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현실이라면 저항은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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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현실이라면 저항은 의무입니다
  • 유형선
  • 승인 2017.04.04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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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1960년대를 배경으로 흑인 여성 3명이 미국 NASA에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라는 이중 억압에 맞서 한 발 한 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화 <히든 피겨스>. 지금은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두 딸에게 아빠와 함께 본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세 명의 흑인 여성이 등장합니다. 캐서린 존슨은 우주비행선에 필요한 핵심 수학계산을 해결합니다. 메리 젝슨은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됩니다. 도로시 본은 NASA 최초로 흑인여성 관리직에 오릅니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힘들고 어려운 저항의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뻔할 것 같은 이야기를 뻔하기 않게 그려낸 감독의 솜씨가 좋습니다. 차별에 맞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장면 장면이 관객들의 영혼을 울립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두 딸과 아내에게 최고의 명장면을 물었습니다. 두 딸은 같은 장면을 꼽았습니다. 여자 주인공 캐서린 존슨은 800미터 떨어진 흑인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홀딱 비에 젖었지만 오히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다는 이유로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그러자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립니다.

“여기에는 제가 쓸 화장실이 없습니다. 이 건물에는 흑인 화장실이 없습니다. 800미터 거리에 흑인 화장실이 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먼 거리를 볼 일 보러 걸어야 합니다. 자전거도 쓸 수 없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제 근무복 치마는 무릎 아래에 내려와야 하고 하이힐도 신어야 합니다. 진주 목걸이라니요? 진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살 만한 급여를 흑인들은 받지 못합니다. 밤낮으로 개처럼 일합니다. 커피 포트에 손대는 것도 전부 꺼려합니다. 그래서 양해를 바랍니다. 하루에 몇 차례 화장실에 가는 것 말입니다.”

아내는 메리 젝슨의 법정 연설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습니다. 메리 젝슨은 NASA에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꼭 이수해야 할 수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공교롭게도 백인들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백인 학교 입학을 위해 용기를 내어 법원 문을 두드립니다. 판사 앞에 선 메리 젝슨.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저는 NASA에서 엔지니어가 될 계획입니다. 백인 학교에 출석해야만 이룰 수 있습니다. 제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저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초가 되는데 있어 판사님 선택이면 가능합니다. 판사님, 오늘 맡은 사건 중에서 향후 100년간 어떤 판결이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어떤 판결이 판사님을 최초로 만들겠습니까?”

저는 도로시 본의 도서관 장면을 꼽았습니다. 백인들만 사용 가능한 도서관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두 어린 아들과 함께 쫓겨난 도로시 본.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두 아들에게 힘주어 강조합니다.

“차별과 평등은 전혀 다른 거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보면 바로 잡을 수 없어. 옳은 행동이야 말로 분명하게 옳은 일 인 거다. 이건 분명한 것이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 아들을 향해 평등정신을 강조한 도로시 본은 아들들을 다독거린 후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듭니다. 흑인에게는 빌려주지 않는 책을 도서관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 나온 겁니다.

“아들아! 엄마는 세금을 냈단다. 도서관은 세금으로 책을 샀고, 엄마는 세금을 냈으니 책을 가져 나온 거란다.”

대한민국은 여성평등과 거리가 멉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5년 세계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양성평등 지수는 145개국 중 116위였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도 OECD 28개국 중 꼴지를 기록했습니다. 큰 딸은 신문기사에서 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한국 직장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급여는 60% 수준이래요.”

차별이 현실이라면 저항은 의무입니다. 차별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은 분들에게 영화 <히든 피겨스>를 추천합니다. 온 가족이 손을 잡고 함께 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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