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성령, 간절함으로 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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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성령, 간절함으로 청하면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5.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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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복음과 사도행전-8
사진출처=pixabay.com

그 힘이 온다;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었으나, 그 힘이 온다. 그 힘이 온다; 예수님께서 영광에 싸여 바로 돌아오시지는 않으나, 힘이 온다. 성령은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오시는데 적절히 표현하기 위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며 루가는 혀 같은 모양의 불과 같다고 묘사한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찼다."(사도행전 2,1-4)

그들은 변화된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성령의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능력을 받는다. 자기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고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삶 속에 들어오시게 허락한다. 자신들을 전혀 방어하지 않고 비움으로써 그들은 주님의 성령이 자기들을 채우도록 허락한다.

성령으로 채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을 원해야한다. 그러나 입술로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성령을 받으려면 자신의 오만함을 버려야한다. 진정한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실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다락방에 있었던 사도들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성령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갈구해야 한다. 성령을 구하고, 원하고, 열심히 바래야 한다. 우리는 정신으로 뿐만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성령을 갈구하면서 늘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정말 받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일을 모두 다 하고 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내려 주시도록 맡기는 일 뿐이다. 우리가 끈기를 갖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면 주님은 오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믿지 않는다면 성령이 주어질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 성령에 의한 세례를 받으면 영적으로 흠뻑 젖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아주 빨리 성령으로 가득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아주 극적으로 성령으로 압도되어 몇 달, 몇 년 후에도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안다. 어떤 개신교 교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회심의 경험이다. 가톨릭 성령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도 성령이 자기들 가슴속에 이렇게 밀려들어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공동체 초창기에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주님의 은혜로운 현존에 대한 벅찬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에 의한 세례는 수주일 또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젖어든다. 그들에게는 언제 그들이 처음 주님을 알게 되었는지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현존을 꼭 느낄 수 있도록 하신 아주 특별한 은총의 때를 기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여러분이 오래동안 알아왔던 누군가와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된 후에 그 사람과의 우정이 어느 사이에 무언가 더 깊은 것으로 발전되었음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런 것이 “정상적인” 회심의 경험이다.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든지 그것은 실제적이고, 아주 좋은일이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를 만나고, 우리들이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현존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신다. 성령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분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채우기를 원하시나 우리마음이 성령께 열려 있는 그런 방식대로 우리 마음을 채우신다.

어떤 식으로 그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우리가 요구해야만 일어나고,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갈구할 때에만 일어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앞에 가져가는 빈 자리만을 채우실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께 그것을 채워 주시기를 요청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리가 없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강력한 현존을 알기를 갈망하는 어떤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내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오실 때 우리는 그분을 받을 만한 일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분의 오심이 너무 순수한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그일은 너무 대단해서 우리는 그분을 받을만한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뿐이다. 하느님의 관대함이라는 말 이외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일이다. 성령을 경험하는 것은 과분한 변모이다. 그것은 하느님께 사로잡혀서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올려 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께 승복하는 것이고 성령을 받는 것이며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이며 여러분이 내어준 조그만 것 보다 한없이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느님께 승복하는 것은 개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로 그것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가장 높은 형태의 자기 제어는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유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행위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간에 최고로 자유로우셨다. 그분은 인간적으로 당신 것이었던 것을 모두 아버지께 완전히 내어 드렸다. 그분은 그분과 우리를 위하여 자유의지로 아버지께 승복하며 자신을 내놓음으로써 그분 자신과 우리의 인간성을 받아들이셨다. 그분의 이와같이 내어 주는 바로 그 힘 덕택에 우리도 그분이 한 것처럼 우리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것은 주어진 능력이다. 그것은 선물이며 하느님의 힘이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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