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 민주화 되어야 할 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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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민주화 되어야 할 제국교회
  • 한상봉
  • 승인 2017.05.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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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력과 은총 2-2강

오늘날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스도교보다 더 고무하는 단체는 없다. 교회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이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믿는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사목헌장>은 “복음의 누룩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요청을 인간들 마음속에 불러 일으켰고, 지금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26항)고 말한다. 공의회 문헌인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에서도 “인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며, 단지 필요한 경우 필요한 정도로만 제한되어야 한다”(7항)고 말한다. 그래서 “과도한 권한을 국가에 맡기지 말라”(75항)고도 말한다.

“인간 기본권에 관한 모든 차별 대우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이든 또는 성, 인종, 피부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서 비롯된 차별이든, 그것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하고, 또 제거되어야 한다.”(사목헌장 29항)

교회는 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차별과 배제가 교회 안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고위성직자 개인의 일시적인 권력남용의 결과로 생긴 폐해가 아니라 교회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회헌장>에서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되어야”(8항)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는 정의를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히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의롭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교회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자체 내의 생활방식과 소유방식, 그리고 행동양식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세계정의, 40항)

사진출처=pixabay.com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교회

가톨릭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중앙집중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황에서 사제에 이르는 교회 내 행정 책임자를 선출하는데 하느님 백성인 평신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교구나 본당의 주교나 사제의 임명은 엄격히 교회권력자에게 독점적으로 맡겨져 있지만, 그렇게 임명된 교회 책임자가 지역공동체에서 군림함으로써 대체로 더 전문적이고 지적이며 경험이 많고 신학적 자질조차 갖춘 상당수의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주변인으로 남게 된다. 이들은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와 참여에서 배제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세계정의>는 이렇게 권고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교황청에서 제정한 법에 따라 교회의 각 구성원은 의사결정에 한 몫을 지녀야 한다”(46항)

때로는 사제들조차 교회일치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 의견을 내거나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의회와 시노드, 여타 교회모임에서 결정적인 사안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사제들을 대변하는 이들은 모두 ‘주교’들이다. 교회법적으로 사제는 주교의 협조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들이 자발적인 단체를 만들 경우에 때때로 상급사제나 주교의 의심과 험담과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해체 당한다.

환속사제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성직을 떠나는 자는 ‘죄인’으로 간주되는데, <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Sacerdotalis Coelibatus, 1967)에서 이러한 사제들을 “불행하게도 그들 자신이 선서한 봉헌의 책무에 불충실한 자”(83항)로 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여성은 최소한 신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수도자는 남성수도자들의 10배 이상이다. 그러나 교회법상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책임 있는 지도적 위치에서 일할 수 없다. 교황청에서도 사무국이나 위원회, 성에서 직책을 맡지 못한다. 물론 성사와 관련된 사목직을 맡을 수도 없다.

규범적 교리로 제도화된 것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여성사제’ 문제이다. 여성사제 불가의 사유가 ‘예수가 남성이었다’는 생물학적 이유라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신앙교리성에서 1976년 발표한 <명백한 징표 가운데서>(Inter Insigniores)는 이렇게 밝힌다.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이 성사적으로 표현되도록 되어 있는 마당에, 그리스도의 역할을 남자가 맡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리자 사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자연스런 닮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럴 경우 대리자에게서 그리스도의 표상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과거에나 지금이나 남자이시기 때문이다.”

보프는 “그렇다면, 어떤 남자든지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예수처럼 갈릴래아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할 줄 알고 할례를 받은 남자에게 한정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실상 이러한 교회의 전통적인 태도는 바오로 사도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된 세례찬가를 부정하고 있다. 이 찬가는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이랄 것도 여성이랄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 3,26-28)

정보와 의사표현의 자유

교계제도는 국가의 검열에 반발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교회의 특정 해석에 일치하지 않는 신학적, 과학적 가설이나 그런 내용을 담은 간행물은 격렬한 반발을 사며, 그 저자들은 고위성직자에 의한 재판의 위협을 받는다. 그동안 신앙교리성은 그런 역할을 자임해 왔다. 많은 주교들은 자신의 무지를 권위주의로 은폐하고 있으며,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교황청의 입장만 단조롭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문화를 특징짓는 신학적 굴종과 침묵은 칭찬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브라질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상당수의 가톨릭 출판계는 고약한 취향과 결합한 천박성이라는 마귀를 교회와 접목시키는데 굴복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이비 결합은 지성에 대한 과도한 이념적 통제를 낳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지만 <세계정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모든 이가 적절한 표현과 사고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모든 이의 의견이 교회 안에서 합당한 다양성을 보존하는 대화의 기풍 안에서 존중됨을 의미한다.”(44항)

이런 주교들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교회는 신학자들의 자유로운 신학적 가설을 단죄해 왔다. 물론 오늘날 교회에는 이단자들을 처벌할 직접적인 정치적 수단은 없다.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에 대한 교회의 신체적 고문은 사라졌지만 정신적 고문은 계속되고 있다. 교의적 절차의 법적인 불안정성, 탄핵의 익명성, 비난 사유에 대한 정보의 부재, 절차를 무시한 판결, 소명기회의 박탈과 긴 심문 기간 등이 이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신학자들은 심리적 불안에 떨다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신앙교리성(Holy Office, 1908년까지는 검사성성)이 제정한 <교리검토규칙>(1971)은 인권유린의 요소를 담고 있다. 피고에게 일체 통고하지 않은 채 심문절차가 시작된다. 교리성의 입장이 정해지고 나서야 당사자에게 통고되며, 피고는 심문자의 질문에 답할 의무만 주어진다. 피고는 구체적인 기소명이나 절차, 신앙교리성의 견해를 사전에 접할 수 없다. 이른바 변호사도 없다. 심문이 비밀리에 오래 지속되는 동안 피고에 대한 편견과 불확실한 소문만 무성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피고들은 “신학적으로 모호하며 위험하고 오류이며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규칙에 위배된다”는 일방적인 결론만 듣게 된다.

신앙의 본질은 존중받을 만하지만, 교리규칙을 불변의 공식처럼 신봉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수많은 역사적 변동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왔다. 세계에 대한 경험이 달라지는데도 이러한 역사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은 공허하고 허구적인 현실만을 모방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교부들은 복음을 현실 속에서 재해석해 온 선구자들이다. 위대한 신학자들은 시대의 문제를 수용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용기를 냈던 사람들이다. 신앙은 반복적인 교리 암송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사진출처=pixabay.com

교회 권력구조의 역사

교회 내 인권 문제를 단순히 권력남용과 그릇된 신념을 지닌 고위성직자의 인간적 결함에서 찾는 것은 제한적인 의미만 갖는다. 교회권력자의 대다수는 라칭거 추기경(훗날 베네딕토 16세 교종)처럼 사실상 훌륭한 신앙인이요 깨끗한 양심과 흠 없는 인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가 교회구조의 봉건성에서 나온다.

가톨릭교회는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이다. 교회는 내부의 권력을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 믿으며, 신자들은 신앙으로 이런 질서를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권위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전수되며, 그 권위가 교황-주교-사제-평신도로 이어지는 교회의 각 지체에 차별적으로 주어진다.

가톨릭교회의 권력구조는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로마제국과 봉건주의의 권력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교회의 관습과 명칭, 표현법과 상징들은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교회의 제도화 과정은 교회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기존 중세적 구조가 현대사회의 민주주의적 요청과 상충하면서, 점증하는 인권의식과 마찰을 일으킨다. 어떤 주교는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라고 강변하지만, 바뀔 수 없는 복음적 진리와 달리 교회 구조 자체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시대에 복음을 실현하는데 좀 더 납득할만한 구조로 개혁될 필요가 있다.

로마-중세적 권위형태는 여러 계급의 성직으로 이루어진 교계제도이다. 권력자는 종신직이며, 그 사람이 의도한 바가 곧 ‘법’이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순명을 바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계급제도는 신성한 우주적 권위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 권위의 합법성이 언제나 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가장 상부에 하느님이 계시며, 지위가 올라갈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하느님의 권능을 더 많이 부여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상급자에게 순명하는 것은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과 믿음을 종교의식을 통해 상징화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위형태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떤 비판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신성한 권력구조와 상급자에게 도전하는 것은 하느님께 도전하는 것이며 우주적 반역으로 믿었다.

교회 권력자들에게 이러한 구조는 만족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사회주의 혁명 등 근대의 대변혁은 교회에게 불편한 도전이었다. 교회는 자신의 권위체계를 변호하고, ‘교황 무오류성’(敎皇無謬性, Papal infallibility) 주장처럼 위계질서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교황의 가르침이 오류가 없다”는 가르침은 1870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선포되었다.

“교황에게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를 규정함에 있어 그는 절대무오하다.... 교황의 절대무오류성(infallible)에 대한 교리는 바티칸 공의회에서 거룩한 교회에 의해 정의되었으므로, 감히 교황의 절대무오성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이다.”(교황 비오 10세, 요령집)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야 교회는 덜 군주적이면서 더 참여적인 길을 열기 시작했다. 교황청의 비중심화를 위해 각 대륙과 나라마다 주교회의를 열고, 본당 단위에서도 사목협의회를 통해 평신도들이 교회행정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 그러나, 교회구조의 프레임 자체가 변하지 않음으로써, 그 한계는 여전하다.

그래서 교도권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교회운영의 방식이 결정되고 있다. 구조가 아니라 사람에게 개혁의 향방을 위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원은 진리의 소유자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종교재판마저도 도덕적 죄를 묻지 않고 신앙진리 여부만을 따진다. 여기서 이교도는 다른 진리를 내세우기 때문에 더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부도덕한 자보다 이단자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진리 소유의 관점에서 볼 때, 교도권자나 성직자들은 종교적 생산수단(신학)을 독점하고 있으며, 신자들은 이들이 생산하는 종교적 상품의 소비자로 전락한다. 따라서 생산자는 여러 소비자 가운데 더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종교적 상품을 생산해 제공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을 통제한다. 특별히 종교적 생산수단을 소유한 성직자들은 자신의 권력행사에 신적인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실력행사를 정당화하고 강화시킨다.

사진출처=pixabay.com

교회, 시민사회의 구조 따라야

과거의 교회가 로마와 중세의 구조를 따른 것이라면, 현대교회는 점증하는 인권의식을 수용한 시민사회의 구조를 따라야 한다. 이를 ‘교회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의 생애와 행적과 메시지에 대한 기본적 교리, 교회 가르침 속에 포함된 도덕적 명령, 교회의 전통적인 성사적 직분에 관한 논의들은 충분히 계승하면서, 동시에 좀 더 참여적이고 자유롭고 형제애 넘치는 공동체가 요구된다.

예수와 제자공동체에서 선포했던 형제애는 스승, 아버지 등과 같은 구분을 짓지 않았고(마태 23,8-9), 남을 지배한다거나 판결권을 가진 듯이 행하지 않는다.(마르 10,42-45; 루카 22,25-27; 요한 13,14)

초기교회에서는 권위가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났는데, 사도 바오로의 공동체에서는 카리스마적 구조가, 예루살렘 공동체에서는 사도들의 협의체 구조가 있었다. 여기서 형식보다 중요한 권위는 봉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회의 중앙집권적 권력 형태는 그노시스파 등 이단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답하려는 역사적 이유로 인해 생겨난 한 가지 형태일 뿐이며, 그것조차도 긴 시간을 거치면서 논의를 거쳐 수정되고 안착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교회는 평신도를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교회헌장, 3 1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오 12세 교종은 <인류의 기원-가톨릭 교리의 기초를 위협하는 잘못된 견해들에 관한 회칙>(Humani Generis, 1950)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교계제도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는 “평신도는 각자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의 가르침을 해명하고 전파한다”(16항)고 말한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신조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거룩한 삶이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전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결국 교리(dogma)와 신학(theology)보다 ‘신앙’(faith)이 결정적이다. 그래서 보프는 이렇게 말한다.

“교리란 항시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역사-문화적 해석이다. 우리는 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진정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실천 행위를 통해 구원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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