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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로 들어선 예수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예수의 마지막 일주일-5-2강 : 목요일, 예수가 연행되어 심문받다]

겟세마니 동산, 기도

상부도시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분문을 통과해 힌놈골짜기(게헨나)의 오물과 쓰레기 타는 불길을 지나 키드론 골짜기를 거쳐 올리브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루살렘 성전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예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면서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14,28)이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갈릴래아는 그들의 고향이고, 예수가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그들이 예루살렘 동쪽 벽에서 100야드 떨어진 겟세마니에 닿았을 때, 예수는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예감하며 힘들어하며 기도했다.

마르코복음에는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고 적었다. 측근이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14,34) 하고 말했다. 그런 다음 땅에 엎드려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 기도했다. 그 잔을 거둘 수만 있다면 그리 해달라고 빌었다. 그분 역시 우리처럼 연약한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예수가 충실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은 “(그래도)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가 죽음을 자청했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예수의 죽음이 하느님 뜻이라고 오해해서도 안 된다.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불가피한 운명이다. 예수는 그런 운명마저 끌어안고 하느님을 사랑하기로 겟세마니에서 작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때 예수는 하느님을 ‘압바’(abba)라고 불렀다. 마르코복음사가는 그리스어로 복음서를 쓰면서도 유독 예수가 하느님을 부를 때는 아람어인 ‘압바’라고 적었다. 압바는 영어의 papa처럼, 우리말 아빠처럼 ‘아버지’의 친밀한 표현이다. 예수는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느낄만한 친밀한 감정을 하느님께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Gethsemane by Julia Stankova

체포당한 예수

예수가 졸음을 참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14,38)고 타이르며 몇 차례 기도를 반복하는 동안에 유다가 성전세력이 보낸 성전경비대와 함께 들이닥쳤다. 그들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유다는 마지막 식사 중에(요한복음), 또는 식사가 끝나고 나서(공관복음), 예수 일행에서 빠져나와 성전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가 누구인지 어둠속에서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가장 길었던 한 주>에서 닉 페이지는 ‘유다의 입맞춤’에 특별히 주목한다. 횃불을 들고 들이닥친 상황에서 굳이 입맞춤이 아니어도 방법은 많았겠지만, 굳이 유다가 입맞춤한 것은 “제자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행위’를 사용해 동료애를 깨뜨리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입맞춤은 그리스-로마문화나 유대인의 풍습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오로 사도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한 것처럼, 제자단과 초대교회의 인사법이었다. 이를 두고 닉 페이지는 “입맞춤은 제자도의 표시였으며, 사회의 혁명적인 연대의식과 급진적 평등성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한편 성전경비대가 예수를 붙잡자,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14,47) 마태오복음에선 예수가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26,52)고 하고, 루카복음에선 예수가 “그만해 두어라.” 하시며 그 사람의 귀를 고쳐 준다. 요한복음에선 칼을 휘두른 사람이 ‘베드로’였다고 밝힌다. <가장 길었던 한 주>에서는, 공관복음이 ‘방어적 익명성’에 주목하였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아직 베드로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폭력에 연루된 그를 보호하느라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요한복음이 기록된 때에는 이미 베드로는 죽었고 위험요소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르코복음에선 체포되기 전부터 고통과 번민에 휩싸여 있으며, 경황없이 유다의 지목에 의해 체포되었던 예수가 요한복음에선 당당한 지도자처럼 나서며 그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요한복음에선 유다가 경전경비병뿐 아니라 로마군대까지 데리고 온다. 예수는 먼저 “누구를 찾느냐?”고 묻고, “나자렛 사람 예수”가 “나”라고 밝힌다. 그때 놀라서 땅에 넘어진 사람들은 잡으러온 군대였다. 여기서 유다는 다만 옆에 서있을 뿐 별다른 역할을 맡지 못한다. 두 번씩이나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며, 다른 제자들은 놔주라고 이른다. 마르코복음의 묘사가 더 사실적으로 보이며, 요한복음에 이르면 이미 예수가 그 공동체에서 예언자의 한 사람에서 메시아를 거쳐 ‘하느님의 아들’로 충분히 격상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by MAXIM SHESHAKOV, The Betrayal of Jesus

대사제의 심문

예수는 대사제에게 끌려갔다. 상부도시에 있는 가야파의 로마식 저택이다. 그 자리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 등 성전세력의 핵심이 다 모여 있었고, 다투어 예수에 대한 불리한 거짓 증언들을 늘어놓았으나,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율법에는 유죄를 입증하려면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지만 증인마다 얘기가 엇갈렸다. 예수는 내내 침묵을 지켰고, 결국 대사제가 직접 나서서 예수를 심문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네가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냐?”는 것이었다. 예수더러 하느님 아들이냐는 거였다.

예수의 답변은 그리스어 “ego eimi”로 시작된다. 가톨릭 <성경>에는 “그렇다”이지만, 원뜻은 “내가 바로 그다” 또는 “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말은 평서문이면서 동시에 의문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가 된다. 마태오복음에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26,64)고 하고, 루카복음에는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22,70)고 적었다. 예수는 명료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사실 부활절과 오순절 이후에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안에서 발설된 고백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대사제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참칭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얼렁뚱땅 예수를 하느님 모독죄로 사형받아 마땅하다고 단죄한다. 그러나 예수는 마르코복음에서 늘 그래왔듯이 ‘사람의 아들’ 이야기를 덧붙인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 예수가 전하고 싶은 말은 ‘누가 메시야인지’보다 곧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선언이다.

유대전쟁을 겪은 마르코복음사가는 메시아(그리스도)를 무력을 사용해 로마제국의 군사적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정치적 지도자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일주일> 저자들은 “마르코가 무력적인 정치적 메시아와 비폭력적인 메시아 사이의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 ‘사람의 아들’이라는 대안적인 개념을 선호했다”고 평가했다. 묵시문학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서에 따르면 제국들은 짐승으로 상징되며, 하느님 나라는 “사람의 아들” 또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 상징된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다니엘 7,10-14)

예수의 답변은 예수에게 그 하느님 나라가 주어졌으며, 그 나라는 이미 현존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이다. 마르코는 그 나라가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따라야 하며, 제국의 논리와 전혀 다른 삶을 이 땅에서 살아야 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4-38)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9,35)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10,42-45)

위기의 순간, 예수와 베드로의 너무 다른 대처법

예수가 대사제의 질문에 제국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용기 있게 선포하는 동안, 대사제의 뜰에서 서성거리던 베드로는 “비공식적인 구경꾼들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새벽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다.

이 이야기는 66년-74년까지 벌어진 유대전쟁 기간 중에 유대 땅에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안을 제공해 주었다.

화요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적대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성전에서 빠져나온 뒤에, 예수는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에게 ‘대재난’에 관해 예고하신 적이 있다. 그때가 되면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이 들 것”이며 “사람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는 너희가 매를 맞을 것”이라 했다. 또한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며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했다. 예수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마르 13,3-13 참조)

그런데, 가야파의 저택에서 벌어진 베드로의 배신 이야기는 ‘절망적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위로를 준다. 첫째, 베드로보다 예수를 닮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받는다. 둘째, 예수보다는 베드로를 닮았던 사람들도 ‘베드로처럼’ 회개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위안을 받는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마르 14,72)

셋째, 예수를 베드로처럼 부인한 것도 유다처럼 배신한 것도 가장 큰 죄가 아니다. 가장 큰 죄는 회개하면 언젠가 용서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유다 역시 엎드려 울며 회개했더라면 역시 용서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코복음에서 유다는 겟세마니에서 마주친 이후에 더 이상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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