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문제는 인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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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문제는 인권의 문제
  • 최충언
  • 승인 2017.07.3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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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언 칼럼]

부산 송도 방파제에서 여명을 맞았다. 살아가면서 밖에서 날이 새는 것을 맞이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이곳은 태풍이 와서 높은 파도가 방파제를 치는 장면을 기자들이 촬영하고 뉴스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아웃리치의 마지막 방문지는 방파제 앞에서 노숙하는 텐트였다. 영도와 송도를 잇는 남항대교의 가로등 불빛 너머로 날이 밝아왔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날며 일행을 반겨주었다. 7시간의 야간 아웃리치의 피곤함도 싹 가시는 듯했다.

길에서 잔다고 모두가 노숙인은 아니다. 구포역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청도에서 오셨단다. 목소리가 이상해 물었더니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하며 진단서를 보여준다.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할 예정인데 그냥 나왔단다. 이것은 우리의 아웃리치를 벗어나는 일이다. 딸이 밀린 병원비를 대납한 경우였다.

 

사진출처=pixabay.com

이유 달지 마라, 적선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대개 노숙인 문제를 여전히 동정의 시각으로 본다. 나는 이런 시각이 불편하다. 동정으로 보면, 노숙인은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지하도 계단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하나 건네주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 돕고는 싶지만 적선한 돈으로 술을 마시니 돕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지나치고 나면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고 죄 지은 것 같다.’ 적선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살면서 불쾌한 경험을 한다. 우리가 가끔 겪는 노숙인에 대한 불쾌한 경험은 대개 이런 것이다. 술 냄새를 풍기며 불결한 손을 내밀어 돈을 달라고 한다.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잠을 잔다. 행패를 부리거나 상스러운 말을 지껄인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지하도에서 술을 마시며 함부로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버린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가 윤리적인 당위와 현실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을 느껴서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일 게다.

노숙인의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 모두를 모으려는 상징 행위로써 열두 제자를 뽑았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서 멸시받던 상것들을 매우 선호했다. 가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과 한 맺힌 이들, 무지렁이들, 직업상의 죄인들과 윤리상의 죄인들, 여자와 어린이들을 각별히 사랑하셨다. 인간에 대한 예수의 기본 정서는 연민의 정이었다. 불가의 자비심이나 유가의 표현을 빌려 측은지심과도 상통한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연민의 감정에서 출발된다. 연민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연민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권의 문제이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노동권 같은 기본 인권에 속하는 문제이다.

노숙인의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인권의 문제는 개인의 느낌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노숙인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다는 생각을 넘어선다. 그들도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다. 따라서 존엄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요즘 최대의 사회 이슈인 최저임금 만원의 문제도 그렇다. 자본의 처지에서는 임금인상을 좋아할 리가 없다. 기업은 언제나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다. 그러니 경제계나 보수 언론에서 반대는 불 보듯 뻔하다. 중소기업가나 자영업자 쪽에서 시급 인상에 따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 가운데 하나가 최저 임금제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많은 이유를 대며 반대하더라도, 진보 세력은 그 사안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라면 꼭 필요한 단 하나의 가치실현을 위해 힘을 쏟아야한다.

이웃이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을 보고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나쁜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을 때는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권의 눈으로 바라보면,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 사람이 인간인 이상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그들이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이 방치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도록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이란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집을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게 국민들의 정서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빈부격차로 인해 집을 못 가진 사람도 절반이나 된다. 노숙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주거를 보장하라고 하면 당장 “나도 집이 없는데, 홈리스에게 주거를 제공하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주거권의 문제는 사유재산권의 문제를 넘어서 삶의 토대에 관한 공공의 문제라는 인식을 찾기가 어렵다.

노숙인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숙문제를 실업의 문제로 생각한다. 실업이나 파산, 가정의 붕괴, 건강 악화, 지역사회 공동체의 붕과 같은 원인 말고도 주거문제도 중요한 배경이다. 주거문제는 노숙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기도 한다. 집이 없어서 노숙을 하지만 노숙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집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빈곤계층 중에서 노숙인 같은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주택제공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정책은 그들이 비노숙인의 눈에 띄지 않기만 하면 끝이다.

지난 번 아웃리치에서 만났던 노OO군의 경우가 떠오른다. 구포역에서 만났는데, 노숙을 한 지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응급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승합차에 태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산공고 2학년을 중퇴하고 공사장에서 살아온 이야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가슴을 울렸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전기설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어릴 때 다친 다리와 사고로 성한 다리를 다쳐 수술을 한 뒤로는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노숙을 하게 되었고, 음식도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었다고 한다.

노군은 현재 응급잠자리를 거쳐 자활센터에 들어갔다. 곧 무릎 수술을 하고 마음과 몸을 추스르고 당분간은 자활센터에서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경사진 곳에 나무로 만든 데크(deck) 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상상이나 해 본 일이 있을까?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했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노군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려 4년 동안이나 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더욱 노숙인의 주거문제에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악한 사람들에게나 선한 사람들에게나 골고루 햇빛을 비추고 비를 내리는 분,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고 기뻐하는 목동 같은 분, 잃은 은전 한 닢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같은 분, 집 나간 둘째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 같은 분, 만 달란트나 되는 천문학적인 빚을 기꺼이 탕감해 주는 임금 같은 분, 해 떨어지기 직전에 단 한 시간 일한 품팔이에게 그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서 하루치 품삯을 주는 선한 포도원 주인 같은 분이 하느님 아버지다.

노숙인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거나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랐다고 입에 게거품을 무는 사람들에게 연민은 없다. 예수가 깊이 체험하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숙인에게 한 푼을 쥐어주는 일은 노숙인의 인권이 보장되게 만드는 것보다 더 쉽고 간단하다. 인권의 문제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인상 찬반논의에서 보듯, 최저임금 노동자의 얇은 월급봉투를 탓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깨부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일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예수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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