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이렇게" -70년대 태어난 선배가 90년대 태어난 후배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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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이렇게" -70년대 태어난 선배가 90년대 태어난 후배 분들에게
  • 유형선
  • 승인 2017.06.0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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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지난 5월 말, 대학교 축제 기간에 졸업한 선배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몇 년 만에 모교를 찾아 보았고 여러 선배님들과 동기들과 후배 분들을 만나는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대학교 새내기였을 때 70년대에 대학을 다니셨던 선배님들 뵙던 때가 불과 엊그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여러분들보다 20여 년 전에 대학 다니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함께 소주잔을 나누는 기쁨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난 4월에 동아리 방에 들렀던 동기 친구에게서 후배 분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취업도 어렵고 공부하기도 어려운 시기에 밥 벌어먹고 사는 일과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일로 취급되는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사실 ‘성경공부 해볼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요, 성서 공부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기는 겸연쩍으니 ‘성경공부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모임에서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여준 성경공부에 대한 열망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부끄러웠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천주교인으로 살아왔지만, 과연 성경을 ‘공부’ 해본 적이 있었던지, ‘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지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제 동기에게 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용어가 무엇인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보았다고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한 없이 고마웠습니다. 이런 후배 분들이 동아리 방에 모여 마태오 복음을 함께 읽으며 묵상을 나누는 모습을 눈에 그려보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몇 명의 선배들이 뜻을 모아 책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서술한 책을 찾았습니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 시리즈 중에서 <구약 성서, 마르지 않는 삶의 지혜>(구미정 지음), <신약성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한다>(박경미 지음) 두 권을 골랐습니다. 각각 5권씩 총 10권의 책을 동아리 방으로 보냅니다. 부디 성경의 맛과 멋에 흠뻑 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두어 단락씩 읽고 묵상하고 기억에 남는 구절을 함께 나누는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아마도 후배 분들이 진행하는 성경 나눔 방법이 비슷하리라 짐작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남성구역모임에서 이런 방법으로 성경 나눔을 진행합니다. 이런 성경묵상과 나눔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잊지 않는 체험을 습관화 시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며 바른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다만 이런 성경 나눔 방식에는 늘 아쉬움이 뒤따릅니다. 성경이 쓰인 시점이 워낙 옛날이어서 과거 시대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늘 존재합니다. 누군가 전문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신 분이 옆에 있지 않는다면 성경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문가와 함께 공부한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최근에서야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일꾼 금요강좌를 이끌고 계시는 한상봉 선생님을 만나 강의도 듣고 책들을 읽어나가며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막 배우는 단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처음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 어떻게 읽을까?

우선 성경를 읽는 목적을 분명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성경을 읽습니다. 현실의 상황에서 하느님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과거의 하느님을 찾아보는 행위가 성경읽기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추구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다. 그것은 오늘날 백성의 물음에 하느님이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과거 하느님이 여러 상황에서 당신 백성의 물음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 머리말 중에서)

요컨대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선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의 현실에서 무엇을 하느님에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질문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선 ‘공부하는 눈’을 기르는 방법부터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경과 관련한 좋은 강의와 좋은 책 읽기를 추천합니다. 가톨릭 영역의 성서 공부만을 고집할 이유도 사실 딱히 없습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성경은 동일합니다. 평화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성서 공부 관련 인터넷 강의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평화방송 인터넷 강의들은 스마트폰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출퇴근길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성서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유튜브 앱을 활용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CBS 백소영 교수의 성경사랑방](구약성경), [구미정 교수의 성서학당](마가복음)을 적극 추천합니다. 유튜브 검색에서 ‘백소영’, ‘구미정’을 검색하면 됩니다.

이번에 선배들이 뜻을 모아 보내는 사계절 주니어 클래식 시리즈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완독한다면 기본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흐름이 잡힐 것입니다. 분량도 일부러 만만한 책을 골랐습니다. 손에 들고 다니면서 읽는다면 며칠 사이에 금새 읽어버릴 분량입니다. 두 권을 모두 읽은 후에, 조금 두툼해도 좋으니 구약과 신약의 깊은 내용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다면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님의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21세기 북스)을 추천합니다. 각 각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해설한 책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특히 후배 분들이 동아리 방에서 성서 나눔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책을 추천하겠습니다. 성서 해설의 양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구약과 신약을 모두 아우르는 해설책으로서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국제가톨릭성서공회 편찬, 일과놀이)를 추천합니다. 공동번역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공동번역 원문을 적고 아랫단에 성서구절의 해설을 싣고 있습니다. 마침 최근에 중고책방에 들렀다가 한 권 눈에 띄기에 구입했습니다. 동아리 방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요즘 마태오복음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성경 본문을 돌려가며 읽은 후에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 해당하는 해설을 돌려가며 읽으면 성경을 한층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공부하는 눈’을 기르는 입문자 방법을 몇 가지 설명해 보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질문하는 눈’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가 남았군요.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은 ‘예수님은 왕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나의 삶의 모델로서 예수님의 삶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사람인지 성서에서 확인하면서 지금의 우리 세상을 본다면 ‘질문하는 눈’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요즘 읽고 있는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1,1)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야훼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창세기 18:19)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세상에 ‘옳고 바른 일’을 행하는 삶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 즉 예수님도 ‘옳고 바른 일’을 세상에 알리시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4:17)

예수님께서 외치셨던 ‘하늘 나라’는 ‘옳고 바른’ 나라입니다. 공동번역성서 해설판에서도 마태오 복음 서언에서 예수님을 “정의의 스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마태오는 정의를 실현하려고 오신 스승으로서 예수를 제시한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마태오 복음서의 그 나머지 부분은 예수께서 당신 말씀과 활동을 통하여 그 같은 정의를 실천하도록 그리스도신자 공동체를 교육하심을, 즉 하느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 방법을 가르치심을 보여 준다.

마태오 복음서를 읽다 보면,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는 정의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시는 예수의 현존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기 안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초대받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공동체는 확실한 말을 하는 법을 배울 것이며, 자기네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에 맞는 활동을 펼치게 될 것이다.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 마태오 복음 서언 중에서)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듯, 정의로운 나라에서 이미 살고 있는 신앙인으로 가슴 활짝 펴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성령강림 대축일 밤에 썼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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