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김씨가 명의다
상태바
돌팔이 김씨가 명의다
  • 심명희
  • 승인 2017.04.23 2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명희 칼럼] 

내가 일하는 약국 주위엔 치과가 많다. 치과를 다녀온 환자들이 ‘속았다’ ‘바가지 썼다’라고 불평을 하는데 비싼 임플란트 시술을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의사가 성급하게 임플란트를 강요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는 호소다. 환자의 사정보다 수입에 더 골몰한 의사에 대한 성토인 셈이다. 그러면서 아픈 이빨을 부여잡고 눈물이 글썽해서 묻는다. 좋은 의사 있으면 소개 해달라고.

무작정 임플란트라니...

‘임플란트’라고 하면 특별히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신림동의 고시촌 ‘사랑샘’이라는 고시생 쉼터에서 고시생들을 상담할 때였다. 지방의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촌에 들어온 지 5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녀는 충치 때문에 통증이 생길 때마다 진통제로 버텼다. 고향 부모님이 매달 보내주는 생활비도 부담스러운데 차마 치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고 드디어 일이 터졌다. 통증 때문에 한밤중에 응급실까지 간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선택한 치과는 광고에 등장하는 네크워크 치과인데, 실력 좋은 의사일 거라는 믿음에서 찾아갔다. 첫날,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난 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치료를 시작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순진한 고시생은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전문가니까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믿고 모든 것을 맡겼다.

치아 하나가 뽑혀 나가고 사흘 뒤 또 하나의 치아가 뽑혀 나가자 비로소 불안이 엄습했다. 충치 치료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뭔가 심상찮은 큰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 개를 더 발치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에 대해서 물었다.
“임플란트.”

의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대답했고 총 이백오십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네 달치 생활비였다. 전문분야가 각각 다른 세 명의 의사가 교대로 치료를 했기 때문에 항의할 뚜렷한 대상도 없었다. 그저 멍청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치료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호소를 듣고 단골 치과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충치는 웬만하면 뽑지 않아요. 환자 본인의 치아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나서 도저히 안 되면 그때 최후의 수단으로 임플란트를 권하지요.” 하면서 나머지 썩은 이빨을 구조(?)해 주었다. 이미 뽑힌 어금니 두 개의 흔적을 남긴 채.

사진출처=flickr.com

면허증 없는 전설의 명의

내 고향에는 전설적인 명의가 있었다. 그런데 치과의사 면허증이 없는 ‘돌팔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면허증을 가진 의사를 마다하고 굳이 돌팔이 김씨를 찾았다. 할아버지, 부모님, 나, 우리 가족 삼대도 그의 신세를 졌다. 그가 조수로 일하는 치과는 항상 환자들로 붐볐다. 일개 조수인 김씨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몰리는 통에 주변의 의사들은 그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수없이 고발 고소했지만, 그의 명성과 인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서장도 그의 단골이었으니까. 지금은 아흔이 넘어 은퇴한 김씨, 요즘도 틀니를 해달라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 끝에 위치한 낡고 작고 어설픈 시설을 갖춘 김씨의 치과에서 순번을 기디리느라 북적이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유명대학을 나온 길 건너편 치과의사를 마다하고 굳이 면허증도 없는 돌팔이에게 치료를 받으러 올까?

사실 사람들은 그의 ‘기술’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에게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사는 형편은 어떤지, 다른 아픈 데는 없는지, 오랜만에 오는 환자를 보면 집안에 그동안 우환은 없었는지... 환자의 치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았다. 또 외상 장부가 있었는데 빼곡하게 적힌 이름은 치료비를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짜’라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환자의 자존심을 배려한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은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하고 두꺼운 외상 장부를 ‘공짜 장부’라고 불렀다.

졸지에 치아 두 개를 잃어버린 고시생의 딱한 사정을 들었을 때 잊고 있었던 김씨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평생 주변 의사들에게 ‘돌팔이’라고 고소 고발에 시달렸지만 환자들에게는 존경과 명예를 누린 김씨, 그분이라면 이 가난한 고시생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돌팔이 의사, 김씨가 그리운 이유

‘명의’란 환자에게 최고의 존재다. 하지만 부, 명예, 명성의 상징인 그런 명품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일은 행운에 가깝다. 반면에 ‘돌팔이’란 그런 ‘명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가짜 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팔이 김씨의 따뜻한 인술에 대한 끈끈한 체험 때문에 나는 ‘명의’를 의심하며 ‘돌팔이’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래서 환자들이 좋은 의사를 소개를 달라고 할 때 실력과 기술, 출신학교, 면허증 보다 환자와의 공감과 소통, 사람됨으로 추천을 한다. 사람냄새 풀풀 나는 따뜻한 의사, 돈보다 사람에게 신경 쓰는 의사가 ‘명의’, 그렇지 않으면 ‘돌팔이’로 구분한다.

자격증과 면허증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의사, 법조인이 대세다. 의학 교과서와 법조문을 열공해서 면허증과 자격증을 따고 전문가가 된다. 그렇게 해서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법조인은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좌지우지하는 전문가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루는 대상이 사람이지 기술과 지식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는 기능과 기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삶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윤리적인 책임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돈과 권력과 명예 같은 사람이 아닌 소유물의 일부분에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던질 때 ‘돌팔이’가 된다. 돌팔이 의사, 돌팔이 변호사, 돌팔이 판사, 돌팔이 검사는 그렇게 탄생한다.

지금도 걱정이 된다. 그 고시생은 빠진 어금니 두 개의 임플란트를 했을까? 환자의 질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먼저 보는 돌팔이 의사, 김씨가 그리운 이유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