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토회] 자비와 비참, 모두가 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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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회] 자비와 비참, 모두가 나의 노래
  • 에스터 드 왈
  • 승인 2017.04.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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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길] 시토회 수도자들의 전통 -15

자신의 수도원 주위를 돌아보면서 베르나르드는 수도생활의 아름다움이 다양성 안에 있고,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같은 동일한 모습으로 형성되도록 모두 한 틀 안에 넣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음이 틀림없다. 라틴어 경구인 Ad idem tendunt, licet non eadam via, ‘이 다양한 길들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께로 여행하고 있다’가 이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수도원들의 기능의 다양성을 받아들였다: ‘모두가 성인들의 완전함에 기여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대한 연륜의 잣대에 따라, 모두가 성숙한 인성을 향해 함께 밀고 나아간다.’

단 하나의 양식이 없고, 단 하나의 경험이 없다: 그 대신에 하느님은 각 개인의 생활 안에서 다양하게 행동하신다. 각 개인은 그 자신의 신비스런 길을 발견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우리가 은총이 형성시키는 대로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의 항구적인 발전, ‘그리스도-생명’ 속으로의 진보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베르나르드는, 베네딕도와 같이 진보에 관심을 둔다. 회칙의 표현은 역동적이다: 돌아가기, 달리기, 진보하기, 종점, 목적을 향하기. 그러나 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는 또한 우리 각자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속도에 따라서 간다는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보이지 않게 변화가 오도록 하자’고 생애의 마지막 해인 1968년 5월에 머튼이 썼다.

내적 삶의 기량에 관해 아주 많은 저작이 있고, 다양한 유형의 영성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 세대에, 시토 수도자들이 그런 요구들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는 것은 위로가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내적인 삶에 어떤 조직체계를 지우거나, 어떤 방법에 의존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 ‘만일 당신자신의 분수를 유지하고 당신의 능력 이상의 일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분을 더 신속히 기쁘게 해 드릴 것이다.’

사진출처=bonitavista.tumblr.com

시토 수도회 교부들은 우리가 통제하에 있지 않다는 것, 먼저 움직이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삶들은 인간적인 계획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에 순응하는 것임을 항상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한 가지 일이 필요한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이해에 대해 늘 경계하는 것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성령의 일하심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야(經夜)기도가 중요한데, 한 가지에 적합한 시간이 다른 것에는 적합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때때로 우리를 떠나는데, 우리가 더욱 절박하게 그분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떠남을 알아챌 수조차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현존과 부재의 변증법은 어떠한 사랑에 관한 아가서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성령이 오고 가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이 거기 계실 때 그분을 숭배하고 복종하며, 그분이 안 계실 때 그분을 바라는 소망을 경험한다.

영혼을 찾아오시는 말씀은 갑작스럽고, 정말 매우 일시적으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분을 붙잡아 두려고 생각하자마자, 그분은 빠져나갔다... 그분은 자신에게 닿는 것을 허용하지만, 매달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갑자기 그분은 붙잡힘에서 다시 벗어나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경험이 교대로 일어나는 것이 영적 성장의 일반법칙이라는 베르나르드의 확고한 가르침이었다; 그는 평온한 생활이 불확실하고 본질적으로 착각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들이 경험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덕분에 기쁨과 안도의 때 또한 어둠과 무거움의 때라는 이중적 흐름이 삶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추락과 실패라는 문제조차 있을 수가 없다. 그것들은 다만 예상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나의 삶에서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갚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주제는 내가 있는 곳이 ‘좋고 적합하다’는 메시지이다. 때때로 나는 위안을 받을 필요가 있고, 때때로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비와 판단 아래에 있다. 위로가 있고 또한 고침이 있다. 우리는 양쪽에 다 유의해야 한다. 두 가지 다 관련이 있고 또한 각각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너무 많이 자비에 매달린다면 ‘느슨하고, 게으르고, 기도에 열의가 없고, 행동이 나태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 만일 우리가 판단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두려움과 비참과 혼란으로 ‘의기소침하게’ 될 것이고, 두려움을 주는 어두움의 모든 측면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베르나르드는 ‘나는 나의 스승[즉 시편작가]의 경험에 의해 교육받았기 때문에 판단만이나 인정만이 아니라, 두 가지가 모두 나의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출처/1998년, 미국 메리놀회 출판사인 올비스에서 출판된 <단순함의 길(The Way of Simplicity)>을 참사람되어에서 2001년 4월에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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