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벳사이다의 다른 이름, 율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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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벳사이다의 다른 이름, 율리아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7.1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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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고고학 - 8
Ruins of Bethsaida: Where Jesus healed a blind and mute man (Mark 8:22-26) . 사진출처=seetheholyland.net

루카 9,10-17에서 예수는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였다. 예수는 갈릴래아의 여러 고을에서 기적을 많이 일으켰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꾸짖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1-24)

요세푸스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통치 제13년, 즉 93-94 년에 쓴 <유다 고대사>는 스무 권으로 된 방대한 작품으로서, 창조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제1차 유다 봉기의 발발까지의 역사를 서술한다. <유다 고대사> 18권 28에는 벳사이다가 언급된다.

“필리포스는 겐네사렛 호수에 위치한 벳사이다를 고을에서 도시로 승격하였다. 그곳은 주민이 많고 웅장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 이름을 따서 율리아스(Julias)로 불리었다.”

필리포스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로서 기원전 4년-기원후 34년에 갈릴래아 호수의 북동부 지방인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였다. 그는 기존의 벳사이다를 도시로 확장하였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부정확한 점이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7-기원후 14년)의 딸인 율리아, 즉 리비아(Livia)는 기원후 2년에 로마에서 추방되었다. 사실 필리포스가 벳사이다를 율리아스라고 부른 것은 티베리우스 황제(14-37년)의 어머니,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내인 율리아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는 기원후 29년에 죽었다.

필리포스는 30년경에 “율리아 아우구스타”(Julia Augusta)라는 명각과 함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내인 리비아의 상을 새긴 동전을 만들었다. 필리포스는 34년에 벳사이다, 곧 율리아스에서 죽었고 그곳에 매장되었다고 하나(<유다 고대사> 18권 4.6) 그 무덤의 위치를 알 길이 없다.

이와 같이 기원후 1세기 말에 기록된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는 벳사이다를 율리아스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로서 70년 경에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는 벳사이다로만 언급한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서는 기원후 30년 이전의 전승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벳사이다의 폐허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굴은 1987년에 네브라스카 대학교(University of Nebraska)의 고고학자 라미 아라브(Rami Arav)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벳사이다의 가옥 형태가 드러났다.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에 지어진 어떤 집은 13.5×7m 규모의 돌이 깔린 안뜰을 가진 형태를 가진 것으로, 그곳에서 다양한 고기 잡는 도구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도구들은 낚시 바늘, 그물추, 돛을 만들거나 수리하는데 사용된 굽은 청동 바늘 등이다. 그래서 이 가옥을 “어부의 집”이라 부른다. 그리고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의 집으로 추정되는 가옥 구조도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는 포도주 저장실, 포도주 담는 항아리들과 갈고리 등이 발견되었다.

Basalt Stele decorated with a bull's head from Bethsaida, 8th c. BCE. (photo courtesy of Israel Museum)

아라브는 1996년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기원전 10-9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문을 발견하였다. 벳사이다에서 발견된 네 개의 방을 가진 성문 구조(four chambered gate)는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것으로서 제법 규모가 큰 성문이었다. 아라브는 성문에서 산당(high place)과 세워진 두 개의 돌(standing stone)도 발견하였는데 그중 하나에는 황소 모양의 전사가 새겨져 있다.

벳사이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은 향후 신약성경과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한 흥미로운 결과들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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