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불가촉 세리, 마태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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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불가촉 세리, 마태오를 불렀다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05.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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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5

성 마태오 복음서에서 우리는 진복팔단을 발견한다.

마태오가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는지는 그의 복음서에 짤막하게 기술되어 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가파르나움 마을에서 예수는 방금 한 중풍병자를 죄에서 용서하였고, 그 행위는 율법학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은 그를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였다. 하느님 홀로 죄를 용서해준다고 하는 이 나자렛에서 온 건방진 녀석은 누구인가? 용서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예수는 절름발이 사람을 치유하였다.

마태오를 부르심, by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그런 후 즉시 예수는 “마태오라고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서 그를 따랐다”(마태오 9,9).

그 당시 삶의 고통들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세금징수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특히 마태오가 살던 때와 지역에서 세금징수는 어떤 특별한 경멸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혐오해서 세리가 있는 집안과 혼인을 거부하고 종교행위에 그들을 참가시키지 않았으며 모든 시민사회와 상업행위로부터 배제시켰다”고 한다.

세리들은 로마의 정복자들에 협력하는 첫 번째 선두의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세금을 징수하는 힘든 일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아서, 징수하는 세금의 일정액수를 가졌기 때문에 소수의 부유한 계층에 속할 수 있었다. 세리와 정직함이라는 단어들은 오늘날 중고차 판매원과 정직함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어울릴 수 없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세리라는 개념은 그저 자신들의 수입증가에만 연연해하고 움켜쥐는 강탈자를 의미했다. 그래서 예수가 이런 세리를 사도로 생각할 수 있었던 일은 예언자 호세아가 매춘부와 결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마태오가 복음사가로서 일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을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마태오는 멸시를 받았고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갈릴래아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거론만 해도 땅에 침을 뱉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가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아직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기도하는 사람, 모든 소유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두려움이 없고 첫 번째 복음의 저자이며, 진복팔단의 기록자요, 부활사건의 목격자이며 사도이고 마침내 선교자가 되고 순교자가 되는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가 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마태오의 집은 가파르나움에 있었다. 이곳은 지도의 한 점에 불과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후진 마을은 아니었다. 세관 말고도 그곳에는 병영이 있었다. 이 마을의 회당은 20세기초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것은 예수시대의 더 작은 회당이 있었던 3세기의 건물이었다. 최근에 그 주변에서 더 발견된 것들 중에는 고대 채식 식당의 잔재가 있는데, 이것은 가파르나움을 통과하는 무역로가 남쪽으로는 에집트의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원동 쪽의 인도 힌두인들도 데려왔음을 입증한다.

아마도 가파르나움은 늘상 마태오의 고향이었을 것이다. 예수는 이 마을에서 서쪽으로 하루쯤 걸어가야 하는 나자렛 마을에서 자라났지만, 사명을 시작하고 설교, 치유와 첫 번째 제자들을 불렀던 곳은 가파르나움이었다. 가파르나움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있었는데, 그는 아직껏 시몬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마을의 끝에서 시몬과 그의 형제가 고깃배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예수는 그들을 제자로 불렀다. 기파르나움에서 예수의 치유를 받았던 사람들 중에 시몬의 장모가 있었다. 베드로의 아내와 함께 장모는 아마도 예수와 제자들에게 음식을 장만해 주었을 것이다.

그 지역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마태오도 예수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의 말씀과 행적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예언자인가? 구세주일까? 예수는 수많은 논쟁의 초점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는 시몬의 장모를 낫게 했지. 장모는 굉장히 아팠는데.”

“누가 당신을 의사로 만들었는가? 아마 그런 생각은 그 장모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 ­그 집안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지. 시몬과 안드레아를 봐,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기 위해 그물을 모두 버리다니. 이 사람들은 원래 골통이 비어있는 사람들이야. 풀만 먹을 수는 없잖아.”

세리인 마태오는 필시 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다른 많은 부자들처럼, 그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또한 열심히 일해 소유한 것들이 일생 애를 먹이는 부담, 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부름을 받고 모든 것을 버렸던 그 어부 형제들처럼 마태오는 예수의 초대에 응답할 준비가 분명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출처] 짐 포레스트(Jim Forest)가 쓴 <진복의 사다리>(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참사람되어> 2002년 10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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