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당신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이 되도록 허용하라
상태바
[헨리 나웬] 당신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이 되도록 허용하라
  • 헨리 나웬
  • 승인 2017.07.03 1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당신의 고통은 깊고 어떤 특정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당신은 추상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괴로워한다.

거부, 버림받음 그리고 쓸모 없음의 감정들이 가장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 뿌리박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고통은 고유하다. 특히 예수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다. 제자들이 그분을 버렸고, 빌라도는 단죄했으며 로마 군인들은 그분을 고문하고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러나 당신이 이런 특정성을 계속 지적하고 있는 한, 당신은 당신 고통의 온전한 의미를 놓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만일 사람들, 상황들, 그리고 사건들이 달랐다면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기만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부분적으로 사실이지만, 당신은 당신에게 고통을 가져온 상황 속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고통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고통에 관한 더 깊은 진실이다. 즉 당신이 체험하는 고통은 모든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는 고유하고도 구체적인 방식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치유는 당신의 고통에서 인간의 고통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고통의 특정한 상황에 계속 초점을 맞추면, 당신은 쉽사리 분노하고 회한을 느끼고 심지어 복수까지 생각하게 된다. 당신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고통의 외부적인 것에 대해 무엇인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자꾸 복수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치유는 당신자신의 특정한 고통이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될 때에 일어난다.

그러한 깨우침은 당신이 적들을 용서하고 참다운 연민의 삶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한다. 그것이 십자가에서도 기도했던 예수의 길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예수의 고통은 구체적이면서도 모든 인류의 고통이다. 그분의 고통은 바로 고통 그 자체이다.

당신에게 고통을 유발시킨 외적인 상황으로부터 관심을 옮길 때마다 그리고 다른 이의 고통에 참여하는 집중하는 만큼, 당신의 고통은 견디기가 조금씩 더 수월해진다. 그것은 “가벼운 짐”이 되고 ‘쉬운 멍에“(마태오 11,30)가 된다. 굶주린 이들, 집 없는 이들, 죄인들, 피난민들, 병든 이들, 죽어 가는 사람들과 당신이 연대하여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만 하면, 당신의 매우 개인적인 고통은 인간의 고통으로 변화되고 당신은 그 고통을 살아갈 만한 새로운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놓여 있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에서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