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개신교인, 그네들의 놀라운 신앙
상태바
네팔의 개신교인, 그네들의 놀라운 신앙
  • 이금연
  • 승인 2017.07.05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팔 카나의 집 이야기-17

어제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개신교 신학대학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만 이틀 동안 우리집에서 개신교 선교사들과 성경 통독을 하고 난 뒤였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집 반경 몇 킬로미터 내로 각 교회에서 파견 받은 선교사들이 이사를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엔 개신교회들도 많아 주일 즉 토요일 오전, 우렁차게 부르는 찬송가 소리를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자면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모임을 함께 하는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돕다 인연이 되어 네팔로 오게 된 목사님, 삼십년 이상 해온 전문직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되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육십 대의 평신도 여성, 인도에서 이십년 이상 선교였건만 어느 날 ‘비자 안줘’ 하는 바람에 네팔이 대체 지역이 되어 온 역시 평신도 선교사, 중국에서 선교 하던 중 웬지 히말라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는 사진가 겸 선교사였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우연히 네팔로 오게 되었다는 목사님도 가끔 만나게 된다.

모임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개인사를 이야기 하게 되는데, 선교사들의 이야기에는 한국 개신교회의 선교를 어림잡을 만한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나는 이 분들에게 자기 인식을 위한 도구들을 사용해 선교사로 살며 겪고 있는 고충을 그저 개인의 한계나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일어났던 현상들을 조금이나마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다 성경 읽기를 같이 하였으니 한마디로 말씀에 뿌리 내려 그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어떤 환난에도 굴하지 않을 대단한 신앙심을 가진 이 분들임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열렬한 신앙에 도전 받아 나도 이틀간 주님의 말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그림=이금연

비록 짧은 이틀이었지만 무사히 마친 걸 기뻐하며 우리는 국수 한 그릇 먹으러 나갔다 그 음식점에서 이틀 전 도착했다는 부부 선교사들을 만났다. 예수컬리지라는 신학대학의 학장으로부터 음악 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왔다는데 남편은 작곡가요 부인은 복음성가를 부르는 가수라고 했다. 방학기간을 이용해 무조건 주님이 가시라 하여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즉시 이 부부와 동석을 하였고 치킨 모모(만두)를 먹으며 세계 곳곳으로 불림을 받아 다녔던 그들의 음악 선교 경험담을 경청했다.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거리에서 음악 예배를 드리며 노숙자들을 울리고 또 위로 했다는 워싱턴 방문 이야기부터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국제 선교담은 과장됨이 없다면 실로 놀라운 사건들이었다. 성가를 부를 때의 음성은 아름다웠고 얼굴엔 확신으로 빛이 나고 있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디든 악기를 들고 갈 것이라 하는 그들의 언어엔 진솔함이 스며있다.

이번 여름 방학엔 꿈에도 없었던 네팔로 오게 되었다며 학생 기숙사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사명에만 집중하고 충실하자는 다짐을 하는 그들이었다. 히말라야는 고사하고 왕궁 관람이니 시장에 나가는 것도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들에겐 삼 주 후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며 드리게 될 예배가 이미 앞당겨져 있다는 듯 다른 것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복음 성가라 하면 쉬지 않고 부를 수 있다며 우리에게도 들려준 그들의 음악은 우기의 싱그러운 비를 맞아 빛나는 녹색의 풀잎향기 같았다.

네팔 최초이자 유일한 신학 대학이라는 예수컬리지에 종교음악학과가 설치되는 것이 학장의 소원이라 하는데 이 부부 예술가의 헌신적인 봉사로 그 목표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 질 듯 하다. 앞으로 오년간 그들의 꾸준히 목표를 향해 달려 갈 것이라 하니.

신자들 교육에 총력을 기울이는 개신교회, 그 교회의 선교사들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되려고 할 때 확실하게 지원을 해 준다. 이런 개신교회의 명확한 선교 전략은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종교간 갈등이 빚어질 것을 충분히 예상 하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니 신자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힌두 문화에도 절대 동화되지 않는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카트만두에 그리고 네팔 전역에 이백여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말씀 전파밖에는 관심 없다는 듯 혼을 불사르는 그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미지근한 내 신앙생활이 슬쩍 부끄러워진다. 게다가 주님을 알고 싶어 하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한 히모던을 성당으로 초대 했지만 신부님과의 첫 대면은 어색한 만남이 되었고, 교리를 혼자 받아야 한다는 것도 불편하다며 결국 히모던은 개신교회로 가 버렸다. 끝자리 구석에 조용히 앉아 주일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요즈음 성당에서는 활기참이나 자연스런 친교와 같은 단어들이 참으로 낯설다는 걸 절감한다. 누구를 통해서건 주님의 말씀이 곳곳에 선포되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님 어서 오소서!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