잘 부릴 수 있다면, 그리고 농사를 지금처럼 작게 한다면, 소한테는 무척 미안하고 송구스런 일이겠지만, 써레질, 쟁기질을 소에게 맡기고,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다닐 수도 있겠다. 이렇게 때론 원시(原始)적인 농사가 근원(根源)에 더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몽상을 해 본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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