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세상은 그 때 새로운 세상을 잠시 만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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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상은 그 때 새로운 세상을 잠시 만난 것일까?
  • 김유철
  • 승인 2017.06.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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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김유철의 Heaven's door-손바닥소설]

 

손바닥 소설의 시작

나는 요담이라 불린다. 아주 오래전 유다왕으로서 웃시야의 아들이었던 자의 이름도 요담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왕족이 아니라 날품팔이다. 하루하루 인력소개소가 있는 시장 모퉁이에서 하루를 지탱할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다. 어쩌다보니 여인이 몇 명 거쳐 갔고 그 사이에서 자식도 손가락 숫자만큼 나왔다. 지금은 작은 흙집에 기거하며 아내를 포함해 여섯 명이 나를 쳐다보고 살아가고 있다. 모친도 대책 없이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른 아침 일꾼들을 찾는 장터로 갔지만 몇 사람 뽑히지 않고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렸다. 우연히 만난 마을친구 아사랴도 뽑힌 일꾼 대열에 들지 못해 그냥 시장 바닥에 앉아 딱딱한 빵 한 조각으로 서로의 허기진 배를 달랬을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집으로 가도 아내와 싸울 것 같아 그냥 하릴없이 시장에 머물던 날이었다. 웬일인지 몇 사람이 포도밭으로 일을 하러 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것은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올해는 포도밭이 그리 풍년이 들지 않아 수확량이 많은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낮에 일꾼을 데려가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 이름을 그 날 그가 불렀다

시장도 모두 파하고 거리에 사람도 없는 한산한 시간이었던 오후 다섯 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의 한 남자가 하인 한 사람을 데리고 시장 통에 들어서서 그 때까지 같이 있던 아샤라와 나를 쳐다보더니 “요담과 아샤라,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사실 그가 아샤라와 나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암튼 내 이름을 그 날 그가 불렀다. 당황한 나는 그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는 “두 사람 모두 나의 포도밭으로 가시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시간에?’라고 어리둥절하면서 그의 하인을 따라 갔다.

그가 말한 포도밭은 다른 대농장에 비하면 넓지도 크지도 않았지만 알이 가득한 포도들이 나무마다 가득했다. 제법 많은 일꾼들이 땀 흘려 일하고 있는 사이로 나와 아샤라도 들어가서 일을 했다. 밭에서 일을 하는 동안 포도 몇 알을 입에 넣었다. 물론 주인의 하인이 안 보는 자리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일꾼이 일을 하는 동안 수확한 농산물을 먹다가 들키면 쫓겨나기 십상이거나 그 날치 품삯을 받지 못했다. 몰래 먹은 포도는 달았고 한 끼밖에 안 먹은 뱃가죽과 등가죽을 분리시켰다.

Helena Cherkasova (b1962, Moscow, Russia)

한 데나리온을 받다

저녁이 되고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이 오면 그것으로 그 날의 노동은 끝난다. 여기저기서 일꾼들이 몰려나와 길게 줄을 섰다. 품삯을 받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니,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한 사람과 한두 시간 일한 사람에게 어떻게 같은 품삯을 주는 거요?” 누군가가 큰소리로 항의하는 듯했다. 나와 아샤라 차례가 되자 아까 시장 통에서 나를 부른 그가 보였다. 그의 옆에 있던 하인이 나의 손에 한 데나리온을 쥐어주었다. 아니 한 데나리온이라니!

두 시간 남짓 일한 내가 받은 한 데나리온은 일한 양에 비해 훨씬 후한 값이어서 감동을 하는 동안 그의 말이 들렸다. 아마도 조금 전 항의한 사내에게 하는 듯 싶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순간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누구지 저 사람은?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포도밭 주인이었다. 누구지 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샤라가 말했다. 언젠가 큰 호숫가에서 어부들에게 고용되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포도밭 주인을 그곳에서 본 듯했다고 말했다. 아샤라는 호숫가에서 그물 당기는 일을 했는데 새벽녘에 물고기가 엄청 잡히던 날 어부와 이야기 하던 사람의 말투와 아까 그 포도밭 주인의 말투가 분명히 닮았다는 말을 했다. 사실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억양은 낯설었지만 낮고 깊었다. 도대체 누구지 저 사람은? 다시 의문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데나리온의 돈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곧 그 돈을 작은 돈으로 바꾸어 와서는 어디선가 기름과 수수가루를 구해왔다. 모친까지 여섯식구가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어디서 일을 하나? 라는 생각이 음식을 먹는 목구멍으로 함께 넘어갔다. 이내 음식은 소화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일 이른 시간에 아까 그 포도밭을 다시 갈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금세 기분이 밝아졌다. 왠지 그 포도밭 주인이 내일도 써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품삯을 받은 일꾼들이 돌아가는 뒤로 그 주인은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것이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위로가 되는 말처럼 들려와 그냥 우쭐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샤라가 먼저 갈지 모르니 동이 트는 대로 포도밭에 가기로 나는 작정했다. 자리에 눕자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도 써본지 오래된 요담이란 이름을.

하늘은 늘 무심했다

사마리아 출신인 모친은 오래전 홀몸이 된 분이었다. 이방인 여인의 몸으로 몇 명의 자식을 유다인들 사이에서 기르는 동안 모친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몸은 쇠약해져 갔다. 모아두었던 약소한 재산마저 모친의 몸이 모두 삼켰다. 의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돈만 받고서 효험 없는 약만 처방해줬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에집트에서 벽돌을 만드는 동안 모친은 혼자서 큰 호숫가에 살았다. 병든 모친을 데리고 에집트까지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두 해를 그렇게 지냈다. 이방인의 나라에서 일을 하며 약간의 목돈을 만들어 돌아와 보니 모친은 이전과 달리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모친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하혈이 멈추었고 스스로 거친 텃밭이지만 농사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

나와 가족이 에집트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던 지역으로 예언자가 온다는 소문을 모친은 들었다. 그 예언자는 랍비도, 대사제도, 원로도 아니었지만 그는 여러 기적을 행했고, 그의 말만 들어도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는 소문이었다. 그 예언자가 호숫가로 오던 날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작은 고을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모친은 그 예언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사실 군중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것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한 심정이었을 거다. 어쩌면 그것은 한 번도 소리내어보지 못한 벙어리가 소리라도 내어서 울어보고 싶은 이신전심이라고 해야 옳다. 사실 하늘은 늘 무심했다.

모친이 기억하는 그 음성

누가 예언자인지도 뚜렷이 모른 채 더듬거리듯 한 사내의 등을 만졌을 때 모친은 섬뜩했다. 무언가 다른 느낌, 평생 처음 느껴보는 뜨겁고 동시에 서늘한 그 느낌을 모친은 오래도록 말하고 싶어 했다. 물론 모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모친은 때때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그 느낌을 나와 아내에게 전했다. “그 분은 메시아였다. 그 분은 나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높임말로 나에게 말했어”라고. 그리고 그 날 그 예언자가 했다는 말을 모친은 외우다시피 했다. 모친이나 나나 모두 까막눈이라 글로 적어둘 수는 없었지만 오래도록 기억했던 말이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습니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십시오.” 모친은 그 예언자의 말보다 이방인 과부의 몸으로 유다인 남자에게 손을 댔다는 것을 군중들이나, 자신을 알아보는 이웃들에게 알려지면 자신에게 쏟아질 손가락질이 두려워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모친의 그 고약한 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로 다시는 하혈하지 않았고 다른 의원을 찾지도 않았다. 물론 모친은 그 예언자의 이름도 여직 알지 못했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들내외에게만 말했을 뿐이다.

그 날도 첫 날처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무지렁이 날품팔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지만 로마총독이나 병사들보다 유다인 사제들이나 율법학자, 최고의회의 정치인들이 더 민중들에게는 눈에 가시임을 마을 주민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젊은 예언자를 사이에 두고 고발이 난무하더니 결국 그가 죽고 나자 예루살렘은 어쩐 일인지 활기를 잃어가고 사람들의 일거리가 더 없어졌다. 마을친구 아샤라와 함께 일거리가 있다는 엠마오로 가려고 짐을 꾸렸다. 나를 뺀 여섯 식구가 먹고 살 식량은 형에게 부탁했다.

한나절을 걸어가던 그 길에서 통솔로 짠 옷을 입은 한 사내를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 같기도 했고, 본 듯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도 일거리를 찾아가는 품팔이로 보였다. 엠마오로 가는 동안 날이 저물었고 세 명이 한 여관방에 들었다. 일자리를 찾아가는 지치고 허기진 일행들에게 반갑게도 방안에는 불이 지펴져 있었고 식탁위에 빵이 놓여 있었다. 사내는 빵을 들고 말했다. “요담과 아샤라, 이리 와서 빵을 드시오.” 아! 그 분이었다. 분명 그의 음성이 분명했다. 두어 시간 포도밭 일을 하고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하던 그 포도밭 주인의 음성이었다. 그 날도 첫 날처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그 사내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날품팔이며 여섯 식구의 가장이었던 요담과 그의 친구 아샤라도 모두 떠났다. 잊고 있었던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 사람의 믿음이 하늘을 움직였다고 말하던 사람, 이방인과 선택된 이들을 구별 없이 대하던 사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하늘을 일컬어 ‘아빠’라고 부르며 찾았던 사람. 낡은 세상은 그 때 새로운 세상을 잠시 만난 것일까?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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