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카파르나움의 베드로 집터와 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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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카파르나움의 베드로 집터와 회당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6.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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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고고학 - 6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의 하루(마르 1,21-34 병행)를 소개하는 본문은 그의 전형적인 일상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그분 전체 활동의 축소판이다. 예수는 가르치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주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일은 가르침, 구마, 치유였다.

그리고 예수는 카파르나움 세관의 세리를 제자로 부르고(마르 2,14 병행), 그곳에 있던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친다(마태 8,5-13 병행). 요한 6,22-59에서 예수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생명의 빵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로부터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라는 말을 듣는다.

기원후 1세기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제1차 유다 봉기 당시 벳사이다에서 부상당하여 카파르나움에 옮겨진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자신의 자서전인 <생애> 72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유다 전쟁사> 3권 519-520에서 카파르나움에 대하여 서술한다. 이 기록은 당시의 전설을 전하는데, 어떤 갈릴래아 사람들은 카파르나움 샘의 물이 나일 강에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겐네사렛 호수 주위) 이 지역이 이처럼 비옥한 것은 온화한 기후조건 외에도 주민들이 카파르나움이라고 부르는 매우 확실한 수원을 통해 풍부한 물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샘이 나일 강의 지류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알렉산드리아 호수에 서식하는 까마귀 물고기와 유사한 어종이 이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가파르나움의 베드로 집터

고고학자들은 여러 차례의 발굴을 통하여 마르 1,29-31; 2,1 등에서 언급되는 베드로의 집터를 발견하였다. 특히 1920년대와 1968년-1991년의 탐사는 5세기에 세워진 팔각형 성당의 유적지 아래에서 집터를 발견하였다.

이곳은 갈릴래아 지방에 흔히 있는 현무암으로 지어진 가정집의 형태를 가졌다. 사실 예수 당시의 갈릴래아에서는 현무암으로 집을 짓고 지붕은 종려나무 가지 등으로 덮었다(참조 마르 2,1-12). 베드로 집터의 바닥은 회반죽으로 되어 있었고 벽은 2세기 이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쓰여진 베드로 팻말과 어선의 그림도 발견되었다.

3세기-5세기 순례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아람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의 글씨에서 예수님은 “주님”, “그리스도”, “하느님”으로 표현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일찍이 이 집터를 베드로의 집으로 여겼는데, 여기에서 가정용품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기원후 1세기에는 일종의 집-교회(House-Church)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1894년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베드로의 집터 위에 어선 모양의 팔각형 성당을 건축하였다. 현재의 성당은 5세기에 세워졌던 팔각형 성당의 터 위에 지어진 것이다.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된 이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곳에 지어진 현재의 팔각형 성당 중앙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아래의 베드로 집터와 본래의 팔각형 성당 터를 볼 수 있다.

가파르나움에 있는 회당 유적지. 사진=한상봉

베드로의 집터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흰색 석회암로 지어진 회당이 발견되었다. 몇몇 학자들은 이 회당을 기원후 2세기나 심지어 예수 당시의 회당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8년의 고고학 탐사 결과, 회당의 연대는 4세기 혹은 5세기로 추정된다. 회당의 입구는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을 향하여 있고, 남북으로 24m, 동서로는 18m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데 이 회당은 현무암으로 지어진 더 이른 시기의 다른 회당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이 현무암 회당이 바로 예수가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였던 곳이었을 것이다. 사실 루카 7,5에 따르면, 카파르나움의 회당은 백인대장에 의해 세워졌는데 유다인의 원로들은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주었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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