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잔 다르크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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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잔 다르크를 죽였는가?
  • 유대칠
  • 승인 2017.06.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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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한 지식이여! 부디 착해지자"

[유대칠: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9]

흔히 많은 ‘지식’과 ‘도덕성’을 비례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많은 지식이 꼭 도덕성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편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이용하고 파괴해 왔다. 법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진 법조인들은 그 법에 대한 지식으로 힘든 이를 도울 수 있지만, 너무나 쉽게 남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말이다.

아는 게 죄인 사람들

영화 <변호인>의 한 청년은 억울하게 죄인이 되었다. 그의 억울함 앞에 고졸의 한 변호인은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이미 정해진 결론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억울하게 한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 불행히도 이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우리의 지난 시간이었다.

억울하게 죄인으로 산 이가 적지 않다. 사형을 당한 이도 있다.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1975년 4월 9일. ‘인혁당사건’으로 억울하게 죄인이 된 이들의 사형이 있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 억울한 날을 기억하며 국제법학자회는 그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였다.

요즘 ‘법꾸라지’라는 말이 나돈다. 이 한마디는 법에 대한 지식이 도덕성과 비례하지 않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 저리 미꾸라지처럼 법을 피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한다. 자신들의 그 대단한 법에 대한 지식의 덕으로 말이다. 필요하다면, 남의 인생을 파괴하면서 말이다. 교회는 이와 다를까? 신에 대한 지식은 또 어떠할까? 종교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다. 신 혹은 신학에 대한 많은 지식이 도덕성과 비례하진 않았다.

Joan of arc by Jules-Eugene Lenepveu 1879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화형당한 잔 다르크

잔 다르크가 생각난다. 19살에 죽었다. 왜 죽어야했을까? 분명 재판을 받았다. 그 재판엔 ‘주교’라는 이가 중심에서 있었다. 그리고 당시 신학계의 중심지인 파리대학의 신학자들이 가득 참여했었다. 신학에 대해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이 안다는 이들이 이렇게 재판에 가득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성녀 잔 다르크를 죽이는데 앞장섰다. 그들의 손에 의하여 지금 우리에겐 성녀인 잔 다르크는 마녀란 이름으로 군중 앞에서 외롭게 불에 타 죽었다. 마녀의 모습으로 말이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6세는 프랑스 왕위를 욕심냈다. 하지만 잔 다르크의 활약 속에 샤를 7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것만으로도 헨리 6세에게는 잔 다르크가 없어져야 했다. 그냥 없어지는 것보다 이단아, 즉 마녀가 되어 죽는 것이 그에겐 더 좋았다. 마녀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샤를 7세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헨리 6세에게는 이미 결론이 내려져있었다. 잔 다르크는 마녀다. 그래야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재판을 기획하고 만든 이는 피에르 코숑 주교다. 그는 교회법상 종교재판을 지휘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본을 무시한 재판이었다.

재판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잔 다르크를 마녀로 만들어 죽이는 것이었다. 주교와 파리대학 신학자들의 그 풍부한 신학적 지식은 정의나 의로움이 헨리 6세의 정치권력을 위해 불타기 시작했다. 헨리 6세를 위해 잔 다르크를 죽어야했고, 그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주교와 파리대학 신학부의 임무였다.

그 임무를 위한 교묘한 논리가 필요했다. 그것을 만들어야했다. 죽어야하고 죽어야하는 정당한 논리 말이다. 그 잔인한 논리 말이다. 신학에 대한 그들의 풍부한 지식은 이때 활용된다. 하얀 남성용 전투복을 입고 싸운 그녀의 모습을 두고 이단이라 고집 부렸다. 교회가 정한 여성의 복장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으니 이것은 말 그대로 불복종이다. 불복종하였으니 이것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이렇게 잔 다르크는 이단이 된다. 만일 이 논리가 아니라도 어떤 이유와 논리를 만들어 잔 다르크를 이단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야했다. 이미 그녀의 화형은 정해진 여정이었다. 파리대학은 잔 다르크가 자신들의 뜻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아닌 세속법정에서 남은 재판을 진행해야한다 논의하기 시작했다.

잔 다르크를 공개적으로 화형 시킬 수 있는 권한은 세속재판에 있었다. 결국 세속법정으로 넘겨지고 다음 날인 5월 30일 화형 당한다. 헨리 6세와 파리대학 신학자들은 잔 다르크가 사망하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지 20년 더 지나 다시 조사가 되고 억울한 누명을 벗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성녀다.

사진출처=static.flickr.com

애국과 신앙의 이름으로...

권력과 손잡은 법과 종교는 타인의 아픔은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높은 권력이다. 그 권력의 손아래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가능하다면, 자신도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예수도 누리지 않은 권력, 자신의 기쁨과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괴롭히는 권력, 그러면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권력, 그 권력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자신도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그 권력 속에서 말이다.

잔 다르크는 라틴어로 쓰인 글을 읽지 못했다. 그녀의 지식은 대단하지 못했다. 그녀를 죽인 이들의 지식에 비하면 초라한 지식했다. 그러나 기억해야한다. 많은 지식이 이웃에 대한 사랑, 공동선에 대한 의지와 비례하지 않는다. 잔인하게 죄 없는 이를 죽이면서도 ‘애국’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등을 돌리고 권력자의 비호 속에서 기득권을 생각하며 ‘신앙’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다. 말로는 국가이고 교회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다. 제발 부탁이다. 그런 지식으로 치장하기 전에 부디 착한 지혜를 채우기 바란다. 부디. 간절히 부탁한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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