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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여성은 내 친구"가톨릭일꾼 강의: 그리스도교 여성사-1

“하느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은 하느님이다.”(메리 데일리)

메리 T. 말로운은 <여성과 그리스도교>(바오로딸, 2008)에서 여성들은 오랜 시간 그리스도교 안에 존재해 왔고, 칭송과 영광을 받았으며, 영감을 주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여성은 또한 언제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억압과 배척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칭송받는 여성들은 ‘동정녀’ 마리아처럼 독신인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교회 안에 짙게 드리워진 ‘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회정서의 병리적 현상을 낳은 것이다.

교황 레오 9세를 도와 새로운 성직자 상을 주장했던 11세기 성 베드로 다미아노는 사제 독신제를 주장하면서 사제의 아내들에게 이렇게 지독한 험담으로 비난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오, 사제의 유혹자들이여, 탐스러운 악마의 육체여, 천국에서 버림받은 이, 정신의 독약. 영혼의 죽음, 죄를 만들어내는 동반자, 파멸의 원인이여! 보시오, 내가 당신네 여성들에게 권고합니다. 오래된 적의 여인, 마녀, 암컷, 가면 올빼미, 밤을 사랑하는 이, 흡혈귀, 암여우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창부와 매춘부들이여, 음탕한 키스로 돼지우리를 뒹굴고 있는, 더러운 영혼들의 휴식처인 그대들이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9월 10일 교황 비오 12세는 신혼부부들에게 연설하면서, 하느님은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창조하셨고, 성 바오로가 말했듯이 세례 안에서 남녀가 평등하며 자유롭게 혼인하였으나, “가시적인 교회와 사회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선언했다.

agnolo di cosimo | Bronzino, Agnolo di Cosimo

그러나 복음서와 초기 바오로는 여성도 남성도 똑같이 제자요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알려준다. 더군다나 여성은 신앙과 용기를 지닌 제자의 모범으로 거듭 제시되며, 여성의 충실이 남성 제자들의 불충실과 대조된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이 설 자리는 복음서에서 빈약해 보인다.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여성들의 역사가 기록된 듯하다.

사실상 지난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역사, 신학, 전례, 교의언어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교회 역사에서도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모든 교황, 주교, 황제, 교사는 여성과 관계 맺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은 어머니요 생명을 주는 사람으로서 부인, 연인, 조언자, 교사, 친구였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독신 남성 지도자의 정체성은 그들의 공적 삶을 가능케 한, ‘보이지 않게’ 침묵하는 여성들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교회 역사에서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남성 그리스도인과 다른 길을 걸어간 것은 하느님이 정한 본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특정사회, 문화, 교회가 선택한 결과였다.

한스 큉은 <그리스도교 여성사>(분도, 2011)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이신 예수 친히 여성은 누구나 ‘사도’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늘날까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여성들이 지도적 역할을 맡거나 ‘사제’(주교는 말할 것도 없다)로 서품될 수 없는 근본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시대와 초기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원역사 안에서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신앙공동체(교회)의 주인공이었다.

원역사의 성격을 한스 큉은 다음 세 가지로 전한다. 예수의 제자단의 역사는 로마인도 그리스인도 아니고 ‘토박이 유대인’들의 역사였다. 그들은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아무도 기록해 주지 않는 하층계급 사람들(어부, 농부, 장인, 영세민 등)의 역사였다. 이 첫 세대들은 최소한의 정치적 세력도 지니지 못했으나, 기존의 정치적 종교적 체제 안에서 번듯한 입지를 애써 얻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보잘 것 없고 힘없고 괴롭힘 당하고 의심받던 변두리 집단이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예수운동이 남성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여성도 제자로 부른 예수의 행동은 기존 가부장적 구조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제자단, 혈연관계와 성별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나자렛 예수 당시는 다른 문화권이 그러하듯이 여성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성은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삼가는 게 좋다고 여겼으며, 성전에서도 여자들은 ‘여자들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기도 의무에서도 노예들과 동급이었다. 기도도 남성의 몫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런 관습에서 벗어나 있었다. 여성들을 멸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했으며, 여성들은 남성 제자들과 더불어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동반했다. 이들 중에는 이름이 알려진 요안나와 수산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맨 앞에 설만한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많은 다른 여인’들이 있었다. 가진 것도 정해진 거처도 없었던 예수와 일행들은 마르타와 마리아처럼 호의적인 여성과 가정들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받았다.

예수가 종말에 열 두 지파로 이루어진 백성을 대표할 열두 제자단에 남자들만 선택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열둘이 처음부터 ‘사도’로 불렸던 것은 아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고 파견된 사람들인 ‘사도’는 더 큰 집단이었으며, 예수 사후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루카가 처음으로 ‘열둘’을 ‘사도’와 동일시 하였다. 사실상 여성 제자들은 스승이 죽는 순간까지 신의를 지켜 십자가 아래 있었으며, 매장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열두 남성제자들은 벌써 줄행랑을 쳤고, 그 중 한 명은 스승을 밀고하고, 한 명은 스승을 배반하기도 했다.

예수의 제자 공동체는 ‘하느님의 가족’일 텐데,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불렀으며, 혈연관계와 성별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메리 T. 말로운은 <여성과 그리스도교>에서,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냐?”는 예수의 말을 소개하며, “복음서는 생물학적 가족을 경시하는 한편, 제자직 관계는 계속 들어 높인다. 심지어 예수의 어머니조차 ‘하느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 받는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생리학적 성별 역시 제자됨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예수는 오히려 제자가 되기 위해 버려야할 것에 ‘아버지’를 포함시키지만, 다시 받을 보상 목록에서는 ‘아버지’를 제외시켰다. 덧붙인다면, 하느님 빼고는 누구에게도 아예 ‘아버지’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성모 마리아의 경우에도, 복음서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후대에 교회가 정형화시킨 순종하고 은거하는 모습이 아니다. 루카는 메시아가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려고 오신다는 말을 일부러 마리아의 노래에 담았다. 이를 두고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렇게 선언했다.

“현대여성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면서도 결코 수동적으로 순명만 하거나 배타적인 믿음을 지닌 여인이 아니라며 하느님은 비천하고 억눌린 이들을 돌보시며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는 분이라고 천명한 여인임을 놀라운 기쁨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마리아공경 Marialis Cultus, 37항)

아울러 교회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였고, 예수 자신은 비록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독신’을 당신을 추종하기 위한 조건으로 내밀지도 않았다. 히브리성경에는 어디에도 독신을 찬양하는 구절이 없으며, 사도들 역시 기혼이었고, 예수를 따르면서도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바오로 사도는 자신은 예외라 했다)

예수가 하느님을 정겹게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빠”라고 불렀지만, 그게 하느님이 남성임을 강조하려던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여성적, 모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인간과 성을 초월하는 하느님 실재의 가부장적 상징이며, 사실 하느님은 여성적, 모성적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Lucas Cranach the Elder - Christ and the Adulteress, 1532

예수운동과 여성

독일계 미국인 신약성서 학자인 엘리자베스 피오렌자에 따르면, 예수운동에서 남녀 제자들은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하고 참여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유재산과 높은 사회 문화적 지위를 거부하는 선택을 했던 견유학파 철학자처럼 부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가난하고 굶주리고 고달픈 삶의 짐을 진 시골 민중들 가운데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었다. 세리, 죄인, 여자, 어린아이, 어부, 주부들이었으며, 질병에서 치유되고 악령들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제공했던 것은 대안적 생활양식이 아니라, 대안적 윤리였다. 그들은 멋진 미래는 몰랐지만, 뭐라 해도 새로운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었다. 내쳐지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뭐라 해도 새로운 친교(공동체)를 선사받아 누리고 있었다.”

예수운동에서 가부장제도에 대한 비판이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었지만, 피오렌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았다. 모두가 초대받았다. 남자들과 똑같이 여자들도, 바리사이들과 마찬가지로 창녀들도 부름 받았다”며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에 대해 설명했다. “예수의 주된 이상은 선별된 사람들의 거룩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는 비유 속의 상징들을 주로 여자들의 세계에서 빌려왔으며, 치유와 구마행위는 여자들을 온전히 고쳐주었다. “꼴찌가 첫째가 된다”는 종말론적 반전 역시 여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뿐 아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들이 전해주었다고 마르코복음은 밝힌다.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르코복음의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 이야기다. 다른 복음서들이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지만, 그녀는 죄인이 아니라 그저 ‘어떤 여자’라고 되어 있으며, 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예수의 발을 닦지도 않았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였을 그녀에 대해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9)

마르코복음에선 이 장면에 곧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유다의 배반 이야기를 다룬다. 마르코는 예수를 극진하게 대접한 여성 이야기를 남성 제자들의 불신과 일부러 대조시킨다. 여기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왕직을 나타내는 고대 성경 전통으로, 사무엘처럼 중요한 지위에 있는 종교인이 행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 곧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두번 째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약간 비약을 하자면, 이 여인은 이 순간 즉석 사제가 되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드러낸 것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마르코복음에선 이 여자의 행위를 두고 “몇 사람이 불쾌해 하며”(14,4) 라고 되어 있지만, 루카복음에 오면 그들을 “제자”라고 명시함으로써 이 여자가 제자가 아님을 은연중 알리고 있다. 제자가 아닐 뿐 아니라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7,37) 라고 알린다. 이는 전통적 여성상, 곧 하와의 딸로서 죄 많은 본성을 알고 있는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에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참고서적]
<그리스도교 여성사>, 한스 큉, 분도, 2011
<여성과 그리스도교>, 메리 T, 말로운, 바오로딸, 2008
<교황의 죄>, 게리 윌스, 중심, 2005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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