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가운데 ‘지금 여기’ 현존하시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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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가운데 ‘지금 여기’ 현존하시는 영
  • 유수선
  • 승인 2017.07.1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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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4

[유수선 칼럼] 

1986년 어느 가을날 절두산 성당에서였다. 영성체 하러 나온 내 뒤를 따라오던 3살짜리 아들이 내가 성체 앞에서 절을 하는 동안 갑자기 “예수님 어디 계세요? 안 보여요.” 소리치며 제대 위로 올라갔다. 자기도 인사를 하겠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아이의 진지한 모습에 웃을 수도 야단칠 수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평생을 ‘우리 님이 계신 곳’을 찾아 헤매는 아가서의 여인으로 살아왔다.

더 이상 예수님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다"(마르16,7)라는 빈 무덤 속 젊은이의 말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텅 빈 갈릴래아,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22,32)는 예수님의 말씀이 등불이 되어 주님과 함께 다니던 길을 오가며 그 분의 현존을 확인해 갔던 제자들의 부활신앙, 이 또한 사랑하던 임을 잃은 여인의 애틋한 그리움의 몸짓이었으리라.

by Edwin Long

내가 주님을 가장 깊이 만난 것은 1987년 미네소타에서였다. 당시 캘리포니아 CSLI 연구소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미네소타 성령기도회 회장이셨던 외삼촌께서 추수감사절 휴가동안 그곳에 와서 미사반주를 해주며 함께 지내자며 비행기 표를 보내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여자가 악령 들린 것 같다고 구마기도를 해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동두천에서 미군을 따라미네소타에 건너와 아이 둘을 낳고 살았는데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아이 둘도 빼앗겼단다. 그 후 여인은 문 밖 출입을 하지 않고 심한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여기저기에 박고 아무거나 집어던지며 지내는 것이 악령 들린 것 같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았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시던 삼촌은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당신 혼자 가는 것이 적절치 않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하느님을 느낄 수 없는 어두움 속을 헤매고 있었다. 결혼 후 기도하며 어렵게 얻은 첫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이었는데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자 그런 아이를 낳을 확률이 30% 라는 의사의 말과 ‘병신자식 하나라도 잘 기르지’하는 주변의 말에 현혹되어 10개월 만에 둘째가 들어서자 낙태하러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약이 들어가 몽롱해질 때쯤 ‘속았구나’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스쳤지만 이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해성사를 보았지만 하느님의 권한을 침범하고 인륜도 저버린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깊은 절망에 시달려 미사도 성전 맨 뒷줄에서 얼른 보고 도망치 듯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만일 그 집에 악령이 있다면 내게 옮겨 붙을 것 같아 두려웠다. 무엇보다 이런 죄인이 복음을 들고 악을 퇴치하러 갈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동행하지 않겠노라 거절했다. 하지만 이 먼 이국땅에 가정도 아이도 잃고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여인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따라나섰다.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괴성과 흐느낌이 내 폐부를 찌르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이혼 당하고 자식마저 빼앗겨 울부짖고 있는 여인 앞에서 자신의 태아를 낙태시키고도 엄마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 미안해요.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문 좀 열어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열어 주세요.” 30분쯤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헝클어진 머리와 슬픔에 지처 서 있을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여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죄의식과 두려움은 잊어버리고 그 여인을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나보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엇인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입을 열 수 밖에 없었고 입을 열자 혀와 입술이 저절로 움직이며 말이 나왔다. “ 두려워하지 마라......” 분명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이가 따로 계셨다. 어떻게 하느님은 나 같은 죄인 안에 머무시며 말을 하시는가?

내 기도소리를 들으며 여인은 거부하던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게 맡기며 울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찾은 구원의 기쁨으로 한참을 울었다. 한 참 후에 그 여인이 수퍼마켓에 취직했고 교리공부를 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을 삼촌에게서 전해 들었다.

지금은 여인의 얼굴도 그 날의 기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때의 구원체험은 생생하다. 성령께서 강한 힘으로 우리의 온몸을 휘 감아 안으시며 죄와 상처로 단단히 막힌 담을 허무시고 평화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시어 우리를 깊은 안식으로 인도하셨다. "빈들로 꾀어내어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국땅에까지 데리고 가셔서 당신의 현존을 통해 용서를 온전히 체험케 하신 것이다.

그 날 ‘용서한다’, ‘사랑한다’ ‘복음을 전해라’라는 말은 없으셨다. 하지만 함께 하시며 흘러넘치게 주신 은총으로 자연스레 내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과 그분의 의를 찾고 구하도록 이끄셨고 가난한 죄인들이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 평화를 누리도록 돕는 도구로 살아가도록 이끄셨다.

하느님은 우리처럼 우리의 과거, 우리의 죄에 관심이 없으셨다. 우리가 ‘행복한 왕자’의 제비처럼 자신의 상황보다 이웃과 하느님의 필요에 시선을 돌려 지금 여기서 “예”라고 응답하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보물을 나르게 하신다.

야곱이 베텔에서 하느님을 만난 후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깨닫고 베고 자던 돌을 가져다 기념기둥을 세웠듯이 나도 하느님과의 만남을 잊지 않기 위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마음으로 성경묵상 찬미기도모임을 마련하였다. 지금은 재단에서 월 1회 셋째 목요일 오후에만 모인다. 나머지 목요일은 늘품형제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죄는 몰라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만은 존중하리라 결심하고 자연피임법을 따르다보니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회개하는 죄인 안에 머무시며 베푸신 하느님 아버지의 축복이었다.


유수선 수산나 
초원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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