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에 대적하는 선교사, 보니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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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에 대적하는 선교사, 보니페이스
  • 로버트 엘스버그, 임선영 역
  • 승인 2017.06.0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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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St. Boniface, 675-754, 선교자, 순교자
사진출처=jesus-passion.com

"오늘이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갈망해왔던 자유의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용감해지십시오.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거룩한 영광으로 고통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느님 안에서 믿음을 지킨다면 주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보니페이스 성인은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이다. 영국에서 수도자로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40살 무렵 갑자기 선교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다른 아일랜드 수도자들은 선교사란 순례를 통한 금욕적 훈련으로 여겼으나 보니페이스의 기본적 관심은 복음 전파였다.

그는 앵글로 색슨족 출신이였기에 가족에게 돌아가 색슨족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려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당시 색슨족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았다. 첫 번째 선교를 위해 대륙으로 건너가 네덜란드 지역 비신자들에게 설교를 하였으며 이후 교황 그레고리 2세에게 자신의 선교에 대한 뜻을 알리고자 로마까지 여행하였다. 교황은 보니페이스 성인에게 독일로 돌아가 "아직도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진리를 전하고 하느님의 왕국의 기쁨을 알리라"고 하였다.

보니페이스는 독일 헤센 주와 튀링겐 주를 여행하며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얼마 후 영국으로 편지를 써 "영국인들과 한 핏줄인"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리스도교를 최대한 지역 문화에 맞추고자 노력하였지만 우상숭배에는 단호히 대처하였다. 특히, 당시 독일에 유행하던 민속 신앙인 나무 숭배에 반대하였다. 723년 천둥의 신 토르에게 바친 나무를 도끼로 자른 사건은 유명하다. 그의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보니페이스의 의도는 분명했다. 이유 없는 폭력행위가 아니라 누가 더 강력한 하느님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경쟁 행위였다. 구경꾼들은 겁에 질려 불경한 행동의 대가로 벼락에 맞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니페이스 성인은 무사했기에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회개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니페이스 성인은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마인즈 지방의 대주교가 되었다. 유능한 행정가였지만 보니페이스 성인의 마음속에는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었다. 80세 무렵 교황의 허락을 받아 교구를 맡기고 첫 선교지였던 네덜란드 지방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보니페이스 일행은 비그리스도인들의 습격을 받아 754년 6월 5일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보니페이스 성인의 마지막 말은 위에 인용하였다.


원문 출처: <모든 성인-우리시대를 위한 성인, 예언자, 증인들>(All Saints), Robert Ellsberg, crossroad, 1997, p246-247
번역: 임선영 아우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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