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도하고 영성 단순함의 길-시토회 수도전통
[시토회 사람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드[단순함의 길] 시토회 수도자들의 전통 -25

베르나르드는 대략 1090년경, 디종 근처에서 태어나서 대부분의 그의 형제들과,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과 함께 20대 초반에 시토 수도회에 들어갔다. 3년 내에 그는 새로 설립된, 클레르보의 첫 번째 수도원장이 되었다. 여기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영적인 열정은 아주 멀리까지 미치고 압도적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유럽의 끝에서 와서 공동체를, 폴린 마타라쏘의 말에 의하면 ‘기라성 같은 수도원들 중에서 가장 밝은 별’로 만들었다.

1130년에 베르나르드는 클레르보와 떨어져, 이제부터는 그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가 되어갈 교회와 국가의 정치 문제에 들어간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계속 고독과 고요를 갈망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점점 더 수도원 바깥의 일들에 휩쓸리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어떤 때에는 제2차 십자군에게 설교하는 것 같은, 오늘날 우리에게 별로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 일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복합적이고, 유능하고, 호전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 어떤 일에는 개혁가이고 다른 일에는 보수적인 그는 생명보다 더 크다. 그러나 하나의 실이 그 모든 것을 함께 묶고 있으며 그 실은 교회에 대한 열정이었는데, 이러한 열정은 그의 전 존재를 인도하고 알려주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연장일 뿐이었다.

마이클 캐이시는 오늘날 어느 누구만큼보다 충만히 알게 된 이 동료 시토회 수도자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베르나르드는 예언자였고,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와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고 그들에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그의 열정과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그의 열성을 전달하는 에너지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열정, 그의 삶이었고, 그리고 다른 이미지들은 의미가 없다."

그는 뛰어난 의사소통가로, 말하고 쓰는 데에 모두 탁월한 역량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예언자의 재능을 가졌다. 그는 완전히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특별한 천재성은 복음의 메시지를 그 시대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말들로 번역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책을 읽었는데, 이런 자료들은 복사되어 널리 퍼져 나갔다.

그의 사상의 가장 훌륭한 개화는 틀림없이 일련의 <아가>서에 관한 강론들 중에서 발견되지만, 그밖에도 많이 있다: 논문과 강의록, 신학적 소론과 전기, 성가와 편지들. 그는 자신을 이 형태들 중의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었지만, 항상 그가 오늘날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12세기에 그를 첫 번째로 만났던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바로 수도승의 목소리, 풍요로운 수도적 원칙과 영성이다.

그는 1153년 클레르보에서 죽었다.


출처/1998년, 미국 메리놀회 출판사인 올비스에서 출판된 에스터 드 왈의 <단순함의 길(The Way of Simplicity)>을 참사람되어에서 2001년 4월에 옮긴 것입니다.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에스터 드 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