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교회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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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교회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 한상봉
  • 승인 2017.07.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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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강의: 그리스도교 여성사-2

제자공동체는 가부장적 교계제도 아니다

유대계 그리스도교 패러다임에 따른 원교회는 민주적인 ‘자유와 평등과 형제자매애의 공동체’였다. 지배제도나 거대한 종교재판소가 아니라 ‘자유인의 공동체’였고, 계급, 인종, 신분, 관청교회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평등한 공동체’였으며, 가부장적으로 통제되는 개인숭배 제국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공동체’였다.

루카에 따르면 “한 마음 한 뜻”이었던 예루살렘 원공동체는 다양한 직책, 분화된 기능, 일시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 일시적 구조에는 아람어를 사용하던 ‘열두 사도 동아리’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일곱 봉사자(부제) 동아리’가 있었다.

부활의 첫 증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공동체를 창설하고 지도한 사람들은 모두 ‘사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운데는 남자예언자들과 나란히 여자예언자들도 있었다. 사도행전은 하가보스, 유다, 실라와 더불어 필리포스의 네 딸을 분명히 예언자로 지칭하고 있다. 한편 교회 직무와 관련해서 비종교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는데, 식탁봉사를 포함한 ‘디아코니아’(diakonia)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제자들의 식탁시중을 들었던 예수를 본보기 삼아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따라 살았다.

 

초대 교회의 여성 사도와 예언자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 안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성령의 은사를 ‘카리스마’(charisma)라고 부른다. 바오로 서간 어디에도 아직 성직주의나 열광주의를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공동체 건설을 위해 수고하는 봉사 하나하나가 다 카리스마요 교회의 직무였다. 각각의 봉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랑으로 행해진다면, 고유한 권위를 가졌다. 여기서 그 유명한 ‘세례예식문’이라 불리는 갈라티아 교회에 보낸 바오로의 편지가 등장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7-28)

로마서 말미의 인사말만 보아도, 여기서 거명된 빼어난 인물 29명 가운데 10명이 여자다. 첫 자리에 포이베가 나오는데, 그녀는 켕크레애 교회의 공식적 선교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꾼”(diakonos, 부제)으로 불리는데, 아마 교회를 이끌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를 “사도들 가운데 출중”하다고 말한다. 유니아는 몇 안 되는 선도적인 선교사 동아리에 속해 있었으며, 바오로도 나중에야 이 동아리에 속하게 된다.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로마 16,7)

바오로 사도는 이들을 “복음을 위해 애를 많이 쓴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에우오디아와 신티케 같은 여인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해 투쟁했다”고 전한다. 프리스카는 남편 아퀼라와 더불어 에페소에서 교회건설자로 활동했다. 한편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1코린 11,5)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미 교회 안에서 여성예언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성 지위를 둘러싼 갈등

실제 다인종 코린토 교회에서는 여성 예언자들 때문에 갈등이 발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바오로에게 공동체의 분쟁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썼다. 바오로는 조언을 하면서 한편에선 여성의 설교할 권리는 인정했지만, 너울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초기 유다교의 논법을 빌려와 그리스도론을 강화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1코린 11,3)

14장에서는 아예 여성의 침묵과 순종을 요구한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 말하듯이 여자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14,33-35)

이 구절은 너무나 공격적이라서 학자들은 바오로의 친필이 아니라 후대에 본문에 삽입된 내용으로 본다. 이걸 보면 이 당시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막강했던 모양이다. 일단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교회 안에서는 어떤 말도 할 권리가 없고, 사실상 배우려 하지도 마라는 것이다. 굳이 배우고 싶으면 ‘남편에게’ 그것도 ‘집’에서 물어보라고 권고한다. 이 요구는 다급한 나머지,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문제 삼았던 ‘율법’에서 여성은 순종하라는 근거를 찾는다.

신약성경의 최종 정경은 가부장적 혼인, 남편의 주도권과 아내의 복종 또는 종속을 그리스도교 ‘사회규범’ 겸 ‘가정규범’으로 설정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여성은 이등 신자로 여겨지며, 특히 사목서간(디모테오1,2서, 티토서)은 하와를 지목하며 여성이 온갖 죄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고 비방한다.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얌전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단장하기를 바랍니다. 높이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고백하는 여자답게 선행으로 치장하십시오. 여자는 조용히 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로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빚어졌고 그다음에 하와가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넘어가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아가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1티모 2,8-15)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훈련시켜,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살림을 잘하고 어질고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티토 2,3-5)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서는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라고 권고하며, “예컨대 사라도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순종하였다”(1베드 3,6)고 전한다.

바오로가 갈라티아서에서 강조한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일치는 언제 어디서나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했으며, 막달라 마리아 등의 사도성도 점점 희미해졌다. 비교적 민주적인 카리스마 중심의 교회가 제도화 과정을 밟으면서 점차 가부장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와 외경에 나타난 여성 리더십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는 “잘 조직된 교회는 로마제국의 지배질서에 적응하도록 이끌었다. 정통 교부들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도력은 물론 여성의 공적 발언과 저술 활동을 방해했다”고 말한다. 성경작품으로만 본다면, 예수의 의도와 상관없이 교회가 제도화 과정을 밟으면서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아무런 반대 없이 성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외경과 영지주의 작품들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메리 T. 말로운의 <여성과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지식이 구원의 열쇠라는 종교체계”이다. 이들은 물질과 정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원론을 주장하지만, 영이 충만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말하고 가르치도록 허락할 만큼 평등주의를 강조했다. 초기에 영지주의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당시에는 경쟁하는 종교전통이 많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으나, 영지주의가 ‘참사람’으로 고백하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를 ‘순전히 영적 존재’로만 보려고 함으로써 가장 위험한 적대적 경쟁관계에 돌입했다.

영지주의 사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타락과 구원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천상의 순수함에서 지상의 물질까지 영혼이 차례로 추락하는 것을 ‘타락’이라고 보았고, 물질과 육체에서 본래 순수한 영적 상태로 차례로 귀환하는 것을 ‘구원’으로 여겼다. 영지주의는 남성적 영혼과 여성적 영혼, 신성의 남성적 측면과 여성적 측면을 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던 여성들은 영지주의에 매료되었다.

한편 영지주의는 물질과 영혼에 대한 이원론적 태도 때문에 신자들에게 육체를 희생하고 영혼 안에 살도록 참회와 금욕주의를 강조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반육체적인 내세의 삶을 영적 삶과 연결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본질상 그리스도교보다 영지주의에 가깝다.

한편 외경은 전통적인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본뜬 복음서와 행전들이다. 외경은 전통적인 복음서에 빠져있는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의 일대기가 나온다. 대부분이 전설같은 이야기인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어서, 마리아의 부모와 동방박사의 이름은 외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듬뿍 받은 <야고보원복음서>는 마리아가 육체적 동정성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태어난 마리아가 6개월 되고서 일곱 발짝을 걷고 나자, 어머니 안나는 그를 들어 올려 다시는 마리아의 발이 땅에 닿지 않게 하리라는 맹세를 한다.

12살 때 여성성이 드러나는 사춘기가 되자 사제회의가 소집되어 홀아비였던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간다. 그 후 마리아는 동정인 채로 예수를 출산하지만, 예수를 낳기 전, 낳을 때, 낳은 후에도 육체적 동정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나중에 ‘평생 동정녀 마리아’라는 교리로 가톨릭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참 역설적이다.

<테클라 행전>에서는, 테클라가 자신에게 세례 주기를 바오로 사도가 거절하자, 직접 자신이 자기에게 세례를 주는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더 중요한 것은 <마리아막달레나복음서>인데, 여기서는 마리아의 지도력을 묘사했다는 정치적 이유로 이단시 되었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지상을 떠난 뒤에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임무를 막달라 마리아가 맡았다고 전한다. 그녀는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격려하였는데, 예수가 우리 내면의 참된 영적 본성을 발견하게 하여 ‘참인간’으로 만든다고 설교했다. 베드로는 마리아에게 제자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데,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이 듣지 못한 예수의 가르침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특출한 이해력을 지녀서 예수가 특별히 사랑했다고 이 복음서는 전한다.
 

[참고서적]
<그리스도교 여성사>, 한스 큉, 분도, 2011
<여성과 그리스도교>, 메리 T, 말로운, 바오로딸, 2008
<교황의 죄>, 게리 윌스, 중심, 2005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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