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렐리, 세상은 원래 잔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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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렐리, 세상은 원래 잔인하지 않았다
  • 유대칠
  • 승인 2017.07.1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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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10]

자녀가 묻는다. 왜 공부하는지 말이다. 그러면 부모 혹은 선생이 답한다. 무시 받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편하게 살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이기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공부의 이유가 참 잔인하다. 공부를 못하면 무시를 받을 수 있다. 편하게 살 수 없으며 패배자가 될 것이다.

참으로 무정한 세상

무정하고 싶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게 되어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겨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겨야 무시 받지 않고, 더 편하게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해야한다. 이기기 위해서 말이다.

남보다 더 빠르게 기억해야 한다. 더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 더 빠르게 풀어야 한다. 남보다 늦는다면 소용없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가져야한다. 그래서 이겨야 한다. 그것이 공부다. 결국 공부는 남을 이기기 위해서 한다. 패자에게 행복은 없다. 패자는 불행해야한다. 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시 받아야하고 덜 가져야한다. 힘들게 살아야한다.

이와 같이 차별이 있어야한다. 패자의 불행이 승자가 누리는 행복의 이유다. 참 잔인하고 외로운 행복이다. 그 행복, 그 잔인하고 외로운 행복을 부모와 선생은 자녀에게 말한다. 그 잔인하고 외로운 행복을 위해 살라 말한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곳이고, 유일한 생존법은 승자가 되는 길 뿐이라 말한다.

요즘 참 슬픈 사건들이 많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함부로 무시한다. 함부로 노예처럼 부리며 괴롭혀도 죄책감이 없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한 이들은 좀 그렇게 살아도 된다. 원래 세상은 그렇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곳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래 세상은 그러한 곳이고, 피해자가 될 것이면 차라리 공부해서 가해자가 되려 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무시 받는 사람에게 무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학생은 공부하고 부모는 공부시킨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정말 세상은 그렇게 잔인한 곳일까? 공부를 못하면 결국 어른이 되어 고생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교육하기 위해 혹은 무시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성적순으로 점심 급식을 하게 하는 것이 정말 세상의 원래 모습을 알려주기 위한 참 교육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세상은 원래 차별의 공간인가?

Paul VI 1966 Rerum Novarum Silver Medal

타파렐리의 '사회적 정의'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노동헌장)를 발표한다. 당시 자본을 가진 이들은 너무나 당연히 가난한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렸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사회적 강자인 자본가는 아무렇지 않게 약자인 노동자를 노예처럼 생각하고 다루었다.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새로운 사태>는 노동자를 노예가 아니라 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법적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노동자를 노예로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권을 가진 당당한 한 명의 인간이다. 자본가와 다를 것이 없는 한 명의 당당한 인간이다.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한 명의 당당한 인간이다.

<새로운 사태>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탄생에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타파렐리(Luigi Taparelli, 1793-1862)다. 그는 <새로운 사태>를 낳은 교황 레오 13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알게 모르게 지금 우리에게도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바로 ‘사회적 정의’(giustizia sociale)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가 낳은 말이다. 이 말만으로도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가 살던 유럽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층으로 나뉘어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그도 이를 두고 고민하였다. 그런 그가 선택한 마지막 대안은 ‘토마스주의’다. 이런 그의 입장은 그의 저서 <자연법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 잘 나타나있다. 토마스주의의 실재론을 바탕으로 타파렐리는 모든 인간은 모두 다 동일한 ‘공통 본성’을 가지고 있다 주장했다. 그 본성은 바로 ‘이성’이다.

레오 13세 교황과 루이지 타파렐리

어떤 인간도 ‘이성’을 가지지 않은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이 이러한 점에서 동일하다. 동등하다. 모두가 평등하게 이성적이다. 존재론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은 동일한 위상을 가진 이성적 존재다. 그 ‘이성’으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인간들은 누군가에 의하여 독점된 행복이 아닌 더불어 행복을 공유하는 공동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타파렐리는 믿었다.

존재론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하게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성으로 모두를 위한 행복을 궁리한다. 그것이 원래 세상이라 한다, 원래 세상은 잔인하게 홀로 좋음을 누리기 위해 남을 이겨야하는 다툼의 공간이 아니다. 공동선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는 공존의 공간이다. 이것이 원래 세상이라 타파렐리는 믿었다. 세상은 그에게 남을 이기고 홀로 행복을 독점하려는 그러한 잔인한 행복의 공간이 아니다. 함께 머리를 마주하고 더불어 모두 행복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공간이다.

이기는 행복, 가해자의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어쩌면 또 다른 가해자의 폭력 앞에서 피해자가 될 정당성을 스스로 허락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자. 어쩌면 공부는 모두를 위한 모두의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허락한 것일지 모른다. 차별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함이 아닌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공부해야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 세상의 이치일지 모른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잔인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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