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유다와 예수] 수레를 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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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유다와 예수] 수레를 끌다
  • 홍성담
  • 승인 2017.04.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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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소설: 동행, 유다와 예수 -3]

그는 수레를 끌고 시장 남쪽 급경사면으로 내려와 수도교를 따라서 성 밖으로 통하는 에세네 문을 향했다. 수도교 하부도시에서 쉰 냄새가 풍겨왔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흙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성벽 앞 작은 언덕엔 움막집들이 깔려 있었다. 집 밖으로 오물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린 탓에 골목길은 항상 질퍽거렸다.

골목길은 예전과 똑 같았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가 들리고 아퀴가 잘 맞지 않는 문을 여닫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 아낙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다투는 소리에 이어서 곧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자지러질듯이 들렸다. 그리고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불을 지피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이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니 그이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이 사람들과 그이의 죽음은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사람들은 다음날의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모두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성문을 나선 그는 곧장 수도교를 따라 힌놈 계곡에 있는 셀펜트 연못가에 수레를 잠깐 세우고 한숨을 돌렸다. 길에는 몇 명의 순례자들이 지친 모습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내일 안식일까지 이 근처에서 지내고 썰물 빠지듯이 썩어가는 도시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다.

그가 땀을 식히려고 등을 기대고 있는 무화과나무는 한참 이파리를 넓혀가느라 강한 녹색빛을 뿜어냈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은 회벽처럼 하얗게 굳어진 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모든 생각들이 지워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금방 마음이 급해졌다. 일어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건초더미 대여섯 다발을 들고 와서 수레 안에 있는 물건을 덮었다. 그리고 수레의 나무바퀴를 발로 툭툭 차 보았다.

대장간은 성벽공사장에서 사용하다 폐기처분한 고물 수레를 헐값에 사다가 깨진 바퀴에 심을 대고 쇠굴레를 다시 씌워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팔았다. 그는 두 개의 바퀴가 양쪽에 나란히 달린 수레를 바라보다가 외바퀴가 달린 수레를 저쪽 구석에서 발견하고 잠시 고민했다. 좁은 산길을 많이 타야 하므로 오히려 외바퀴 수레가 나을 것 같았다. 대장간 주인이 그런 그를 보고 잽싸게 말을 거들었다. 바퀴 두 개 달린 수레보다는 저 외짝 바퀴 수레가 값도 저렴하고 오히려 쓸모가 많소. 대장간 주인은 별다른 흥정도 없이 부르는 값대로 팔리는 것에 기분이 좋았던지 그가 수레 값을 지불하고 출발하려하자 바퀴 축에 검은 기름을 잔뜩 발라주면서 말했다.

‘이거 허름해 뵈지만 어지간한 짐이라면 골란고원을 넘어서 로마까지도 별 탈 없이 끌고 갈 수 있을거유’

유다는 무화과나무 밑둥에 등을 기댄 채 둥그런 수레바퀴를 바라보았다. 가운데 축에서 여덟 개의 살이 가지런하게 뻗어서 단단한 나무를 깎아 둥글게 만든 굴레미에 홈을 파서 고정했다. 그리고 둥근 나무바퀴 겉에는 얇은 쇠테가 둘러있었다. 아무리 먼 길을 굴러가도 바퀴는 항상 수레의 밑자리에 붙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오늘 만큼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일생살이가 마치 저 바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에 가득 들어온 둥근 바퀴가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여덟 개의 바퀴살 중에 약간 가늘어 약하다고 생각되는 나무살 하나가 다른 나무살들과 뒤엉켜지면서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그의 눈도 바퀴를 따라 돌았다. 갑자기 어지럼증 때문에 속이 매슥거렸다. 강한 햇빛 탓일까. 아니면 사흘째 텅 비어있는 뱃속 탓일까. 그는 무엇인가를 털어내듯이 머리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었다.

서쪽 언덕으로 가라앉는 태양빛이 부채살처럼 펼쳐지면서 넓은 셀펜트 연못에 온통 붉은 빛 수를 놓았다. 눈이 부셨다. 심한 봄 가뭄 때문에 연못의 수위가 한참 낮아진 탓인지 물속이 탁했다. 그가 물가로 걸어가서 쪼그려 앉아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고개를 들어 언덕 왼쪽으로 보이는 헤로데의 웅장한 가족묘를 바라보다가 다시 얼굴에 물을 거푸 몇 번이고 끼얹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요한은 그의 목덜미를 강하게 눌러 머리를 강물에 담구면서 너를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만간에 너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썩어버린 이 세상을 도려낼 큰일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삽화=홍성담

그는 고개를 바짝 숙여 양손으로 물을 떠서 가슴팍에 끼얹었다. 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이었다. 물에서 진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요한이 그에게 했던 말은 세례를 베풀기 전에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인사말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을 때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요한이 살해된 후로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썩어갔다. 그리고 그 썩은 세상을 도려낼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또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의 말은 모두 틀린 말이다. 아니, 대수롭지 않게 뱉어낸 요한의 인사말을 우리는 너무 의미 깊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물가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서는 그의 얼굴엔 허망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수레를 끌고 출발했다. 수레의 뒤쪽 가운데에 튼튼하게 보이는 바퀴가 하나 달리고 앞쪽 손잡이가 달린 아래에 양쪽으로 두 개의 다리가 달려서 세울 수 있도록 만든 외바퀴 수레였다.

서쪽 성벽을 따라서 가파르게 뻗은 길은 로마 기마병들이 기동하기 좋게 모두 넓은 길로 변했다. 로마인들은 어디를 가든 새로운 길을 닦거나 좁은 길은 넓히는 일부터 먼저 시작했다. 로마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었다. 한번 뻗어나가기 시작한 그들의 길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그들의 길은 아마도 세상의 땅 끝에 있다는 지옥의 낭떠러지 앞에서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선 길 대신에 사다리를 놓아 낭떠러지 아래 지옥을 점령하고, 역시 지옥에서도 직선으로 반듯이 뻗는 길을 만들 것이다.

성벽너머로 금니를 입힌 헤로데 궁의 둥근 지붕이 석양빛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황금빛을 반짝였다. 골고다 언덕 왼편 성벽아래에 도착했을 땐 벌써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성벽을 따라 계속 갈까하다가 혹시라도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낭패를 볼 것 같아서 골고다 뒤쪽 언덕을 향해 곧장 수도교 밑에 난 작은 길로 수레를 끌었다.

약 다섯 발 간격으로 기둥을 세워 사람 키 두 배 높이에 올린 수도교는 사제들과 부유층이 사는 위쪽 상부도시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위해 건설되었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위해서 성전의 보물을 로마 현지의 귀족들에게 몰래 내다팔았다는 소문이 유대민중들 사이에 돌았다. 그리고 보물 판매와 관련되어 남은 엄청난 이문을 대상인과 몇몇 사제들끼리 나누어 가졌는데, 거기에서 소외된 한 사제가 젤로트에 선을 대어 그 내용을 비밀리에 알려주었다.

그러나 젤로트 지도부는 그 내용에 대해서 일체 함구하고 비리에 관련된 사제들과 모종의 타협을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예루살렘 젤로트 내부의 하부조직에서 그런 지도부를 성토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루살렘 인근의 작은 도시 ‘미스바’에서 젤로트 분대장으로 있던 유다도 가장 먼저 앞장서서 지도부를 비판했다.

다시 민심은 들끓기 시작했다. 사제들과 타협점을 찾지 못했는지 젤로트 지도부는 뒤늦게 들끓는 민심을 조직했다. 유다는 젤로트 조직원들과 함께 성난 유대민중들을 이끌고 성전 앞 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이끌었다. 이번 시위를 꼭 성공시켜 모든 부와 향락을 누리며 성전을 장악하고 있는 사두가이파들과, 로마 점령군들에게 나라를 팔아 자신의 부를 지키고 있는 장로들을 처단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 시위의 성공여부에 따라 젤로트 내부에서 유다의 위치가 그만큼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시위대 양쪽에서 무장을 하고 군중들을 선동했다. 유다도 두 뼘 길이의 칼을 품속에 숨기고 시위대를 따라 성전 앞마당까지 진출했다. 시위대를 이끄는 책임자의 손 신호에 따라 이번 성전보물 반출과 관련된 고위 성직자들을 도륙하고 곧 이어 윗 상부도시로 달려가 우리의 내부 명단에 나와 있는 대상인과 대지주들 몇 명을 처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성전의 앞마당에서 멈추어 섰다. 시위대 양쪽에 있던 그들은 하나 둘 군중들 사이로 들어가 성전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목이 터지도록 선동을 했지만 군중들은 도무지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주춤거렸다.

그 때 성전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망토를 입은 병사들이 긴 창을 곧추세우고 시위대 앞쪽에 진을 형성했다. 방패와 창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병사들의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시위대는 긴장을 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유다는 품속에 숨긴 채 칼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여차직하면 동료의 수신호에 따라 칼을 휘두르며 병사들에게 뛰어들 준비를 했다.

빌라도 총독이 보낸 로마병사들의 철기 창은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렸다. 백여명도 넘는 장창부대 뒤로 칼을 빼든 병사들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창을 든 병사들이 열을 맞추며 동시에 둥근 방패를 세워 일제히 땅바닥을 두 번 두들겼다. 그들이 방패로 땅을 두들기는 소리에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위대를 향해 긴 창을 수평으로 숙이더니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시위대를 덮쳤다. 성전 앞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장창부대들이 밀어붙여 시위대들을 분산시키자 곧이어 칼을 빼든 병사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륙했다. 유다는 품속의 칼을 꺼내 볼 틈도 없이 뒤돌아 도망쳤다.

그 날 성전 앞마당은 시위대가 흘린 피로 흥건했다. 병사들은 도망가는 군중들을 뒤쫓아 시위대는 물론 행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병사들은 이틀 동안 큰 길거리와 골목길까지 이 잡듯이 뒤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잡아낸다는 명목으로 집안에 있던 일반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끌고 갔다. 그 날 유다는 말로만 들었던 로마병사들의 가공스러운 무장력을 직접 경험했다. 그들은 거대한 절벽과 같았다.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홍성담 안토니오
민중의 삶과 해방운동, 통일운동 등을 그려 ‘5월 화가’, ‘통일 화가’라는 수식어로 널리 알려졌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원형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림을 통해 폭력에 저항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작품으로 <오월광주민중항쟁 연작 판화 ‘새벽’>과 <‘야스쿠니의 迷妄’ 연작>, 환경문제에 관한 글 그림 《나무 물고기》, 장편소설 《바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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